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닮고 싶은 마음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닮고 싶은 시니어가 생겼다.
사고를 구조로 정리하는 능력.
시야를 넓게 가지면서도
지금 필요한 하나를 고르는 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결정의 무게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이게 맞아요. 이걸로 가봅시다."
툭 던지는 그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다 계산한 뒤의 단단함 같았다.
아직 판단이 두려운 나에게는
그 단단함이 유난히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그를 닮고 싶어졌다.
닮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건
내가 그 단계로 가고 싶다는 뜻이고
그만큼 내 눈높이도 올라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준이 생기자
내 부족함이 더 선명해졌다.
회의에서 맥락을 놓치거나
운영에서 자잘한 실수를 하거나
질문의 깊이가 얕았던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먼저 깎아내렸다.
퇴근길마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되감았다.
“왜 그걸 놓쳤지.”
"왜 거기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이 정도도 준비 안 했다고 보이면 어떡하지.”
실수는 고치면 된다.
하지만 실수로 나를 작게 만드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하나의 실수로
내 능력 전체를 재단해 버렸다.
닮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를 의심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정답지가 되었고,
말을 꺼내기 전에
내 생각보다 그의 머릿속을 먼저 읽으려고 했다.
"저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겠지."
"이렇게 말하면 별로라고 느끼지 않을까."
내 생각보다 그의 생각이 더 중요했고
그의 판단이 더 안전해 보였다.
틀리고 싶지 않았다.
닮고 싶은 사람이라 더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더 조심했다.
조심하다 보니 결정은 늦어지고 말은 흐려졌다.
처음엔 그게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두고
그 사람처럼 사고하려는 것.
그렇게 한 달 반쯤 지나 문득 깨달았다.
나는 배우고 있는 게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 하고 있었다는 걸.
결정을 내리기보다
내 판단을 내려놓고
정답을 고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두려웠다.
틀려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정답을 찾으려 애썼다.
닮고 싶다는 마음은
성장이 될 수도 있고
비교가 될 수도 있다.
그 경계를 잘 구분하지 못한 채
한동안 심하게 흔들렸다.
그를 정답으로 두는 건
성장이 아니라 의존이었다.
판단의 무게가 가벼워 보이는 사람은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단단히 쌓아온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기준은 누군가의 것을 빌려 쓰는 게 아니라
실수하고 흔들리고 책임지면서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도.
판단은 여전히 쉽지 않다.
지금도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고
결정을 내린 뒤에도 마음 한편이 계속 저릿하다.
그래도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싶다.
시야가 좁더라도 그 안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싶다.
그래서 한동안 주눅 들어 있었던 건
내가 못해서 작아진 게 아니라
너무 닮고 싶어서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에게도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었을 거라는 걸,
아마 그 역시 같은 과정을 지나왔을 거라고
뒤늦게 생각해 본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판단이 가벼워 보인다고 말한다면
그건 내가 많이 배웠다는 뜻이 아니라
많이 틀려봤다는 뜻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틀리는 나를
끝까지 견뎌낸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