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에 <은의 마을> 지로카스터르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탄 미니버스는 지로카스터르로 향해 출발했다. 나는 운 좋게도 맨 앞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기다림의 행운! 답답하지 않게 갈 수 있으니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쳐 목덜미에 들어붙은 더위를 식힌다. 버스가 언덕길을 막 돌아 사란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순간 잠시나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금세 멀어지는 도시의 모습과 함께 사라진다. 그새 미운 정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지로카스터르(Gjirokastër)는 사란다에서 미니버스로 넉넉잡아 1시간 30분이면 닿는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도로는 차량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생각했던 거보다 포장도 잘 되어 버스가 마치 당구대 위에 굴러가는 공처럼 시원하게 달렸다. 아직 공사 중인 모습이 간간이 보이기도, 건너편에 비포장 좁다란 옛 길도 보인다. 우리의 버스는 산과 협곡을 끼고 달렸다.
어느새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저 멀리서 사방으로 우뚝 솟은 산들이 아늑하게 둘러싼 모습은 티끌 없는 전형적인 시골의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거기서 이따금 소와 양 떼들이 풀 뜨는 모습도 스친다. 버스가 마을 근처 언덕을 오르는데 남편이 내게 벙커를 보라며 가리킨다. 알바니아 노동당 초대 제1서기이자 알바니아 제22대 총리를 지낸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가 전국 곳곳에다 이런 벙커를 무려 7만여 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이 어찌 편집증적으로 보이지 아니할 수 있는가?
미니버스가 지로카스터르 시내로 들어섰다. 도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제법 크고 번화해서 약간 얼떨떨했다. 나는 시골의 작은 옛날마을 정도로 생각했었다. 상상은 상상일 뿐. 그럼에도 해안가에 밀집된 사란다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형태로 언덕에서 평지 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운전사는 친절하게 구도시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워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남편은 그의 머릿속에 미리 그려둔 약도대로 나를 이끈다. 구도시는 여느 유럽의 중세도시처럼 높은 언덕 위에 있다. 하지만 길이 이토록 매우 가파르고 포석이 깔린 험준한 오르막일 줄은 미처 몰랐다. 오랜 세월을 전하듯 포석의 틈새가 울퉁불퉁 파이고 어긋나 캐리어 가방을 끌기에 너무 힘들었다. 가방의 바퀴가 돌과 돌 틈사이에 자꾸만 걸리고 끼어들어 그때마다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올려야만 했다. 뒤를 돌아보니 까마득한 내리막은 더 아찔했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곧바로 미끄러져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만 같았다. 차라리 오르막이 덜 위험하게 느껴졌다.
한참 아래에 같은 미니버스를 탄 젊은 부부가 서로 멀치기 떨어져 오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린 채 씩씩거리며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밀어 올리고, 그의 아내는 저만치 뚝 뒤처져 아득히 아래에서 축 늘어진 모습으로 아주 힘겹게 오르고 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이 아닌, 고통을 함께 짊어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된다. 동시에 여기까지 도달한 내 깡다구와 강단 있는 당찬 기질에 고무되어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그러나 옛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내 흐르는 땀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이제 숙소에 거의 다 온 것 같아. 조금만 더 힘내자?"
남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나타내지 못했다. 잔뜩 화도 차올랐고, 너무 숨이 차서 목구멍까지 막힌 것 같았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좀 더 많은 정보가 있었더라면, 구태여 겪지 않아도 될 고생. 택시를 탔더라면 금방 도착할 거리를 이 무슨 생고생인가? 이 실속 없는 괜한 고생의 원인제공에는 운전면허증을 챙기지 못한 것도 이바지했다.
때론 여행에서의 고생이 좋은 경험과 추억도 되겠지만, 체력의 소모가 시간과 여행을 망칠 때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자주 느끼는 점이다. 사실상 내가 즐거운 여행을 원했지 역경과 시련을 타개하는 고난의 행군이나 극기훈련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에서 정보란 중요한 밑그림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보가 명확하지도 많지도 않았다. 그만큼 이 나라를 찾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니까 제법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는 가운데 왼쪽에서 배낭을 멘 북유럽인 가족이 침묵을 지키며 무겁게 긴 종아리를 끌어올린다.
드디어 남편이 어느 골목입구에서 멈춘다.
"이제 다 왔어, 내 생각에 이 골목이 맞아"
고개를 추켜올려보니 길은 위쪽으로 끝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골목길을 들어서자 담장을 감싼 덩굴장미가 햇살을 받아 요요하게 피어있다. 그 아슴푸레 은은한 모습이 마치 씩씩대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명랑하다. 그것을 바라보며 잠깐 발길을 멈춰 길게 숨을 들어 쉰다.
우리 숙소는 그 집을 지나서 다시 세네 집 건너 이 아름다운 골목의 한가운데쯤에 있다. 그리고 매우 특별해 보이는 짙은 노란색의 멋스러운 집이 나온다. 역사적 건물임에 틀림없어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대한 내력을 설명한 푯말이 세워져 있다. 바로 그 옆집이 우리가 지낼 숙소다.
