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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Mar 15. 2024

인도여행

6.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서



그때, 그곳, 그들을 생각하면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뭉클 솟구치는 뜨거운 것이 있다. 찡한 온정이다. 살며시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근육이 이완되는 미소. 침잠했던 마음까지 환하게 박하사탕이 되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은 내게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주었고, 나를 스타로 만들었다. 아니 졸지에 유명인이 되었다.

가는 곳곳 손을 잡자고(악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가오는 아이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하는 어른들, 손을 흔들며 미소 짓던 수많은 학생들, 남녀노소 호기심에 찬 순수하고도 순박한 눈동자가 있었다. 이 여정은 나에게 도저히 잊지 못할, 고향 같이, 온기 가득한, 정다운 곳이었다. 참으로 은혜롭고 은총 받은 날들이었다.

왜 그토록 환영을 받았는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연고도 없던 그곳에서, 어찌하여. 지금도 그 연유는 모른다. 궁금할 뿐이다. 다만 서양인보다 나 같은 한국인 보기가 흔치 않았거나, 서양인보다도 동양적 외모에 더 친근함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인도의 타밀나두 이니까!


마두라이 시 판다이 궁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건 오직 시작점에 불과했던 것이다.

궁전기둥에 잠시 기대어 앉아 휴식을 취하던 중, 전통의상 사리를 곱게 차려있은 중년여성 한 분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어 달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와 함께 찍자는 것이다. 그렇게 세 여성분과 차례로 사진을 찍었고, 얼떨결에 그들과 추억의 한 장면에 남겨졌다.

그리고는 무심코 지나갔다. 처음이라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마두라이를 뒤로하고 탄자부르 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남편과 맨 앞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급행이라 하지만 버스는 크고 작은 여러 정류장을 거쳤다. 고작 16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장장 4시간 넘게 걸렸다. 그만큼 고속도로 사정도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4시간가량 여행은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피곤도 지루함도 없었다. 창너머로 바라보는 경치가 지겹지 않았고, 무엇보다 정거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환대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해맑은 미소를 보냈고 다 같이 손을 흔들어 환영했다.

버스가 정차한 어느 소도시에서는 하굣길 교복 입은 학생들이 건널목에 서서 흡사 기획된 조합처럼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내게 보내는 메시지인 줄 몰라 누군가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했으나 급기야 우리라는 것을 알았다. 맑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수많은 눈동자와 하얗게 드러난 이빨들이 유독 더 희게 돋보이던 그들의 미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목련꽃 같았다. 거기서 나는 마치 유명인이 된 것 같은 환상, 기이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 역시 화답하여 힘껏 손을 흔들었다.

그들도 나를 본 이 생소한 경험을 서로 속닥거리며 쌈박하게 들떠 있는 모양새다. 그 순진무구한 표정들. 내 어린 시절 낯선 이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호기심이 중첩되며 나타났다.

아마도 대중 앞에 선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이런 기분일까? 인기가 주는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피곤함도 지루함도 잊게 만드는 환각성이 있었다.


버스는 다시 어느 한 소도시 터미널에 정차를 시켰다. 때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며 터미널 앞에 서 있던 수많은 학생들과 군중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동시에 그들의 시선을 쏟아붓는다. 약간 서먹하고 어색한 기분이 없지도 않았지만 급한 나머지 그 시선을 외면하고 재빨리 화장실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모든 눈동자가 또다시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각찰했다. 나는 태연한 척 버스에 올랐다.

좌석에 앉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나 지금 너한테 굉장한 질투를 하고 있어"

"왜?"

"왜냐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너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어. 네 가는 방향 따라 고개가 한꺼번에 돌아가더니 너만 쳐다보는 거야. 그들 눈동자가 너를 따라 움직였어"

나는 화답의 뜻으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손을 크게 들어 흔들었다. 모두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 짓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같았다. 이 순수하고 해맑은 장면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겪어보지 않고서 이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따뜻함을 알 수 있을까? 글로써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보니 공중 화장실 앞에서 사용료를 받던 까만 피부의 젊은 청년이 순간 내가 나타나자 움칫 놀란 듯 마치 신기한 것이라도 목격한 호기심 어린 눈빛. 그러나 이내 수줍음을 감추고선 빤(씹는담배)에 물든 빨간 이빨을 살짝 벌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언뜻,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선하디 선한 눈동자가 조심스럽게 '너는 누구야? 어디서 왔어?'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탄자부르 시의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주인 마담부터 직원, 레스토랑 종업원들까지 한결같이 친절하게 돌봐주었다.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주인 마담은 내 모습이 인도사람도 더군다나 유럽인도 아니라 궁금하다며 나에게 정체성을 묻기도 했었다.

