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적응 마인드셋 20

시나리오 4: 밥상

by 박성훈

식탁 위에서 사라진 고향의 맛


1. 2030년: 사라진 ‘국민’이라는 수식어

서울의 한 대형마트 식품 코너. 주부 김 씨는 사과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낱개 포장된 사과 한 알의 가격은 만 원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과거 ‘국민 과일’이라 불리던 사과는 이제 백화점 지하에서나 볼 수 있는 귀빈 대접을 받았다. 대형마트 매대에는 백화점 사과보다는 품질이 좀 떨어지는 사과가 진열되는데, 그 가격도 한 알에 만 원이 넘는다. 대구와 경북의 명물이었던 사과 산지는 이제 강원도 최북단 휴전선 근처까지 재배한계선이 올라갔지만, 그마저도 잦은 봄철 냉해와 여름철 고온 현상으로 수확량이 반토막 났다.

같은 시각, 수산물 코너의 풍경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민 생선’ 명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국민 횟감’이었던 광어와 우럭값은 1년에 몇 번 못 사 먹을 만큼 비싸졌다. 수산물 코너 매대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열대성 어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남해안의 굴 양식장은 집단 폐사가 일상화되었다. 바다가 ‘끓고’ 있었다. 해수 온도가 28°C를 넘나드는 날이 길어지자, 찬물을 좋아하는 김과 미역은 성장을 멈추고 녹아내렸다. 밥상 위의 감초였던 ‘김’ 한 장의 가격이 달걀 한 알 가격과 맞먹기 시작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뒤늦게 품종 개량을 외쳤지만, 이미 수온 변화 속도는 연구실의 연구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맛을 그리워하며 ‘금(金)사과’, ‘금(金)김’이라 부르며 한탄했다.


[변화의 조짐]

식탁은 아직 낯설지 않다. 문제는 ‘빈도’다. 농수산물의 가격이 크게 뛰는 빈도가 잦아졌다. 마트에는 여전히 기존 식재료가 있지만, 가격표는 자주 바뀐다.

‘시기’도 문제다. 평년보다 일찍, 혹은 늦게 나오는 농수산물이 많아진다. ‘계절 별미’라던 농수산물도 계절을 어기고 마트에 진열된다.


[관성적 사고]

“올해는 더 비싸졌네. 쌀 때 사야겠다.”

“어머, 완전 금사과야. 마트보다 온라인이 더 쌀까?”

“귤이 지금 철에 나왔어? 하우스 귤인가?”

기존 식재료를 좀 더 값이 싼 곳에서 사거나, 값이 싸질 때 사려고 한다. “기후 변화가 심하긴 하나 보네.”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 변화의 조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2. 2035년: 전통 음식 레시피의 종말


2035년,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김치’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다. 한여름 고랭지 배추는 이제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배추 무름병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졌고, 강원도 산간 지역마저 아열대 기후로 편입되면서 배추 재배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한 포기에 2만 원이 넘는 배추 대신 사람들은 파파야나 덜 익은 망고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마트의 채소 코너는 이제 '열대 농장'에 가까웠다. 공룡의 등껍질 같은 여주, 고수, 공심채가 대중적인 식재료로 등극했다. 반면 우리가 흔히 먹던 상추, 깻잎 같은 쌈채소는 스마트팜에서 고가의 전기를 들여 키운 ‘럭셔리 채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고기보다 상추 가격을 더 걱정하며 고기를 구웠다.

양식 산업 종사자들도 비명을 질렀다. 수온 상승으로 기존 양식 어종이 몰살당하자, 양식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열대성 ‘벤자리’로 품종을 전환했다. 혹은 해안가에 담수 실내 양식장을 만들어 ‘틸라피아’를 양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의 적응은 느렸다. “이게 무슨 맛이냐”는 불평이 쏟아졌다. 마트 진열대에는 ‘조리법 추천’ 입간판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지만, 생각보다 담백합니다.” 마트 직원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되었다. 기존 양식 어종에 의존하던 음식점들은 식재료를 구하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값이 저렴한 ‘틸라피아’로 예전 식재료의 맛을 재현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아예 완전 고급 식당으로 다시 문을 열어, 비싸게 구한 기존 식재료의 메뉴를 두세 배 가격으로 파는 식당도 생겼다.


