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넘어서 여러 기업들과 인사담당자들을 통해 90년대 생들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각종 베스트셀러 도서와 콘텐츠들이 넘쳐나면서 “꼰대”들에 대한 정의와 직장 상사들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어.
더불어 잦은 이직과 퇴사의 변으로 사내 꼰대들 때문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논쟁의 끝은 정말 생산적이고 유익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어.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세그먼트를 나누는 분석이 때로는 세대/젠더/계층 간의 갈등을 더 심화시키기도 해.
90년대 생을 신인류처럼, 새로운 세대의 출현으로 규정짓는 트렌드가 이미 오랜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지는 않아.
70년대생, 80년대생, 90년대생을 나누어 공통점을 추려서 섣불리 규정짓는 걸로 끝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서로 다르다는 것만 밝히는 수준이거나 적극적으로 싸움 붙이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여. 대상에 대한 명칭이 다를 뿐, 우리는 확증편향적인 분석에 또 휘둘리는 건 아닐까?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받으려는 얄팍한 언론 플레이나 그럴듯한 전문가 행세를 하려는 일부 오피니언들의 주기적인 레퍼토리가 시작된 것 같아.
또한 90년대 생에 대한 책이나 강연들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든 건 “90년대 생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90년대 생들이 아니네”라는 사실이야(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교수님이나 학자가 분석했다는 책으로는 공감이 좀....;;;안되더라고)
우리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 의해 전해 듣는 것에 얼마나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 당장 같이 일하고 있는 90년대 생 동료와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간을 곁들인 수다 타임이 더 나을 거야.
자! 기왕 이렇게 90년대 생에 대한 담론을 시작했다면,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더 나은 방향, 더 유익한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지 이야기하자.
1. 꼰대가 꼰대들에게...
90년대 생이 어떠한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떠한 생각과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스타트업 대표로서는 꽤 중요한 일이야. 90년대 생이 고객일 수도 있고, 직원 또는 거래처나 파트너일 수도 있는데 원활한 의사소통과 지속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 줄 알아야 하지.
대화의 기본은 늘 듣는 것부터 시작이야. 우리 꼰대들도 배워야 하고, 인정하고 고쳐야 할 부분들이 있어. 상대방이 어리기 때문에 “일단 먼저 들어라”가 아니라 더 경험이나 연배가 높은 입장에서 “네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해.
우리 모두는 현재에 살고 있기에 너무 잦은 과거 소환은 자제해야겠지? 세상은 이전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점차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 애써 부인하지 마. 그 사실을 감추려다 보면 괜한 억지를 부릴 때도 있고. 괜한 심술이 날 때도 있을 거야. 어떤 집단/조직에서 어른이라면 그에 걸맞은 태도와 행동이 필요해. 말을 줄이고 듣기를 즐겨야 해. 공감하려는 노력을 통해 젊은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이 먼저 입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여유가 어른 다움이 아닐까?
꼰대들아! 꼰대들을 척살하자!
2. 꼰대가 90년대 생들에게...
90년대 생에게도 부탁할 게 있어.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며 강요하고,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꼰대라고 부르는 너는 알아야 해. 너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보기에는 너 역시 꼰대라는 사실을 말이야. 또한, 꼰대들이 일방적이라고 느끼듯 꼰대들에게 90년대 생이라는 세대도 일방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어. 이건 “90년대 생”이라서가 아니야. 어떤 세대든 살아온 세상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야. 단지 그것뿐이야. 시각이 다르고, 행동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 그 평행선이 하나의 점에서 만나기 위해서 누군가는 각을 틀어야 하지. 그런데 더욱 빨리 만나는 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선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몸을 틀어야 한다는 거야.
꼰대들이 너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움직임에서 그치지 말고, 젊은 너 90년대 생도 꼰대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야. 너의 의견이나 하고 싶은 말을 들어달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다음 순서로 상대방의 입장과 이야기에도 귀를 열어 두는 자세가 필요하지. 나이와 성별, 지위와 역할 등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단 하나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거야.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단절은 시간이 흘러 오해와 반목을 쌓이게 만들거든. 그렇기에 꼰대들과 90년대 생들이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경청과 공감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같은 뜻, 동일한 방향, 꿈꿔온 목적을 바라보며 같이 성장할 수 있고, 함께 성공할 수 있을 거야.
