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금의 종류 시리즈
예전에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창업했을 때, 무턱대고 여기저기 투자자들에게 전화를 돌렸어. 그중에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꽤 스타트업계에서 유명한 투자자분이라서 도움을 얻고자 연락드린 거지.
전화를 받은 투자사 대표님은 어디서 연락처를 받았냐며, 누구 소개로 연락 준거냐고 물어보셨어. 누구의 소개는 아니고, 제가 일일이 찾아서 연락드린 거라니까 불쾌해하시더라고.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분은 이런 모습을 기특하게 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어. 마치 방문판매 영업을 하면, 사람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인 것과 같다랄까?
왜 그랬냐고? 나의 선배 창업자는 일단 부딪쳐보라고, 백번 말해도 이해 안 되는 것들이 한 번 겪어보면 피부에 확 와 닿는 법이라면서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일단 장소/사람/자리를 불문하고, 최대한 뛰어보라고 말했거든. 하지 않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긴 해. 예전에는 이렇게들 투자자를 만났다고 하니까. 근데 세상이 많이 변했어. 무작정 들이밀기보다는 전략적일 필요도 있고, 예의도 지켜야 해. 콜드 콜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막무가내로 전화하는 것보다 사전에 메일을 보내서 양해를 구하고, 제안서나 사업요약서를 보내 놓고 전화를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뜬금없는 전화 연락에 무턱대고 반가워하지 않아. 너무나 많은 예의 없는 전화를 받고, 너무나 많은 시간낭비를 경험한 투자자들, 특히 인지도나 명성이 높을수록 더욱 그런 일을 자주 경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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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강 사장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영화 [달콤한 인생]의 명대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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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용기 내서 전화했는데 투자자가 따지듯이 상대했다고 왜 나에게 그러냐고 반문하지 마. 누군가 알지 못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만나 달라고 하면 너도 달갑지 않을 거야.
무작정 들이대지 말고, 너와 맞는 투자자에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
실전적인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해. 창업자 입장에서 투자 유치를 위해 꼭 챙겨야 할 것이 바로 “기준 설정”, “타겟팅”, “시기(Timing)”이야.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를 가지고 여러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시간의 때에 맞추어 적절한 행동도 필요해. 그리고 누구에게 찾아갈지, 어떻게 만날 지를 먼저 따져 봐야 해.
우선 네가 필요한 투자금이 얼마이며, 회사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걸 정해야 해. 너무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풀려서 제시하면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더라도 투자자는 고개를 절레절레할 거야.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협상 기준점이 없으면, 투자자 앞에 서더라도 그냥 인사 주거니 받거니 하며 끝나버리지. 자! 그럼 이게 왜 중요한지 말해 줄게. 네가 원하는 투자 유치 희망금액과 기업가치에 의해 투자자에게 줄 지분을 가늠할 수 있겠지? 예를 들어, 시드 투자로 3억 원을 원하는데 지분은 10%를 주겠다고 하는 입장인데, 정작 투자자는 시드 투자로 5천만 원에서 1억 원 범위에서 지분 10%를 원한다면 이건 매우 어려운 협상이 될 거야. 투자자는 너의 회사 가치가 과연 적정한가를 되새김할 거야. 너의 회사에 투자할 바에는 너와 유사한 곳을 찾아 3곳에 분산투자하는 게 더 안전하고, 합리적이지.
냉정하게 자신을, 자기 회사를 평가해봐. 가끔 IR이나 데모데이에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스타트업들을 볼 때가 있어. 아직 제품/서비스가 나온 것도 아니고, 핵심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눈만 높아져서 엄청난 투자금을 받길 원한다는 대표들의 투자 요청 발표에 놀라기도 해. 실리콘밸리의 투자 성공 사례가 여럿 망쳐 놓았구나란 생각도 들어.
회사 규모/성장 가능성/현황/시장 규모에 따라 투자 라운드가 다른 법이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막연한 숫자 부른다고 움직일 투자자는 없어. 3년 미만 스타트업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39세 이하의 청년 창업가니까, 공모전 수상한 경력이 있어서 투자를 잘 받을 거란 생각하지 마. 오히려 그런 꼬리표가 붙어있기 때문에 더 냉혹하게, 더 세심하게 살펴본 다구. 어떤 대표들은 3년 미만 스타트업이라 재무제표 안 보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정부지원 프로그램이나 그렇지. 투자에서는 재무제표가 없으면 지난달 판매 수치라도 가져오라고 해. 스마트 팜을 만들겠다는 스타트업인데 핵심기술도, 장비도, 연구원도 아직 없이 투자만 바라고 있어. 육아 관련 플랫폼을 만드는데 멤버들이 다 미혼이고, 육아 경험이 없어. 그런 팀이 단지 열정과 아이디어가 있다고 회사 가치 부풀리면 누가 공감하겠니? 제조 스타트업인데 공정을 만들 줄 몰라. 어떤 장비를 사야 할지도 몰라. 어때? 너라면 이런 회사들에게 몇 억대 규모의 투자를 하겠어?
아파트 호가를 부를 때도 독고다이로 부르는 게 아니라 주변 시세를 보고 맞춰 부르잖아. 그러니까 다른 스타트업들 좀 살펴봐 봐. 그들이 얼마의 가치를 산정하고, 어떤 논리를 가지고 협상에 들어가는지 엿볼 필요가 있어. 특히 너와 같은 업종에 있는 경쟁사 또는 비슷한 규모의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한 사례들을 참고하며, 기업가치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점을 가져야 해.
