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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n 09. 2020

최성수 시인 『물골, 그 집』

[13호]우리 동네 작가를 소개합니다 | 글 신현수 · 사진 김선문

글 신현수

사진 17717 김선문




최성수 시인 『물골, 그 집』

- 그래서 우리는 친구 아닌가?


“시가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만약 인류의 몸에 난 부스럼을 인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만약 수천수만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소원을 드러내주지 않는다면, 만약 보다 아름다운 사상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만약 오늘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시가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 (애청)



1

최성수는 초등학교 때 고향 안흥을 떠났다. 아버지 등 식구들과 서울로 올라가서 정착한 곳이 바로 성북동이다. 성북동, 아, 최성수에게 그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성북동, 서울이되 서울 같지 않은 곳, 서울에서 아파트가 없는 유일한 동네. 최성수의 제2의 고향 성북동은 강원도 출신 최성수에게는 가장 맞춤한 동네였고, 현재도 서울에서 공동체가 살아있는 동네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최성수는 강원도 안흥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서울 성북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두 아들도 모두 성북초등학교 출신이다.) ‘세 살짜리 계단’이 있는 성북동 산3번지 비탈길은 최성수의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리운 것은 모두 두고 온 그 마을에 있으니,

성북동 산 3번지 비탈길을 오르면 나는

세월을 거슬러 소년이 된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집을 갖게 된 아버지는

마당 귀퉁이에 작은 화단을 꾸몄다

농부인 아버지의 기억이 담겼던 그 집

삼백만원에 샀던 무허가 블로크 집에서는

한겨울이면 대접의 물이 꽁꽁 얼었다

세월처럼 바래고 낡아 마침내는 제 몸조차 가누지 못했던

그 집

세 살짜리 계단*1)을 걸어올라 한참 숨이 차야 만날 수 있던 녹슨 철대문과

비가 오는 날이면 청량리역에서 기차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다락방

한양도성을 마주보며 양지바른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마을에서

나는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마침내는 아버지가 되었다

성북동 산 3번지

철거반과 맞서 똥물을 퍼부으며 싸웠던 사람들이 눌러 살던 곳

제 몸을 부숴버린 블로크 대신 

새로 벽돌집을 지은 아버지는 담장 아래 장미를 심었다

오월이면 담장을 넘어 늘어지던 장미는

재개발의 광풍을 먹먹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버지와 함께 심은 향나무도

늙어 숨을 거둔 그 집

집집마다 대추나무 한 그루씩 심어 가을을 맞았던 그 동네

이제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버리고

나이 든 어른들만 옛 집처럼 늙어가는 곳

3번지를 날던 비둘기가 사라지고 남은 하늘은

오늘도 여전히 청청 눈부시다


─ 「성북동 산 3번지 그 집」 중에서




최성수는 지난 2013년 성북동에 오래 살고 있는 동무들과 힘을 모아 마을 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도 펴냈다. 나도 그 잡지에 ‘성북동 골목길 기행기1)’를 기고한 적이 있다. 최성수는 이웃들과 함께 성북

동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모임 ‘성북동천’도 만들었다. 또한 시인, 가수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시 콘서트도 연다. 나도 그 모임에 제일 먼저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성북동은 간송미술관, 길상사, 성락원, 심우장, 선잠단지, 최순우 옛집처럼 잘 알려진 곳이 많지만 그것들이 주민들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주민들과 숨결을 같이 하는 곳이다. 그들은 문화재가 문화재인지 모르고 산다. 길을 가다가 쉬고 싶으면 고색창연한 한옥이 카페로 변신한 ‘산수다향’에 들어가 십전대보탕을 마시거나, 배가 고프면 ‘디미방’으로 들어가 비지찌개랑 청국장을 먹거나 ‘생의 뜨거운 국밥 한 숟가락’ 뜨면 된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날아라 코끼리’나 과일카페 ‘58.4’로 간다. 길상사 공양 갔다가 꽃에 홀려 꽃공양만 하고, 돌아오면서 ‘해동꽃농원’에 들러 꽃 한 송이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한복을 맞출 일이 생기면 ‘혜윰 한복’에 가면 되고 정말 속상한 일이 생겨 낮술 한잔 하고 싶으면 ‘낮술’에 가면 된다. 성북동의 봄은 영순씨네 집 매화나무에서 온다. 성북동의 골목은 큰길에서 마을 끝으로 실핏줄이 되어 흐른다. 그래서 성북동은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고향이 물 맑고 산 깊은 강원도란 점, 그리고 평생을 살았던 곳이 성북동이라는 점, 그리고 자식들은 성북동에 두고 부인과 함께 다시 고향 강원도로 돌아가 살고 있다는 점에서 최성수는 적어도 땅과 관련해서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성북동 북정마을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어 많이 알려졌지만, 탤런트 김남길이 낭송한 게 인터넷에 떠다녀 더 유명해진 시, 어쩌면 성북동이 최성수 시인을 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성수 시인이 성북동을 살리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1) “성북동, 이렇게 걸어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창간호(2013. 11. 20)



천천히 흐르고 싶은 그대여,

북정으로 오라.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이 그대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

삶의 속도에 등 떠밀려

상처 나고 아픈 마음이 거기에서

느릿느릿 아물게 될지니.