우리는 두세 개의 돌계단을 올라 아치형 나무대문을 살짝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문이 열린다. 지긋한 노인 분이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Hello!, Hi!" 인사를 했고,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내 가방을 받아 들고서는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우리를 안내한다. 문턱을 넘어 마당에 들어서는데 은은한 재스민 꽃향기가 상큼하게 우리를 반기며 이 집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시킨다. 집은 사진에서 본 바 대로 고아하다. 곳곳에 놓인 골동품 같은 옛 가구와 물건들이 장식으로 진열되어 있고, 하얀 손 레이스와 카펫이 깔려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깨끗했다. 매우 고풍스럽다. 흡사 작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거실의 열린 문 밖으로 긴 발코니가 있고 그 너머에는 아래로 펼쳐진 신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탁 트여 상쾌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와우!" 하며 환희에 찬 단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즈넉한 풍경이다. 사실상 이 점에 반하여 비싼 값을 치렀던 것이다.
그때까지 주인장은 흡사 무언극 배우처럼 단 한마디 말도 내뱉지 않고서 모든 것을 안내하며 알려준다. 침실과 샤워실, 부엌찬장 안에 든 커피를 비롯한 양념류와 식기류... 그 외 냉장고 문을 열어 보이며 가리키기도 수돗물을 틀어 당신의 손으로 직접 받아 마시기도 했다. 다시 말해 수돗물을 그대로 마셔도 된다는 뜻이었고 모든 비치품은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 굿!'으로 짧게 답했다. 따라서 나는 그가 벙어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벙어리가 아니라 영어소통장애로 인해 게스트를 맞이하는 당신만의 비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아파트는 없는 게 없이 모두 잘 갖추어져 있었고, 여주인의 성품은 매우 깔끔하면서도 너그럽고 유별난 취미를 가지신 분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다. 사란다의 아파트 주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주인장이 나간 후 우리는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크고 묵직한 예스런 나무식탁 위에는 라키(Raki, 또는 라크, 그리스의 크레타 섬과 튀르키예의 전통술)를 비롯해 사탕, 비스킷, 과일이 가득 놓여있었다. 그 량이 실히 우리가 머물 며칠 동안의 간식거리로 충분할 것만 같다. 인색하지 않은 후덕한 주인부부의 인심에 힘들었던 여정도 일순간 달아난다.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남편은 가방을 풀지도 않은 채 사탕을 집어 내게 권하면서 "라키 마실래?" 하고 묻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멋진 조그만 크리스털 유리잔에 반 정도 라키를 채워서 발코니 탁자에 놓고 앉았다.
언덕 저 아래로 광활히 펼쳐진 도시가 커다란 지도를 활짝 펼쳐놓은 것 같다. 우리가 저 아래서부터 방금 걸어 올라왔던 것이다. 이 그림 같은 경치를 바라보면서 라켓 술 한 모금을 입안에 담아 삼킨다. 맛이 좋다. 알코올성분이 뜨끈하고 짜릿하게 목구멍을 지나 위장을 타고 넘어가면서 싸였던 피로마저 시원하게 쓸어내린다. 활기가 되살아난다. 고생에 대한 보답! 노력 끝에 맛보는 행복!
우리의 호스트는 프로답게 여행자 게스트의 상태와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는 분이었다. 이처럼 첫날 게스트를 위해 준비하는 호의는 그리스인들이 손님을 환영하는 방식의 예법이다. 그리스 여행 중에 언제나 경험하던 것으로써, 하다못해 냉장고에 생수라도 넣어둔다. 여행자들은 이 작은 것에서부터 온정을 느낀다.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우리는 주인부부가 그리스계 알바니아 인임을 알았다. 주인부부는 물론 이웃들과도 그리스어로 말했다. 이후 호기심에서 여주인께 여쭈어 본 결과 그들은 이 지역에서 조상 때부터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맛집으로 소개한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도 먹을 겸 나가려고 마당을 나섰다. 어느새 주인장이 나타나더니 역시 손짓으로 골목을 빠져나가 다시 위로 올라가라는 시늉을 한다. 아주 조용하신 분이다.
산 중턱에 자리한 옛 도시의 중심가는 크지 않았고, 그 가운데즈음 요새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우리는 요새를 보는 것보다 식욕을 채우는 게 더 우선이었다. 가이드책에서 본 맛집 레스토랑은 중심도로를 살짝 비껴 나 커다란 나무 그늘아래 있었다. 한적한 분위기가 꽤 좋았다. 포도주 한잔씩, 그리고 그리스 음식과 유사한 전통식을 주문했다. 남편은 맛있다고 했지만 조금 짜서 내 기대에는 살짝 못 미쳤다.
그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산 중턱에서부터 드넓게 펼쳐진 비탈길을 따라 잘 보존된 수많은 전통가옥들과 함께 참으로 아름답다. 이 특이하고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려고 온 것이다.
회색빛 돌을 얇게 쪼개 비늘모양으로 이어서 만든 지붕과 이층으로 된 건물, 돌을 쌓아 하부 구조를 높다랗게 지은 다음 그 위에 이층을 올렸다. 이 공법과 함께 지붕 사면의 모서리가 곡선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이고 처음 보는 양식이다. 그리고 이층 창과 함께 벽면이 앞으로 돌출된 형식은 터키식 건축물과 더 유사하다.
이 건축기법은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아도 이곳의 특수한 지형과 기후가 잘 반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사진 지형으로 비가 많이 내리거나 겨울에 춥고, 돌이 많은 산악지역임을 잘 드러낸다. 어쨌든 이 지방에서만이 볼 수 있는 아주 독창적인 건축양식으로 품위와 멋스러움을 더하여 지로카스터르의 지혜로운 옛 선조들에게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집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날 이 지역의 대지주댁을 방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