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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05. 2021

모두를 위한 마을결혼 이야기

글 최승주·홍수만 | 사진 김기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2

모두를 위한 마을결혼 이야기


글 최승주·홍수만 

사진 김기민



2016년 4월, 노랑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정릉 교수단지의 어느 집 마당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이름 하여 정릉마을 정원결혼식, 정릉에서 열린 마을결혼식 1호다. 온 동네 주민들이 준비를 돕고, 양가 가족들이 함께 음식과 답례품을 손수 준비했다. 하객으로 온 양가 친지보다 준비를 도와준 마을 주민이 더 많은 특이한 결혼식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제안으로 치러진 정원결혼식은 당사자뿐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그 안에서 예쁜 신부보다, 활짝 핀 봄꽃보다 가장 아름답게 예식을 빛내준 것은 바로 무지개 펼침막이었다.


신랑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결혼과 가정이란 것 자체가 인생의 계획에 존재하지 않았던 남자였다. 신부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결혼이 곧 결혼식은 아니며, 삶의 가치와 지향과 부합하지 않으면 기꺼이 평생 혼자 살겠다고 작정한 여자였다. 서른 후반에 동갑내기로 만나 티격태격 투닥투닥 연애를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기로 하고 결혼식의 기획의도를 ‘모두를 위한 결혼’으로 정했다. 마을결혼식 1호의 주인공이자 신부는 이번 결혼식의 총괄 기획을 맡았다. (참고로 오는 10월에는 신랑이 총괄 기획하여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월곡동 삼태기마을에서 결혼잔치를 할 예정이었다. 마을결혼식도 흔치 않은데 심지어 결혼식을 두 번 올리는 기염을 토할 뻔했지만, 삼태기 마을 회관 건립이 지연되면서 두 번째 결혼식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런데 모두를 위한 결혼은 과연 무엇일까?


신랑은 마을활동가이다. 마을활동 이전에는 사회운동을 했다. 그는 거창한 소속 없이도,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살면서 스스로 터득한 삶의 가치,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살아야 할 철학들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 실천해 왔다. 신부도 마을활동가이다. 세상에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바탕에 깔고 중앙부터 풀뿌리까지 정치운동을 했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며 그 자체로 불가침의 권리를 가진다는 본질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에든 열린 생각을 갖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두 사람이 꼭 닮았다. 그런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지금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권력과 억압, 이성애지상주의를 거부하는 남자였고, 여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 그리고 가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여서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에 남자와 여자는 결혼,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아주 특별하게!


일단 결혼을, 결혼식을 하겠노라고 결정하고 나니 이어지는 무수한 절차들이 줄줄이 알사탕처럼 끝도 없었다. 두 사람에게 결혼 예식보다 중요한 것은 이 결혼과 결혼식에 담아낼 우리 삶의 가치와 지향이었다. 수차례의 대책회의를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자는 바탕에 평화, 비폭력, 존중, 배려… 이런 가치들을 모두 담아 결혼식의 기획의도를 ‘모두를 위한 결혼’이라고 정했다.


신랑은 2014년 마지막 날, 성북의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주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주민이 결정해서 예산을 편성했음에도 구청장의 집행 거부로 불용 위기에 놓였던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 주민참여예산이 끝내 허무하게 사라지는 자리에 같이 연대하고 있었다. 마을 안에서 소수자들과 주민으로서 연대하고자 했던 두 사람은 서울프라이드영화제를 후원하고,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후원회원이기도 하다. 동성결혼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랑은 평등하며,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결혼은 그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사회적이기보다 매우 개인적인 일이고, 결혼의 당사자는 단지 두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더욱이 우리 두 사람은 적어도 법이 인정하는 이성애자 부부이니 모두를 위한 결혼이 소수자 당사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걱정이었다. 피부미용을 위해 팩을 해도 모자랄 결혼식 전날 밤, 세수도 못한 채로 심사숙고해 결혼서약서를 완성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목적이다.


우리는 결혼 1년 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결혼식 준비 과정을 그린 영화 <마이 페어 웨딩>을 함께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공권력의 이름으로 영원히 부정당하고 있음에 영화를 보는 내내 눈가가 시렸다. 가슴이 아팠다. 영화 안에 담겨 있는 평범한 부부의 일상. 제일 가까이에서 늘 힘이 되면서도 가장 큰 상처가 되는 일상을 반복하는, 세상 모든 둘은 다 그렇게 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여서, 여자여서, 내가 남자여서, 여자여서의 문제가 아니다. 이 간단한 것을 왜 그렇게 피흘려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여성 피살사건은 남성들로 하여금, 매순간 불안해하며 살 필요가 없고 하루하루 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이 엄청난 권력이고 특혜였음을 깨닫게 했다. 마찬가지로 아무 문제없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언제든 공개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이성애자 부부인 우리는 더욱더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혐오, 차별에 맞서야 한다고 다짐했다.


