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때문에 생긴 고민
해마다 떠나는 바캉스지만 텃밭 때문에 고민이 깊었던 적은 없었다. 매년 이상기온으로 예측 불가한 기후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올여름처럼 내 목덜미를 잡지는 않았다. 아직 한여름은 시작도 않았는데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릴 줄 꿈엔들 예상했겠는가. 참으로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물론 여름 파리지역 날씨가 언제나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세계 테니스 경기 롤랑 가호스(Roland Garros)가 열리는 5월, 6월에 자주 비가 내렸던 것을 감안하면, 올 6월 날씨는 너무나 엉뚱하고 생뚱맞지 않은가. 예외적이고 가혹할 뿐이다.
사실은 출발 전날 일기 예보를 보고서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왔음에도 도통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작년 부활절 바캉스 때 이미 따끔한 맛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때늦은 냉한으로 텃밭의 모종들이 누렇게 삭아 내려앉은 모습에 얼마나 황당했던가. 그 기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평소보다 부지런을 떨어서 일찌감치 심어 놓고 떠났었던 것이 애석한 결과를 낳았었다. 하지만 그때야 모종을 다시 사서 심을 수 있는 시기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러기에는 많이 늦다.
만약에 이 농사를 망치면 올 텃밭 수확은커녕 채소 구경도 못하고 해를 넘겨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즐거움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매우 무미건조한 여름 식탁을 맞이하게 될 터이다.
또 코푸섬 날씨가 시원찮으니 파리지역 일기에도 더 민감해졌다. 내 호기심이 하루가 멀다 않고 일기예보를 살피게 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어찌 된 일인지 파리지역 날씨가 오히려 더 쨍쨍하다. 위도상 남쪽의 그리스 코푸섬보다도 기온이 더 높지 않은가. '이를 어쩐담?' 그때마다 불쑥불쑥 조바심이 엄습해 속을 태웠다.
"괜찮을 거야. 만전을 기해 놓고 왔잖아"
위로하는 남편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초조감은 온전히 떨쳐지지 않았다. 긍정적이게 생각하기에 약간 외통이다. 눈앞에서 말라비틀어지는 모종들 모습이 왔다 갔다 머리를 어지럽혔고, 상상조차 싫어서 고개를 흔든다. 그럼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나는 이천 킬로미터 밖에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을 믿고 의지하는 것 밖에. '될 대로 되겠지' 밤이슬에 한가닥 기대를 걸면서 절반의 포기를 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인지를 좀 더 상세히 말하면, 바캉스를 떠나기 전날, 텃밭에 옮겨 심은 채소모종이 그때까지 꽃은커녕 꽃망울도 맺지 않고 있었다. 다시 말해 뿌리가 땅속 깊숙이 내렸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뿌리가 흙냄새를 맡고 제대로 터를 잡았다면 당분간 물을 주지 않아도 견딜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 한창 자라는 모종에게 적절한 환경은 필수요건이다. 물 없이 24일 동안 강한 햇볕아래서 버틸 수가 있을까?
물론 물 한 방울 없이 지탱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설마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겠는가. 항상 그랬으니 안 그럴 리가 만무하다 생각했다. 제아무리 파리지역 여름이 건기철이라 해도 화창한 날씨가 10일 이상 계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동안 한 달간 씩 걱정 없이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긴가민가 설마 했던 일이 사실이 되었다.
출발전날까지도 앞으로 일주일간 비소식은 보이지 않는다. 온통 샛노란 해님들이 월화수목금토일 반짝거리며 웃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말짱한 해만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기온 또한 20도 후반에서 맴돌며 30도를 웃돌기까지 했다. 이 또한 흔치 않은 경우다. 그리고 또 그다음 주 월호수목금토일도 똑같았다. 비로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걱정이 앞을 막고 선다.
이대로 떠나려니 마음이 편할리 만무했다. 애정인지 애착인지 소유물에 대한 욕망인지...
자동 급수기 장치도 생각했지만 설치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아니 어차피 오랜 기간 집을 비울 때는 만약을 대비해 수돗물도 잠글 텐데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출발 전날 남편의 제안에 따라 부랴부랴 서둘러 실행에 옮겼다. 인터넷상에서 찾았다는 정보는 매우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아주 그럴싸했다. 공공정원에서 흔히 목격하던 것이다. 나무껍질을 덮어놓은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 최대한 수분 증발을 막는 방법으로 모종 주변 땅에다 나무 잔가지나 잎사귀를 덮어 주는 것이다. 바로 보습 효과이고 역할이다.
