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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Feb 11. 2024

인도 여행

1. 빛의 나라



2023년 10월 28일 출발하여 11월 23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만 24일 동안 인도 최남단을 시작으로 서쪽 아라비아해를 낀 휴양지와 그 밖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벌써 집에 돌아와서도 해가 바꿨다.

나는 그동안 여행에서 받았던 좋은 에너지를 오로지 그림에다 쏟았었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도 얻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찍었던 사진을 정리는커녕 브런치에 글도 한 줄 쓰지 못했다.

왜?라고 굳이 묻는다면, 여행을 하면서 보고, 겪고, 경험하며 느꼈던 것들이 너무나 벅차고 넘쳐 오히려 머릿속이 수도자의 방처럼 텅 비어버렸다. 막상 컴퓨터를 켜서 자판기 위에 손을 얹어놓으면 소진된 배터리처럼 멍해졌다. 어떠한 글도 쓸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아니 머리와 가슴속을 꽉 채운 그 아름다움에 대한 충만함 때문에 글자 자체가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신선한, 새로운 것들, 정겹고 낯선 이색적인 문화, 이 다양하고 수많은 소재들이 밤하늘 별처럼 반짝거린다. 하지만 막상 글로 옮겨보려 하면 앞다퉈 동시에 쏟아져내려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제각기 두서없이 뛰쳐나온다. 필터링을 위한 시간이라는 여과기가 필요했다.

하루 이틀, 한 달 그렇게 해가 바꿔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정리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마냥 미루기보다는 일단 서툴고 부족할지언정 먼저 튀어나온 것들부터 정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모든 것을 옮겨놓기란 불가능하다. 분명 내 기억의 한계와 함께 글로써 제대로 표현할 능력 또한 부족함도 잘 안다.


그렇지만 인도를 다녀온 뒤 내 일상의 리듬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겨울철은 언제나 늦잠 때문에 아니래도 짧은 하루해가 더욱 짧아 빗나간 총알처럼 하는 일 없이 지나갔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얼마간 몸살을 앓고 난 이후부터는 두 시간 남짓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겨 충분히 오전시간을 작업실에서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건강해졌다는 신호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좋은 에너지원이다. 그 영향력은 삶에 있어 큰 자극제가 된다. 내가 작가로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요구되는 윤활유 같은,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그러므로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언제나 그것을 갈망하는 연유인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도를 동경하며 꿈꾸어왔었지만 좀 더 일찍 감치 떠나지 못했던 이유가 남편의 적극적 동조나 반응이 없었고, 그 외 용이하게 갈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훨씬 전, 그러니까 1989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인도의 여러 곳을 다녔었다. 그가 당시 인도에서 사 들고 온 나타하자 시바의 동상과 동 항아리는 지금도 우리의 작은 거실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다. 약 12킬로 그램이나 되는 이 무거운 시바의 동상을 그는 타밀나두 주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 시에서 구입해 남은 여행기간 30여 일 동안을 내내 어깨에 메고 품에 안고 다녔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

나 또한, 리드미컬한 여러 개의 팔과 함께 왼발을 높이 치켜들고 춤추는 나타하자 시바의 동상을 보면서 인도에 대한 동경을 한층 더 키워나갔던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이번 탄자부르에 있는 박물관에서 원 없이 보았다. 또 지금은 인도의 상점에서도 거의 사라지고 플라스틱으로 대체된 동으로 만든 물통 역시 인도인들의 일상에서 늘 사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플라스틱 제품으로 교체된 모습을 보고 경제성장이 이룬 현대사회의 폐단으로 비쳤다. 흡사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케 하여 안타까웠을 뿐이다.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나타하자 시바의 동상과 동으로 만든 물통
탄자부르 박물관에 전시된 나타하자 시바의 동상


솔직이 인도는 외국인들이 편안하게 쾌적한 여행을 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그토록 쉬운 길이 아님에도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인 나라임에는 분명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뜻이다.

인도하면 누구나 쉽게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영적인 나라, 힌두교, 불교, 무슬림교가 다 같이 공존하는 문화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명상, 요가, 채식, 소와 코끼리 숭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원숭이 떼, 릭샤, 사원과 전통의상, 사리를 입은 여인들, 그리고 대표적인 음식으로 카레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 바스마티 쌀, 빵처럼 먹는 난, 인도인들이 좋아하고 즐겨마시는 우유와 설탕을 섞은 전통차 짜이...  셀 수 없이 많다. 나 역시 이런 것들을 상상하며 막연히 동경했고, 또는 시인 <류시화>의 인도 여행기를 읽으면서 인도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인도가 존재했었다. 나타하자 시바를 연상케 하는 전통 인도 춤과 고전 음악의 대가 키쇼리 아몬카르(Kishori Amonkar, 1932-2017), 그리고 <사타야지트 레이, Satyajit Ray> 감독의 <아푸, The Apu> 3부작과 <리테쉬 바트라, Ritesh Batra> 감독의 <런치박스, The Lunchbox> 영화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직접 새롭게 느낀 인도 풍경으로 힌두사원과 석상들의 아름다운 유산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으며, 화려한 오색의 전통의상과 신을 숭배하는 헌신적인 모습, 또한 무엇보다 가장 잊지 못할 감동적인 점이 사람들의 온정 어린 순박함이었다. 특히나 인도에서 가장 짙은 피부색을 가진 타밀나두 주의 사람들 마음속에는 순두부같이 하얗게 맑고 부드러운 따뜻함과 순수함이 있었다. 또 그리고 빛의 나라임을 분명히 알았다.

여기에 덧붙여 참 모순적이고도 대립적인 풍경으로서 호객행위와 바가지요금, 인구만큼이나 많은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공포스러운 경적음, 그 소음과 쓰레기, 그리고 가난과 먼지를 뒤덮어 쓴 빈민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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