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북 Jan 11. 2021

성북동 주민들의 마음이 쉬어가는 곳, 60화랑

[14호]우리 동네 아트살롱 | 글 김정민

글 김정민

사진 17717 김선문



“왜 60이에요?”

화랑 간판에 붙어 있는 숫자를 보고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다.


60이라는 숫자는 ‘가회동60번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10년 전 처음 갤러리를 시작하며 자리를 잡았던 장소는 종로구 가회동의 60번지였다. 지금은 북촌한옥마을 입구로 잘 알려져 있는 그 장소는 어느새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고 작은 갤러리가 감내하기엔 어마어마한 월세로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흔히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눈물을 머금고 산을 하나 넘어 성북동으로 2018년 이전하게 되었다.


전시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즐겁지만 참 고된 일이다. 10년 동안 200번이 넘는 전시를 했던 지난 공간에서 있던 일을 떠올리며 외부기획 업무 외에 계속해서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논의했는데, 막상 지금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전시공간을 더 이상 만들지 않으려 생각하니 그간 전시 해 온 수많은 작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무실과 함께 쇼윈도 같이 작은 공간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오픈을 준비하며 10년 넘게 사용했던 「가회동60」이라는 이름을 버릴 수도, 계속 쓸 수도 없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가회동은 버리고 60만 가지고 왔다.


테이크아웃 커피숍인지 사무실인지 공방인지 갤러리인지, 오시는 분들마다 뭐 하는 곳이냐고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시는데 그래서 ‘갤러리 카페’라는 흔한 이름을 쓰지 않고 굳이 ‘화랑’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살짝 보이는 우리 동네 화랑, 뭐 그리 부지런하게 전시를 바꾸고 분주하지는 않지만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들리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60화랑」은 성북동에 이렇게 자리 잡았다. 동갑내기 부부가 운영중인데, 재미있게도 바로 옆집이자 몇 십 년 된 점포인 동네 초입 철물점과 세탁소도 부부가 운영하신다.


김정민 디자인60 실장 & 화랑60 디렉터

「60화랑」은 전시 공간의 이름이고, 우리 회사 이름은 「디자인60」이다. 순수미술 관련 전시기획 및 공간기획, 아트컨설팅 관련 업무를 하고 있으며 book 디자인, 특히 전시 도록이나 작품 관련 편집 디자인 업무는 오랜 시간동안 해 왔다.


60화랑에서는 작년 개관이후 현재 세 번째 전시를 하고 있다. 이번 소개 글에서는 그동안 우리 공간에서 가졌던 전시와 작가에 대해 간단히 써 볼까 한다. 작년 7월 개관전은 민화를 소재로 오랜 시간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 홍지연 작가의 신작들로 시작하였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분이 없이 이어지는 형태를 보여주며 인연의 끈이나 생의 연속성을 떠올리게 하고 원색의 컬러에 민화적 요소인 새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품들이었다. 민화의 소재에 등장할 법한 새와 심장의 형상, 만다라의 형상 등을 매듭의 형태로 변형하여 표현한 섬세하면서 유기적인 작품들로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장소의 개관에 뜻 깊은 의미를 주었다.


2019년 1월에는 성북동이라는 지역을 모티브로 한 첫 번째 ‘장소특정적’ 전시로 이동재 작가의 『짓고 쓰고 그리다』 전시를 진행하였다. 일제강점기 성북동에 자리 잡고 활동하였던 예인과 문인들인 한용운, 조지훈, 김환기, 이태준, 전형필 다섯 분들의 인물과 연관된 시를 주제로, 이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붙여나간 크리스탈 시드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가 마무리 되었던 6월에는 『성북동이 품어낸 예인과 문인들』이라는 주제로 이 다섯 분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직접 해설 전문가와 함께 탐방하고, 전시관람 후 작가, 미술평론가, 문화전문가와 함께 작품과 전시에 대해 대담을 갖는 지역연고 예술단체 행사를 진행하였다. 성북구청 후원으로 진행된 본 행사에는 지역주민 및 미술애호가 20여명이 참여하여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지난 여름에는 공예전시로 문유경 작가의 『LINE & DOT』라는 제목의 도자작품을 선보였다. ‘문빔’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유니크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그릇들과 초벌기를 노출시켜 무늬를 만드는 독특한 그릇을 제작한다. 일상적 사물인 머그컵, 에스프레소 잔, 접시, 술잔, 도쿠리병 등에 수작업으로 일일이 선과 점으로 구성된 무늬를 하나하나 그려내어 심플한 레트로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18년 「제6회 서울상징관광 기념품 공모전」에서 아이디어상, 2017년 「제47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장려상, 2014년 「제2회 여성공예 창업대전」 금상을 수상하였고 12월부터 방영될 KBS 미니시리즈 「99억의 여자」에 작품이 소개된다.


지난 11월에는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장소특정적’ 전시로 기획한, 한국화 전공 유한이 작가의 『도-성-사-이 都城間』 전이다. 북정마을의 상징인 서울성곽을 주제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태준의 「성」이라는 수필을 참고하여 이를 시각화하였다. 북정마을의 지도를 직접 펴 놓고 등고선 높이까지 관찰하며 자신이 재해석한 관점으로 성곽에 인접한 성 밖 마을 전경을 적막하고 담담하게 그리는가 하면, 이제는 원래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 암문을 투명한 구조물로 표현하기도 하고, 끝없이 이어질 듯한 성벽을 통해 무한함과 허무함을 단순한 필체로 표현해내고 있다. 지난해 성남문화재단 성남큐브미술관에서 「2018 성남의 발견」 선정 작가로 전시를 가졌던 유한이 작가는 건물이 흔들리는 듯한 투명한 느낌을 주며 구조물이 촘촘히 겹쳐 있는 중첩적 느낌의 건축물을 섬세한 동양화 기법으로 작업한다. 단단한 구조물들 사이에 기억해야 할 상흔들이 숨어있다고 하는데, 특히 지난 전시에는 성남이라는 도시를 미술관 벽면에 직접 제작하여 지역과 관련된 작품을 곧 사라질 일시적 벽화로 선보이기도 하였다.


내년을 위해 또 새로운 기획을 구상 중이다. 성북동 북정마을 입구에 서 만날 수 있는 60화랑의 전시와 작품들은 그리 튀지는 않지만 언제나 조용하고 잔잔하게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가을바람이 분다. 내일은 또 어떤 주민 분이 작품을 보러 오실지 기대하며 소개의 글을 마무리 해 본다.




김정민은 2008년부터 2018년 까지 ‘가회동60’ 대표로, 현재 ‘디자인60’실장, ‘60화랑’ 디렉터로 예술경영 및 행정 분야 업무를 맡고 있다. 2015 ‘무현금’ 프로젝트, 2017 ‘서울은 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 ‘박수근과 백남준을 기억하는 창신동길’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짝이는 가을 소풍 성북동 문화재야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