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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효샘 Dec 23. 2017

듣는다는 것은

듣기, 공부의 시작이다

2011년 겨울이었다.
중국 북경에 있는 학교와 우리 학교 아이들이 국제교류를 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다른 이들이 다 다른 일정이 있고 나 혼자만 수업을 보게 됐다. 건물에 들어서자 복도에 정적이 흘렀다. 수업 시간 특유의 정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교실, ... 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싶어서 교실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때의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까. 소름이 쫙 돋았다. 아이들이 말 그대로 빨려 들듯이 수업에 집중해 있었다. 교실 위에 한자로 씌어 있기를, 2학년, ...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인데, 그렇게나 집중해 있었다.

나는 부설초에서 공개수업으로 5년간 단련된 교사다. 1년이면 100여 일을, 수업을 공개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업을 보고 협의했다. 말 그대로 수업 한 장면만 봐도 대충의 감이 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수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까지 집중하진 않았다. 결국 내가 해온 모든 노력은 아이들이 잘 듣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그날 중국 아이들이 빨려들 듯이 수업하던 모습이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도 너무나 선명하다. 설마 했다. 다른 반은 다르겠지. 그러나 다른 반, 다른 반, 또 다른 반, 그 학교에서 돌아다니는 내내 나는 같은 모습을 봤다. 그 어떤 아이도 딴짓을 하지 않는 모습, 선생님 말에 집중하고 듣는 모습, 그 어떤 소음이나 잡음도 수업을 방해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교실, ... 그렇게 수업할 수만 있다면, 교사가 수업하느라 왜 피곤하겠는가 했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수업하는 학교라면, 그렇게 공부하는 아이들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중국 아이들을 이길 수 없다, 그게 직감처럼 느껴졌다. 심각하구나, 정말로 심각하구나, 했다. 중국까지 합하면 그때까지 내가 본 다른 나라 수업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였다. 모두 비슷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에 초집중 상태로 들었다. 듣고 또 듣고 또 들었다. 중국까지 보고 난 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듣는 것을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듣기는 말 그대로 훈련이 필요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하고, 학교에서도 집중적으로 지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토론도 잘 못 한다. 당연하다. 남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지 않는데 무슨 토론이고 토의겠는가. 듣기라는 행위 자체가 교육에서는 정말로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데, 우리는 그 중요성을 간과해온 것이다. 과연 듣기보다 말하기가 중요한가? 아니다. 틀렸다. 듣는 것이 되어야 말하기도 된다. 듣기는 모든 인간관계 그리고 공부,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다.

어제 성연이네 학교로 진로발표회를 보러 갔다. 아이들이 만든 자유학기제 동영상 발표를 들었다. 3분짜리 동영상으로 굳이 발표하게 한 이유도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둘째다. 내가 발표를 지켜보면서 느낀 건 하나다. 아이들이 듣지 않는구나, 였다. 늦은 시간에 피곤을 무릅쓰고 갔으나 나는 그 시간 내내 중국 아이들을 떠올렸다.  

듣기를 훈련하고 싶은가?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전엔 재미있는 수업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듣는 것에 먼저 초점을 두었다. 가장 효과적인 건 '들은 다음 말하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들은 다음에 내 말을 하게 “잠깐 멈춤”을 가르치는 것이다. 눈을 보면서 듣고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것이다. 익숙해진 다음에는 적어보게 한다. 상대가 하는 말의 요점을 정리해서 적고 다시 질문하고 답하게 하는 것이다. ... 이것만 반복해도 아이들의 듣기는 좋아진다. 우리반에서는 안 듣는 아이는 없었다. 몇 달만 해도 충분히 좋아진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니까. 게다가 듣기는 교육이라기보다는 거의 훈련에 가깝기 때문이다.

올 봄 독일에서 본 어느 중학교 3학년 수업이 생각난다. 사회 시간이었다. 한 금발의 여자 아이가 창가에 올라가 양반다리를 하고 공책에 있는 걸 읽고 있었다. 알고 보니 주제는 “시리아 난민이 유입된 수가 많아진 것이 범죄율이 높아진 것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가”였다. 그 어려운 주제에 모든 아이들이 조용히, 집중해 있었다. ... 피피티도 없고, 동영상도 없었다. 그런데 그냥 집중해 있었다. 궁금하면 손을 들고, 나를 지목할 때까지 ‘팔 아파요’ 한마디 없이 묵묵히 손을 들고 있던 독일의 아이들, ... 대한민국 국회에 토론이 없는 것이 듣기를 배우지 않아서라고 한다면 너무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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