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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lee Aug 08. 2018

홍대 여신, 아직도 칭찬 같나요?

외모 얘기는 그만 하고 싶다.

얼마 전 홍대에서 활동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한 칼럼이 있다.

사운드 네트워크 대표 박준흠 씨의 글이 바로 그것.

http://ksoundlab.com/xe/index.php?document_srl=13360&l=ko&mid=webzine_weeklysound


칼럼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2013년 이후로 괄목할만한 여성 아티스트, "홍대 여신"이라고 불러줄 만한 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아이돌 음악을 표방하기 바쁘고, 이의 원인을 실용음악의 고전을 듣지 않음으로 찾고 있다.



나는 한국의 실용음악 대학에서 베이스와 작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영화음악을 1년 공부했다. 학부시절 교수님의 취향을 따라 매일 '고전'이라 불리는 옛날 노래들을 연습해야 했고, 옛날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고문이 따로 없는 시절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70-80년대 노래를 연습하고 그 음색을 따라 하는데 반발하자 옛날 음악에서 배울 것이 많다, 연주하다 보면 습득하게 된다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그 당시가 2010년, 40년 동안 팝 음악은 발전이 없었나요?


나는 저 말이 정말 너무 싫었다. 옛날 것만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지, '촌스러운' 70년대 기타 소리를 만드는 교수님 몰래 앰프 세팅을 바꿔버리기도, 교수님과 언쟁을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17살에 스스로 작곡을 시작해서 1학년 여름 방학을 이용해 첫 앨범 '스무 살, 여름'을 발매했고, 스스로 소리를 만들고 믹싱을 하고, 다양한 장르 작곡을 시도한 아티스트로써,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존중 없는 가르침을 받는 것도 싫었다.


알게 뭐람, 나는 나의 길을 갔고 여성 전자음악 아티스트로써의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첫 영상음악 작업으로 PISAF에서 상을 받았고, 서울 패션위크에서 나의 음악으로 25분의 캣워크를 라이브로 진행했고, 미국에서 2번째로 큰 공영방송국에서 나의 뮤직비디오를 미국 전역으로 방송했고, 독일의 HOFA라는 회사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팝 부문 3위를 수상했고, 꾸준히 한국 유일의 전자음악 페어 AMFAIR에서 공연을 하고, 디제이도 하고, 독일 유수의 음대라는 모 대도시 국립음대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나는 여전히 가난한 무명의 아티스트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유명하지 않아서 저 사람이 나의 음악을 못 들었다고 하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종종 네이버 메인에 걸리기도 했는데, 한 번은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여성 아티스트"라는 기사에 실렸다.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예쁘고 실력이 있다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홍대 여신"과 같은 맥락이겠지. 167cm/ 48kg이던 시절, 살이 잘 찌고, 뼈가 굵고 근육이 많은 체질의 나는 체중 유지를 위해 하루에 사과 1개를 먹고 녹차를 2리터 마시고 살았다. 친구를 만나 음식을 먹으면 집에 와서 게워냈다. 매일매일 2-3개의 곡을 쓰고 5시간을 연습했다. 얼굴만 예쁘고, 통기타 들고 사근사근한 노래를 부르는 "홍대 여신"이 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 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홍대 인디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사실 "홍대 여신"이라는 칭호는 비하의 의미였다. 별 것도 실력도 없는 것 같은데, 얼굴 예쁜 거, 목소리 사근사근하게 꾸며내서 인기를 벌어낸 여자. 그런데 "드디어 제2의 홍대 여신들이 탄생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상황을 맞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라니요. 정말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독일에서의 나는, 경험이 많은, 모든 장르를 작곡할 수 있는 "작곡가"이다. "예쁘고 실력 있는 여성 아티스트"가 아니라. 섹시하고 예쁜 옷이 아니라 단정한 옷을 입고 공연을 한다.(물론 예쁜 옷을 입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되는 선택권이 있다.) 이 곳도 아주 외모에서 자유로운 지상낙원은 아니지만, 내가 화장을 했건 안 했건 살이 쪘건 안 쪘건 치마를 입었건 바지를 입었건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부디, 한국에서도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정당하게 평가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제2의 홍대 여신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탄생하지 않고, 홍대 여신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는 세상이 되길.


새벽(Saebyeok) - Obliv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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