넙죽이 식당 앞 길가에 앉아

인스턴트커피나 대낮 막걸리 한 잔에도

그대, 더 없이 느긋하고 때 없이 평안하리니.

그저 멍하니 성 아래 사람들의 집과

북한산 자락이 제 몸 누이는 풍경을 보면

살아가는 일이 그리 팍팍한 것만도 아님을

때론 천천히 흐르는 것이

더 행복한 일임을 깨닫게 되리니.

북정이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 황홀한 순간을 맛보려면

그대, 천천히 흐르는 북정으로 오라.


─ 「북정, 흐르다」 전문



2

최성수는 교사 시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또한 전교조 일을 열심히 했다. 해직 결정이 되고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기도 전에 교실을 나오면서 두고 온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고, 해직된 후 아들 소풍 가는 날 닭장차에 끌려가기도 했고, 아버지가 농사지은 사과를 팔러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퇴직금마저 거덜 난 통장을 보며 몰래 한숨짓는 아내 옆에서 창문만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전교조 일 말고 다른 길로 빠지지 않았다. 전교조에서는 김진경 형 등과 함께 교과위원회 등 주로 참교육의 내용을 마련하는 일에 진력했다. 전교조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그는 김진호, 김성수 등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과 동무들과 함께 문학교육연구회를 만들고 국어교사들을 위한 책을 꾸준히 펴냈다. 문교연에서 내는 책들은 요즘 말로 하면 매우 핫한 책들이었다. 『삶을 위한 문학교육』, 『우리들의 문학교실』 등은 순수문학이라는 미명 하에 서정주 모윤숙 노천명 등 ‘친일파 나부랭이’들의 글만 잔뜩 실어놓은 국어교과서에 철퇴를 가하며 만든 대안교과서였고, 『희망이라는 종이비행기』 는 그때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중고교생들의 글 모음집이었고, 『학교야 학교야 뭐하니』는 학교현실을 풍자한 콩트집이었다. 『다시 읽어야 할 우리 소설』 같은 책도 펴냈다. ‘문교연’에서 내는 책들은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가르치느라 밤마다 자괴감에 떨었던 나를 비롯한 당시 많은 국어교사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 중심에 최성수가 있었다. 최성수의 제자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보리소골에서 일박이일로 엠티를 한다. 이제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자식들까지 데리고 온다. 환갑잔치도 제자들이 해줬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참 부러운 일이라는 걸, 선생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이 세상에 일방적인 관계란 없어서 제자들이 선생에게 잘한다면 선생도 제자들에게 잘해주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제자 사랑이 끔찍한 최성수에게 세월호 참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비가 내려서 하루쯤 빼먹어도 되는 곳,

계단 틈에 핀 민들레 앞에 앉아 있다

한두 시간쯤 늦게 들어가도 되는 곳,

사월 하늘이 너무 푸르러

수업 중 슬그머니 일어나도

선생님 그저 빙그레 웃어주는 곳,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위해

어둠조차 천천히 찾아오는 곳,

벚꽃 그늘에 둘이 앉아

지워지지 않을 시간들을 나누는 청춘의 마을

그리워도 돌아오지 마라

지각의 두려움과 공부의 공포

빛나는 젊음을 옥죄는 온갖 제도의 틀을 넘어

이 지독한 대한민국의 21세기로부터

너희들, 더 벗어나거라

우리는 너희들을 지켜내지도 못했고

너희들의 행복을 지켜보지도 못했으니,

이대로는 돌아오지 마라

더러운 자본과 무모한 권력의 손을 들어준

이 애비 애미의 세대들이 지은 죄로 너희들

꽃 피어 보지도 못하고 지게 했으니

바람이 불어서 하루쯤 빼먹어도 되는,

꽃이 져서 여드레쯤 슬퍼해도 되는,

그곳으로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아


─ 「수학여행-세월호의 아이들에게」 전문



3

지난 4월 6일, 최성수가 깃들어 살고 있는 그의 고향 횡성군 안흥면 보리소골에 다녀왔다. 횡성까지는 평창 올림픽 이후 KTX 강릉선이 생겨 청량리역에서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최성수는 출판기념회 등의 내 개인적인 행사에 거의 개근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거의 다녀간 그의 고향에 나만 뒤늦게 찾아가려니 조금 미안했다.

