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에게 아버지를 섬기라고 '강하게' 말하는 이유
세속적인 자아가, 남동생에게 아버지를 섬기라고 '강하게' 말하는 이유
팔로워십은 개인이 속한 팀이나 조직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팔로우십은 리더십과 상호작용하며, 효과적인 조직 운영에 필수적입니다. 탁월한 팔로워는 리더와 조화를 이루며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태도와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팔로워십은 리더십과 대조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리더십을 보완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즉, 효과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팔로워십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8살 어린 남동생에게 관심이 많다. 왜 인지는 몰라도,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웠고, 종종 내가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할 때, 감정으로 나를 잡는다. 방황하던 10대에서 가족을 등진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가 나를 잡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동생을 만났을 때, 꽤 커있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서, 운동을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몸이 좀 크고 자아가 강해지니 아버지에게 종종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반항심을 관찰했고, 자신감을 빌려줬던 일과는 반하게, 이제는 기를 누르고 있다.
세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나는 리더십이 필요한 역할을 자처하여 왕왕 그 자리에 올랐다. 조직에 속하여 리더십을 발 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팔로우 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가족이라는 조직에 적용시키려 한다.
본격적인 글은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겠다. 조직의 전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능력이 뛰어난 부하직원을 (새로) 두는 것이 효율적일까? 아니면, 팔로우십이 강한 충성스러운 부하직원의 능력을 키워주는 게 효율적일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래 조직에 남는 것,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등등. 하지만, 세속적인 자아는 좀 더 큰 그림을 본다. 내가 동아리를 지휘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상명하복, 복종, 이런 말들은 좀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필요하다. 조직의 대표를 잘 서포트하고 충성을 하다면, 대표자의 권위가 강해진다. 같은 구성원대비 조직의 힘을 크게 키울 수 있다. 대표자의 생각으로 조직이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방향성을 빠르게 바꿀 수 있다. 대표자는 잘못된 방향으로 갈 지연정, 한 방향으로 쭉 경영할 수 있고, 빠르게 실패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조직이 유연하고 수평적인 경우, 대표자가 조직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경우, 혹은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경우, 이 조직이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해결책을 결정한 이후에는 강하게 그 방향성을 따라줘야 한다.
일희일비, 대표자를 의심하고, 따라주지 않으면, 어떤 실패도 할 수 없고, 조직은 성장할 수 없다.
이런 조직의 색깔은, 구글과 같은 글로벌 IT회사의 경우 수평적으로 이런 색을 띨 것이라고 쉽게들 생각하지만, 오히려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해고가 쉽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좀처럼 영어원문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으면서, "한국어는 말을 끝까지 듣어야 해서 답답해"라고 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영어책(매뉴얼)도 결론은 마지막에 있다. 이 말은, 곁모습만 흩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특히 외국의 사례를 가져와서 기존의 것을 잘못된 거라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팔로우십은 조직에서 필수이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조직의 몸값을 키우는 것은, 구성원의 몸값을 키우는 가장 빠른 길이다. 즉,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리더가 힘을 가지려면, 팔로우가 서포트를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 개념을 가족에게도 적용한다. 가족은 사랑과 애정이 공존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경제적 주도권은 아버지에게 있다. 가정의 대표자는 '아버지'이다. 대표자는 가족만큼는 수평적인 안전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지만, 각 구성원들은 팔로우십을 가지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가족이 꼭 성장해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면, 개인이 성장하려면 가족이 성장해야 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아버지를 팔로우하고, 힘을 강하게 만들면, 나는 그 아버지의 아들이다.
이를 가부장적 관점이라고 보면서 한국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면, 탈무드, 성경, 영국의 귀족교육 등을 공부해 보아라.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남동생에게 아버지를 섬기라고 '강하게' 말하는 세속적인 자아를 관찰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