우리의 결혼에서 ‘모두’는 인간의 성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차리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따로 있는 단순소비적인 결혼식, 단 한 시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장식들, 의미를 떠나 돈이 예의가 되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두 사람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허례허식을 벗어나,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는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결혼식 예산은 300만원 안에서 지출하기로 하고 몇 달간 돈을 모았다. 양가에는 가족들로만 30명 정도씩 초대해주시라 청했다. 청첩장은 신랑이 한글문서로 내용을 넣어 만들고 예쁜 한지를 사다가 출력해서 봉투와 함께 양가에 보냈다. 부모님들은 봉투에 손글씨로 주소를 써서 직접 전달하거나 우편으로 부쳤다. 예물은 평화의 상징을 넣은 디자인의 커플링으로 맞추고, 예복은 동대문 의류쇼핑몰을 두루 돌아보고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것으로 구입했다. 웨딩촬영은 마을 곳곳에서 동네 친구들이 찍어줬고 신부의 머리와 화장은 셀프로 했다. 음식은 신부 엄마가 김치와 잡채 등 몇 가지를 직접 해오시기로 했고, 국과 밥, 반찬 몇 종류와 과일 등은 정릉의 시장에서 샀다. 의자와 테이블, 뷔페용 식기들은 마을의 도서관과 주민센터, 그리고 교회 등에서 빌렸으며, 주차장도 교수단지 인근의 사찰에서 이용하도록 해주셨다. 이런 과정 모두에 주민들이 힘을 보탰다. 집의 정원을 열어주시고 골목에 꽃을 심고 하객들을 위해 부침개를 부쳤다. 돈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마을을 위해 각종 필요한 것들을 섭외하고 직접 날라주시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결혼식, 모두를 위한 결혼식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고자 신랑은 결혼식 후에 하루 종일 땀 흘려 정원 결혼식이 열린 집 대문 위 처마를 페인트로 반짝반짝 칠해드렸다.


우리의 결혼식이 특별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하라고 권하거나 나는 이렇게 했노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알아주기를 바랐다.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꿈꿀 수조차 없는 것임을, 둘이 먹는 마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혼식도 가능함을, 세상을 바꾸는 것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이제 결혼 100일이(지났)다. 하나보다는 둘이 더 좋은 콩깍지 시절이지만 어려운 결혼식을 준비했더니 마치 30년 산 부부 같아졌다. 우리의 결혼 서약에 모두 증인이 되어주셨듯이, 우리 역시 이 세상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증언하려고 한다. 사랑 그대로의 사랑으로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


최승주-홍수만의 결혼 서약서

저희는 오늘 어렵게 만난 인연을 더욱 아끼고 소중히 하며 함께 가꾸어 나가겠다는 약속을 가족 여러분들 앞에서 하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가치관, 정치적 성향, 종교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믿음이 누군가의 신념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관용의 자세로 살아가겠습니다.

2. 우리는 그 어떤 폭력에도 반대합니다. 일상의 언어 속에서부터 서로에게 상처주거나 강제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비폭력평화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 우리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나이, 성별,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외모, 장애 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함께 싸우겠습니다. 오늘 저희를 축복해주러 오신 여러분들께서도 차별받는 이들을 축복해주시길 바라며, 차별 없는 세상을 기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4.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지속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도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소모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고 살아가야할 존재들을 위해 아끼고 소중히 하겠습니다.

5. 언제나 소통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각자의 일들로 바쁘고 지치고 힘들더라도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며 일상의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을 만들겠습니다.

6. 각자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습니다. 때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때로는 잘못된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조언을 해주며 서로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겠습니다.


모두를 위한 마을결혼 이야기



최승주와 홍수만은 지역에서 활동하다 만나 결혼에 이르렀고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 관계자에게 혼인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그 관계자를 지지하고 평등한 결혼의 가치에 공감하는 마음을 담아 결혼식장에 무지개 현수막을 걸어준 부부이다. 여전히 변함없이 지역에서 오늘과 내일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다.


※ 원고가 작성된 시점은 2016년 상반기로, 필자의 근황이나 원고에 언급된 시점은 지금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여기 우리 살誌」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성소수자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북구 성소수자 마을잡지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년 마을미디어활성화 주민지원사업 지정공모분야(콘텐츠형)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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