다음날 탄자부르 시의 힌두교 사원을 방문했을 때도 아니나 다를까 많은 시선들이 은근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슬쩍슬쩍 쳐다본다.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뜻이 이것일까?

사원을 둘러보고서는 한적한 곳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데 소년들이 다가와 대뜸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당연히 응답으로 미소와 함께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다음 소년, 또 다음, 또 한차례 의식을 치렀다.

탄자부르의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 호기심 가득 찬 눈을 떼지 않으며, 조금은 불편하게 자꾸만 따라붙는 사람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타물 어를 할 줄 아는지? 관심이 참 많은 타물 사람들, 그들은 밀접한 관계를, 접촉을 좋아했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시장통을 한 바퀴 걸었다. 그 많은 장사꾼들이 보내는 관심, 낯선 이방인에 대한 흥미로움, 엷게 미소 짓는 순박한 표정과 시선들. 방금 먹은 통후추가 톡톡 터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정의 거리를 걷고 있는데, 나처럼 키가 아주 작은 여성분이 문득 내 곁에 다가선다. 어스름 속에서 피부가 더욱 까맣고 거친, 주름살이 깊은 고랑처럼 패인 얼굴을 보았다. 나도 멈칫 그러나 서슴없이 그 자리에 섰다. 여인은 머리에 이고 있던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는 이 홀연한 상황에서 얼떨결 그러나 매우 반가운 마음으로 두 손을 꼭 잡았다. 순간 딱딱하고 거친 촉감이 전해졌다. 아주 찰나지만 코끼리 가죽을 연상시킨 손결. 그러나 참 따뜻했다. 그리고 머리에 인 대야까지 내려놓던 그 인정이 내 마음까지 쏙 앗아가 버렸다.


또 한 번은 바다미 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굴사원을 보고 밖으로 나와 넓게 펼쳐진 풍경과 더불어 담장에 기대서 있는데, 한 소년이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이젠 아주 일상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곧바로 '오케' 하며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 소년은 자기 동생 손도 잡아 달란다. 나는 지체 없이 수줍어하는 그의 동생과도 온기를 나눴다.

그리고 맞은편 석탑들이 있는 한적한 곳을 걷다가 잠시 석탑에 기대앉았는데, 젊은 부부가 어린 딸과 함께 우리 옆에 와서 앉는다. 처음에는 그늘진 공간이 여기뿐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보다 그룹을, 혼자보다 단체 간 가족생활에 익숙된 그들의 문화였다.

그 젊은 아빠는 휴대폰을 꺼내 인도 대중음악을 튼다. 이 아름다운 자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우리는 그가 무안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자리를 피했다. 좀 떨어진 곳에 아주 멋진 커다란 나무아래 무슬림 사원이 있었다. 바람소리를 들으며 앉아서 땀을 식혔다. 그런데 방금 그 가족이 또다시 우리 옆으로 오더니 자리를 잡는다. 음악을 귀에 거슬리도록 계속 바꾸어가면서 틀어댄다. 슬며시 짜증이 나려 했다.

왜 잠시라도 조용히 내버려 두지 않는가? 하필 우리 곁에서... 굳이 자리도 많은데... 명상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또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그 젊은 아빠가 우리에게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한다. 그제야 영문모를 그동안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았던 이유가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음을. 오해가 이해로 바뀌자 비로소 친근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오케' 하며 적극 단체사진을 찍어 한 편의 추억 속에 담았다.

서양인들과는 다른 동양의 문화, 소극적이고도 내성적인 그러나 강렬하게 푹 파고드는, 하지만 위선이나 가식이 아닌, 직접적 성향, 따뜻한 심성, 순박한, 인도의 타물사람들이다.


독자들이여, 사랑과 관심으로 환영과 환대받기를 원하신다면 인도 최남단 타밀나두 주로 떠나보시라. 그 가운데서도 탄자부르 시를 찾아가 보시라. 내 존재의 귀중함을 확인하는 순간을 느낄 것이다. 참된 인간미를 보면서 살아 숨 쉬는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그곳에는 참다운 진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탄자부르 가는 버스와 도로
탄자부르 시에 있는 박물관
탄자부르 시의 박물관
탄자부르 시의 박물관
탄자부르 시내
바다미 시의 무슬림 사원
바다미 시의 무슬림 사원 / 바다미 시의 동굴 사원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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