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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의 중반, 70일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던 변화를 적극적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유로운 시간 속 느린 삶에 적응하며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는 법을 배운 거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하여 여유를 찾은 것인지, 여유를 찾은 시기라 글을 쓰게 된 것인지 순서를 알진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그중에서 이미 가진 것에 대해 상기할 만한 글을 쓰는 것이 느린 삶 속에서 행복에 가까워지게 한 것을 알았다.
그런 자발적인 변화를 본능적으로 짐각하였고, 그런 변화를 이용해 보고자 이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며, 결국은 다시 회기 하며 다른 책과 세계관이 합쳐지며 완성되기를 바랐다.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자본주의적인 관점을 탑재하기 위해, 과감 없이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부정했다.
그래서인지 이 세계에서는 고통이 옆 보인다. 그 고통을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굴복하지 않고 성장통 정도로 치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미시적인 시선을 가진 개체가 가시할 수 없는 관점에서 살기를 추구하며 금방 길을 잃었다.
나침판 없이 항해하는 배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살아갈 순 없기에, 불안한 마음이었다.
처음 길을 잃고 있음을 집작 했을 땐, 책을 읽었다. 성경과 철학자의 책을 읽으며, 살아갔지만 파도가 한번 치더니 씻겨져 나가듯 또 헤맨다.
다시 청소를 하고 정렬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본업에 충실하며, 보람을 느끼고, 성장하는 느낌이 들면서 이번에는 꽤 오래 유지되었다. 나름 인정받는 느낌이고, 어딘가 앞서는 느낌이라 좋았지만, 그 또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생각하는 지점에 다다르자 성취감보다는 허탈감이 더욱 커져갔다.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지만, 한낫 미시적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니, 짐작할 뿐 난 아니라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시간이 흘렸다. 괘 많이 지나간 것 같다. 하루하루가 선명할 땐 달력에 체크를 하는 수고를 하였기에, 얼마나 길을 잃었는지 어느덧 비워진 달력이 시야에 들어온 날 알게 되었다. 또 2주 정도 정신을 잃었던가.
그 시절 어렷풋이 비트코인으로 1억 가량을 벌었다며 자랑하던 이기사의 말들이 기억에 남았고, 계획보다 주식을 많이 사모우며, 파월의 금리 조정이 어떻더라, 어떤 ETF와 자산을 모을지 시간낭비를 했던 거 같다.
동면하고 있는 것처럼 정신을 자주 잃고 시간의 흐름이 탄력적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바로 어제 오랜만에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 지난날들을 상기하며, 기억들을 끌어모 운다.
나는 미래를 자주 그린다. 미래를 계획할 때는 마치 타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듯하여 거시적으로 삶을 계획하기 마련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매일 부지런히 살며, 독서와 현명한 투자를 계획한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바로 오늘 하루 건너를 바라보지 못한다. 한심하고 미시적이기 그지없이, 그저 오늘을 살고 불안감을 느끼며, 충동적으로 움직인다.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큰 지도에 목적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작은 지도로 가는 길을 촘촘히 그려야 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은다고 어느 항해사가 그랬다.
시작은, 미시적인 관점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