[변화의 조짐]

익숙한 재료들이 밥상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마트 진열대에 그동안 ‘실험’으로 취급되던 식재료가 주를 이룬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존 식재료를 접할 가능성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성 → 변화의 사고]

소비자들이 식재료의 변화가 ‘실재(實在)’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즉, 일시적 공급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밥상이 영구적으로 변할 것을 인식하게 된다.

“미국 사람들은 틸라피아를 레몬 갈릭 버터로 조리한다던데?” 바뀐 식재료로 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조리법을 가정에서도 적용해보고 SNS에 홍보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3. 2040년: 잊혀진 ‘밥맛’


2040년의 아침 식탁. 냉장고에서 꺼낸 과일은 이제 제주산 애플망고와 국산 바나나다. 과거 귀했던 것들이 이제는 가장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 쌀농사 역시 극심한 가뭄과 열대성 집중호우로 인해 수확량이 불안정해지자, 정부는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아열대 쌀 품종을 보급했다. 우리가 기억하던 ‘찰기 있는 밥맛’은 이제 할머니들이나 기억하는 추억의 맛이 되었다. 전통적인 ‘밥맛’은 박제되었다.

남해에서는 참다랑어가 흔하게 잡히고, 열대 전갱이 떼가 발견된다. 굴과 전복 양식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 고수온에 강한 해조류와 신종 패류 양식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이제 명절 선물로 사과나 배 대신, 최첨단 수경 재배 시설에서 키운 ‘희귀 딸기’를 주고받는다.

기후 적응에 실패한 농가들은 도산했고,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기후 조절형 팩토리 농장’이 농산물 시장을 장악했다. 가난한 이들은 맛이 밋밋하고 영양가만 맞춘 대체식과 합성 식재료에 의존하고, 부유층만이 과거의 기후를 재현한 특수 온실에서 자란 ‘진짜 배추’와 ‘진짜 사과’를 먹는다. 밥상은 더 이상 나눔의 공간이 아니라,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잔인한 지표가 되었다.


[변화의 조짐]

이제 선택지가 사라졌다. 밥상에는 ‘외국 음식’에 쓰였던 식재료가 일상적으로 올라온다.

한때 유행했던 ‘기후 적응형 조리법’도 이제는 유행 지난 일상적인 조리법이 된다. 토종 식재료의 소비를 늘리자는 캠페인도 점점 참여가 저조해진다.


[관리/ 협력적 사고]

식량 주권 정책이 국방/외교 분야의 가장 핵심 정책으로 다뤄진다.

저소득층과 공공급식 수혜자도 자연산 식재료를 접하게 하자는 운동이 활발해진다.


[지금부터 관리해야 하는 지표]

1. 농수산업 보험료/보험금 변동 관련 경제적 저항선
(시장 리스크 감내 한계점)

2. 농수산물 소비자 가격 관련 심리적 저항선
(소비자 수용 한계점)

3. 농수산업 피해 복구 지원금 규모 관련 정책적 저항선
(재정적 지속가능성 임계점)


경제적(시장)/ 심리적(소비자)/ 정책적(정부) 저항선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경제적 저항선은 보험료가 자산 가치를 상회하여 민간 시장에서 리스크 인수가 거부되거나 대출이 중단되는 경제적 붕괴 지점이다. 심리적 저항선은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소비 패턴을 바꾸는 지점이다. 정책적 저항선은 사후 복구 지원금이 예산 범위를 초과하여, ‘보호 대신 전환’을 강제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세 가지 저항선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경제적 저항선(시장) → 심리적 저항선(소비자) →
정책적 저항선(정부) → 경제적 저항선 고착/재붕괴


첫째, 기후 변화로 농수산업 보험료가 폭등하면서 농어민의 생산 원가가 상승하고 보험 가입/ 시설 투자비 대출이 거절된다(경제적 저항선).

둘째, 생산 원가 상승이 가격에 반영되면 소비자는 해당 식재료의 구매를 포기한다(심리적 저항선).

셋째, 농어민의 도산과 소비자의 불만이 폭주하면, 정부는 더 이상 ‘피해 보상’을 해주는 것이 비용대비 효과가 없음을 깨닫고 ‘품종 전환’이나 ‘업종 변경’을 강제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린다(정책적 저항선).

넷째, 정책적 결단이 다시금 시장의 저항을 고착화하거나 재붕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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