‘운동장해장국’집에서 내장탕으로 점심을 먹고 카페 ‘커피행성’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최성수를 따라다니다 보니 여기가 성북동인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졌다. ‘운동장해장국’ 사장님은 몹시 친절했고, 카페 한쪽에 주인이 직접 선정해 놓은 책이 꽂혀 있는 샵인샵 형태의 서점 겸 카페 ‘커피행성’은 카페라기보다 이미 횡성의 문화공간이었다. 최성수가 그런 곳만 찾아다니는 건지 아니면 최성수가 살고 있는 곳마다 그런 곳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는 잘 모를 일이었다. 보리소골로 들어가기 전에 안흥면 소재지 농협마트에 들러 아버님 드릴 백세주를 한 병 샀고, 그 유명한 안흥 찐빵도 샀다. 그의 아내가 만들어 준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특히 도토리묵을 맛있게 먹었는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친구 오면 준다고 몇 시간을 저어서 만들었다고 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가져간 시 원고를 꺼내 들었다. 최성수는 물을 마시고 나는 맥주를 마시며 번갈아 시를 하나씩 낭송했다. 최성수의 집은 동네 맨 끝집, 산 아래 첫 집이라 내가 사용하는 전화기는 터지지도 않았고, 최성수가 수십 년 전에 심어 놓은 낙엽송들의 검은 그림자만 밤새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보리소골의 봄밤은 깊어만 갔고, 그의 두 번째 시집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의 발문에 나오는 얘기가 생각났다. 일생의 꿈이 뭐냐는 친구의 질문에 최성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내 꿈은 고향인 횡성에 내려가서 말이야. 양지바르고 조용한 산기슭에 집을 한 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며 사는 거야. 가끔 시를 쓰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오면 함께 지내면서 시를 짓고 문학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런 집을 하나 갖고싶어.”

최성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고, 지금 그의 꿈대로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비록 그의 몸은 아프지만 그가 잠시 부러웠다. 최성수와 나는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많이 냈다. 그것도 신생출판사. 그래서 우리는 친구 아닌가? 최성수는 평생 부지런히 나를 찾아왔고 나는 게으르게 최성수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아닌가? 최성수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사람은 살아온 깊이만큼 말할 뿐이라고. 시와 삶 모두 더 넓고 깊어지고 싶다고. 또 자주 말한다. 시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그의 모든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아닌가? 최성수와 나는 좋아하는 여행지가 거의 같다. 그가 다녀온 곳을 나도 거의 다 가봤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아닌가? 그러면 됐다. 이제 함께 늙어갈 일만 남았다. 그러면 됐다. 다만, 이제 그와 더 이상 술 한 잔 함께 기울일 수 없음에 대해 통탄하고 또 통탄한다. 그것이 세상과 싸우다 얻은 병이라 더 속상하고 속상하다. 라오스의 그 유명한 비어라오 예찬시를 쓸 정도로 맥주를 좋아했던 최성수 본인은 얼마나 더 비탄스러울 것인가?  [끝]



라오스에 가면 ‘비어라오’를 마셔야 해요

체코 기술로 만들었다지만,

비어 라오에서는 라오스의 내음이 나요

잔에 얼음 몇 덩이를 넣고

가득 라오 비어를 따라요

느릿느릿한 라오스 사람처럼

잠시 숨을 고르고 기다려야 해요

한 이삼 분쯤

그 시간

한 생이 지나가고

참파 꽃이 피었다 지고

길을 걷던 소녀가 자라 아가씨가 돼요

그리곤 단숨에 잔을 비워야 해요

여전히 얼음 조각은 잔에 남고

머리끝까지 찌를 듯 살아나는

영혼

라오스에 가면 꼭

‘비어라오’를 마실 거예요

먼 땅에 홀로 남아

천천히 그 시간들을 마실 거예요


─ 「비어 라오」 전문



※ 본지 편집위원인 최성수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 <물골, 그 집>(도서출판b)을 출간했습니다. 이 글은 신현수 시인이 쓴 시집의 발문을 필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신현수는 계간지『시와 의식』(1985년 봄호)에 ‘서산 가는 길’ 등 5편이 박희선, 김규동 시인에게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서산가는 길』, 『처음처럼』, 『이미혜』, 『군자산의 약속』,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인천에 살기 위하여』, 『천국의 하루 』시전집으로 『신현수 시집(1989~2004)』(상, 하), 시선집으로 『나는 좌파가 아니다』 등이 있으며, 저서로 『선생님과 함께 읽는 한용운』, 『시로 만나는 한국현대사』,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 1』,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 2』 등이 있다.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 명예대표로 일하고 있다.

※ 위 약력은 발문을 기고할 당시 기준이며, 웹진 발행 기준 현재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정정함.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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