마침 퇴비통에는 전날 깎아 촉촉한 잔디가 가득 담겨 있다. 부족한 부분은 생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보충하면 된다. 우리는 거름통을 거꾸로 뒤집다시피 해서 퍼낸 퇴비를 모종 주변에다 덮고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 이중삼중 빈틈없이 막아주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보니 마치 두툼한 이불을 덮고 고개만 빼꼼히 내민 듯 모종인지, 텃밭인지, 거름더미인지 분간도 어려웠지만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서 물도 흠뻑 주었다.
"자, 이제 된 것 같아 이만하면 괜찮을 거야"
"제발이지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는 바캉스를 떠나던 것이다.
우리가 십 년 넘게 텃밭을 가꾸고 있지만 이렇게 강구하는 예방책도 처음이다. 한 번도 물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더위나 가뭄 때문에 문제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파리 지역은 아무리 건조한 여름이라도 보름씩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이 없고, 보름 넘도록 남쪽지방처럼 누렇게 잎을 마릴정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4일간의 바캉스를 보내고, 우리는 저녁 늦게 도착했다. 푸르스름한 하늘, 형광빛 땅거미가 상쾌한 공기를 몰고 온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텃밭으로 향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채마밭에 작은 숲이 왔다. 푸르름 그 자체다. 모종들은 온데간데없고 완숙한 식물만이 춤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모두가 자유분방 평화롭다.
짙푸른 토마토 잎사귀가 자랄 대로 자라 무성하게 땅을 뒤덮고, 제멋대로 곁가지를 거느렸다. 그 사이사이 매달린 녹색 탁구공 크기만 한 토마토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리고 고추와 피망, 가지도 꽃들을 피우면서 때로는 열매가 되어 봉긋이 고개를 내민다.
그런데 어른 팔뚝보다 더 큰 호박을 어찌할꼬? 이 녀석은 올해도 가장 먼저 우리 식탁에 오르려고 꽤나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옆에서 이미 늙어버린 상추가 얄밉지 않은 보라색 꽃망울을, 배추만큼 자라 버린 또 다른 종의 상추가 좁은 텃밭에서 관목노릇을 한다. 어깨를 비집고 몸짱으로 난리 법석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혼이 나갈 듯 환장하는 텃밭 식물들을 보니 너무나 반갑고 기특하고 기가 찬다. 대견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이 엄청나게 자란 것들을 모두 어떻게 처리하나 엉겁결에 또 다른 근심이 기어들고 있었지만,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채소를 사지 않아도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내 상상과는 한정 없이 동떨어진 이 풍경.
자연의 생명력, 그 강한 의지에 내 오만했던 근심이 부끄러워진다. 내 손길만이 필수다고 여겼던걸 반성한다.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노고도 있겠지만, 분명, 기필코, 하늘이 도운 것이다. 아무리 쨍쨍한 날에도 밤새 내리는 밤이슬이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생명수, 보약, 신비로운 자연의 대칭, 그 조화, 법칙과 순환이 있다. 어떻게 감탄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결코 제 역할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새로운 것들을 하나둘씩 발견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름 아닌 보습력으로 깔아주었던 퇴비와 나뭇잎, 잔가지들이 보습효과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외 여러 가지 이로운 점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즉 잡초의 차단이나 방지에도 효과가 있을뿐더러 깎은 잔디와 나뭇잎들이 말라 썩으면서 자연스레 모종에 거름이 되었다. 그러하여 이렇게 크고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물을 줄 때마다 바닥에서 수압에 튕겨 난 흙이 언제나 내 신발과 바짓가랑이를 더럽혔는데 지금은 그런 일도 없다. 또 그 수압에 흙이 쓸러 잔뿌리가 허옇게 드러나는 것도 방지한다. 뿌리 노출이 심하면 식물은 당연히 허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왜 이 유익한 것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까?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만큼 생각이 짧았거나 무심했거나 결국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어쨌든 텃밭농사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역시 배움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