그리고 투자금은 많이 요청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 적정한 수준을 받아야 해. 왜냐고? 이래저래 주위를 둘러보면 기업가치는 얼추 산정될 거야. 근데 투자금을 높일수록 지분은 많이 내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
이제 회사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누구를 만날 지를 정해야 해. 너의 파트너는 누가 될까? 크게는 우리가 필요한 투자금이 얼마이고, 어떤 형태의 투자를 받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에 비추어서 엔젤투자자/엑셀러레이터/micro VC를 만날 지를 정해야겠지. 초기 시드 투자의 경우, 처음부터 크게 배팅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어. 그 이유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이야. 아무리 사업계획서를 검증하고 아이템이 좋더라도 시장에서 통하는지, 수익모델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실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증명하고는 다른 문제거든. 그렇기에 초기에는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투자가 이루어져. 그렇기에 기관투자나 규모 있는 투자를 집행하는 투자사는 그다음에 들어오게 되는 거야.
그럼 어떤 투자자를 만나야 할까? 포트폴리오 확인이 필요해. 어플이나 지식서비스 영역의 스타트업이 제조/하드웨어 쪽으로 주로 투자한 곳과 매칭이 되면 잘 될까? 개인적으로 사상의학을 믿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음식의 궁합과 체질에 맞춘 생활습관에 대하여 일견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이와 마찬가지로 투자자와 우리와의 궁합/상성이 잘 맞아야 하기에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하지. 어느 쪽으로 잘하는지, 어떤 이력이 있는지, 투자받은 회사들의 현황은 어떤지 알아봐야 해. 그래서 네트워킹이 중요해. 이는 많은 정보를 얻어서 판별하기 위함이야. 게다가 가장 확실한 것은 투자받은 스타트업의 대표를 만나보는 거야. 그것만큼 확실한 게 없어.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하는지, 후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가급적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얻을 수 있어야 해.
자! 이제 누구를 만나야 할지 정했다고 다 된 건 아냐. 타이밍이라는 것은 좀 범위를 정하기 쉽지 않거든. 예를 들어, 투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을 산정해야 해. 투자금이 통장에 들어오기까지 걸리는 기간 동안에도 운영비는 지출되니까. 자금은 필요한데 투자 유치까지 걸리는 시간 사이에 줄어드는 통장잔고만큼 심장이 쫄깃해지는 상황에 처하면, 투자 협상의 자리에서 절대적인 “을”의 위치가 되어버리지. 그럼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근거로 투자받기는 어려워져. 지분을 상품이라고 가정하면, 상품을 사는 입장에서는 좋은 상품을 좀 더 싸게 사길 원할 거야. 근데 파는 사람이 상품 판매 마감시간에 쫓기거나 지금 당장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떨이로라도 팔려고 하겠지. 그 과정에서 진짜 밑지고 파는 경우도 발생할 거야.
또 다른 타이밍은 바로 시즌이야. 12월 ~ 1월 사이에는 거의 모든 기업과 기관들이 바빠. 1년 동안 집행한 예산과 수익을 결산해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연말연시 모임도 많다 보니 새롭게 무얼 추진하거나 시작하기 어려워. 적어도 1월 중순까지는 말이야. 그렇기에 아무리 늦더라도 12월 초까지는 컨택하길 바래. 일반적으로 11월 ~ 12월 초까지는 투자사들이 한 해 동안 발굴한 포트폴리오 기업들에게 데모 데이나 IR/네트워킹 자리를 크게 열거든. 그 이후로는 한 동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마지막으로 정책/시장에 의한 타이밍을 고려하면 좋겠어. 사실 이 부분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타이밍이야. 정부의 산업 정책에 대한 방향에 의해 VR이라던가 인공지능이라던가 이런 트렌드가 시장을 지배하기도 하지. 또는 시장에서 기존에 텍스트 중심의 SNS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영상 중심으로 넘어가는 트렌드가 형성되었어. 그러다 보니 영상 기반으로 한 여러 플랫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기대 심리가 높아졌지. 한일 관계라던가, 중국의 무역 제제, 베트남의 축구 열풍으로 인한 한류 확대 등 다양한 외적인 영향에 빠르게 대처하여 타이밍을 잡을 수도 있어. 실제로 베트남에 인플루언서를 통한 플랫폼을 하는 스타트업은 이번에 박항서 감독 열풍에 힘입어 기회를 잡은 사례도 있지.
요약하자면, 투자유치 역시 영업이라고 생각하면 좀 이해가 쉬울 거야.
하지만 이건 영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라고 생각해. 이미 고객(투자자)은 우리가 스타트업이라는 걸 알고 있고, 우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거든. 게다가 고객은 한정할 수 있고, 우리가 발품을 팔수록 그들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 그렇기에 투자가 어렵게도 느껴지면서 쉬울 수도 있다는 거지. 먼저 지레 겁을 먹을 필요도 없고, 너무 만만하게 대충 준비해서도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 그러니까 도전해봐.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법이야. 처음부터 열리지는 않겠지만 점차 문 안의 사람이 궁금해하거나 귀찮아하거나 어쨌든 문은 열리게 되어있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움직이자고.
(역주)
* 스마트 팜: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지능화된 농장을 뜻함. 최근 사물인터넷 기술의 상용화로 기존의 노동집약적 농업에서 여러 작물의 생육 조건을 통신을 통한 조절하는 비즈니스가 늘어나고 있다.
* micro VC: 엔젤투자자와 VC인 창업투자회사의 중간 단계를 연결해 주기 위한 형태로 만들어진 투자 영역으로 주로 시드 투자 단계에서부터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집행을 하는 투자사를 말한다. 엑셀러레이터의 경우 이러한 마이크로 VC와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결합한 형태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