3. 90년대 생은 특권이나 저주가 아니라 지금의 젊음이야.
얼마나 취업하기 힘들고, 얼마나 많은 스펙을 갖춰야 하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빚더미에 올라서 삶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세대라고 한탄하고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라고 자조하지만 과거 우리 윗세대들도 그런 생각, 그런 태도가 없던 건 아니야.
하루 먹고살는 걱정은 어느 시대에 살았든 간에 꾸준히 있었고, 그 시대를 찬양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던 반면, 저주하고 비판하던 무리는 꼭 있었어.
그것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지는 바로 옆을 둘러봐도 알 수 있어. 현실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완전함에 지금 당장의 삶이 힘들지라도 누군가는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고,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는 더 나아진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 예를 들다면,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이야기해 볼게(아무래도 다른 쪽은 몰라도 이건 내 삶 속 이야기니고 내가 당사자 쪽이니까)
이미 대기업들이 골목상권까지 다 장악하고, 더 이상의 혁신이나 기회는 없을 거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타트업이 도전하고 고군분투하면서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어쩌면 우리는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과 같아. 그럴듯한 스펙도, 유구한 업력도, 화려한 멤버도 아니고 아빠 엄마의 뒷배경조차 기대할 수 없는 약자 중 약자일 거야.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지.
다시 일어나 무엇이 실패의 원인이었는지, 어떤 방법이 더 나은 방법인지 찾아가길 멈추지 않아. 이 바닥에서 우리는 젊으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위안 삼자는 게 아니라 “아프니까 다음에는 덜 아픈 방법을 찾자, 이왕이면 안 아프면 더 좋고”가 되자는 말이야.
젊으니까 열정이나 패기가 넘친다고 말하지 않아.
중년들도 열정과 패기는 있어.
꿈은 젊은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늙은이도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이상이야. 그럼 젊음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세상의 트렌드에 민감하고 빠르게 적응한다는 거야.
그리고 아직 틀에 갇히지 않은 생각의 체계가 누군가에게는 개념 없다는 말을 들을지는 몰라도 젊으니까 가질 수 있는 고유 스킬이야.
다시 말해서 누구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이 다른 어떤 세대보다 높을 시절이란 뜻이야. 그게 스타트업과 지금의 젊은 90년대 생과 공통점이야.
역시나 나는 꼰대라서 괜한 잔소리로 마무리할게.
“흘러가기만 하면 남는 것은 없어.”
너는 세상을 비난하고, 환경을 탓하며, 핑계를 습관화하지 말고 네 길을 개척해. 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즐거움을 희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더 하고 싶은 것을 멈추고 절제해야 할 시기도 있어. 너의 젊음을 최대한 활용하고, 가장 멋들어지게 채워가길 바래.
그 방법이 마음껏 즐기고 노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남는 것이 모여야 채워진다는 걸 깨닫길 바래.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이유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는 걸 모른다면 어느 시기엔가 네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끝없는 좌절과 후회로 인생을 자포자기하게 될 거야. 그리고는 세상을 미워하고, 남을 시샘하고, 너만의 세계를 닫아 놓고 그 틀 안 깊숙이 숨을 거야. 너의 젊음이 그렇게 끝나버리면 누구도 동정하지 않아.
드라마 [미생] 중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장그래와 대화하는 장면 발췌
드라마 [미생]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멋진 꼰대 "오상식" 차장님이 있어.
젊은 김에 이왕이면 화려하게 빛나는 게 젊기에 이왕이면 더 높이 뛰어 보는 게 어때? 젊은이기에 이왕이면 더 큰 꿈을 만들어가는 게 어때? 10년 후, 00년대 생에게 꼰대가 아닌 멋진 선배로, 인생 모델이 되는 멘토로 엄지 척하는 네 모습을 상상해 봐. 아직은 우리 꼰대들이 이루지 못한 꿈들을 너희도 꿈꾸길 바래.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 봐. 너를 보며 과거의 나를 보듯 흐뭇하니까. 네 앞에서 끌어주고, 네 뒤에서 응원할게. 그리고 네 옆에서 손잡고 같이 걸어갈게. 너도 우리의 손이 민망하지 않게 모른 척 잡아주렴. 우리 함께 정상에 오르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