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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Jul 11. 2024

인도여행

10. 힘들었던 여정



이다음 목적지로 가는 여정은 우리에게 가장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다. 처음 일정을 짤 때부터 난관에 부딪친 교통문제와 그걸 해결하느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볼 것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다. 굳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현대화된 나라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인도의 짜릿한 깡촌 풍경들이 아주 이색적이게 펼쳐지던 곳이다.

타밀나두 주가 고향처럼 인정 많은 곳이었다면, 지금 가는 카르나타카 주의 바다미는 비문명의, 회귀, 삶,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곳이다. 거기다가 황홀한 석굴 조각상들의 미적 향연 속 환희를 무엇에 비견할 수 있으라!


우리가 머물던 고아주의 콜라비치에서는 카르나타카 주로 바로 잇는 교통이 없다. 대부분 인근에 있는 마가오 시에서 기차나 야간 버스를 이용한다. 우리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 역시 자주 있는 것이 아니므로 먼저 마가오 시에 있는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타야 했다.

우리는 콜라비치에 왔던 것처럼 털털거리는 시골버스, 릭샤, 다시 완행버스를 번갈아 타고서 마가오 시에 내렸다. 그런데 오는 날이 장날, 아니 그 보다 더한 힌두교의 축제날이라 호텔 로비에서는 힌두신께 바치는 의례준비가 한창이었고, 모든 직원들도 정신줄을 놓아버린 모양새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호텔직원들은 얼빠진 정신줄이 돌아오지 않아 아침식사 준비가 덜된 상태다. 우린 계란 프라이를 주문했지만 깜깜무소식. 옆집으로 달걀을 찾으러 간 직원이 함흥차사란다. '곧 기차를 타야 하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 빵과 바나나 한 조각을 입에 물고 기차역으로 달렸다. 다행히 기차를 놓치지는 않았다.




플랫폼에는 열차를 타려는 객들로 붐볐고, 그러나 내가 익히 상상하고 우려했던, 열차에 매달리고 지붕까지 올라 탄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등급이 아닌 우리 객실도 빈자리를 찾아보긴 쉽지 않았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한 젊은 인도남성이 다짜고짜로 자리를 바꾸잔다. 부탁하는 말투도 아닐뿐더러, 자초지종 설명도 없다. 건방진 태도가 무례하고 고약하게 들렸다. 기분이 언짢았다. 나는 거절했다. 솔직이 피곤해서 도통 움직이기가 싫고 귀찮았다. 그러나 남편은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어나 상대방 좌석을 확인하더니 그 역시도 고개를 설레며 꺼림칙하게 여긴다. 왜냐면 그 자리에는 인도남성이 일자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쉽사리 그를 깨울 수 있을지, 일어나 비껴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외국인인 우리말을 들을지 의문스러웠다. 이미 우리에겐 인도인들의 윤리의식에 약간 금이 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지역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도, 어쩌면 문화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 외국 땅에서 갖는 우리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방자한 손님을 위해 굳이 열성을 받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는 정이 고와야 가는 정도 고운 법!

그렇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삼대가 다 같이 앉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비로소 나는 아주 잠깐 '바꿔줄걸, 괜히 아집을 피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가지도 않았다. 자리까지 깔아 누운 그들에게 이불마저 내어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참자고 속으로 오기를 부렸다. 그런데 그 객기가 그만 화를 불렀다.

그들은 자기 좌석은 내버려 둔 채 우리 옆 양쪽과 좌우에서 차례차례 일자로 드러눕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그들의 안방처럼 즐기고 떠들었다. 우리의 존재는 아예 보이지도 않은 듯했다. 우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또 딸인듯한 중년여성은 장장 4시간 동안 쇠를 가는 목소리로 쉼 없이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재잘거렸다. 크지 않은 목청이나 매우 날카로웠다. 잠시도 멈추는 법을 몰랐다. 예부터 여자들의 수다가 세계적인 통상이라지만 이건 도를 넘어 야만적일 정도다.

나는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아무런 뜻도, 내용도 모르는 낱말들이 환청처럼 쟁쟁 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피로를 한층 가중시켰다.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였다. 참으로 제수가 옴 붙은 괴로운 날이었다.

거기다가 열차객실 냉방은 냉동실을 방불케 하여 결국 남편이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강한 냉방은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고, 우리는 겨우 비치된 홑이불을 꺼내 덮었지만 충분치가 못했다. 아마도 그동안 누적된 피곤 탓에 허약해진 몸이 찬기운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그만 화를 불렀던 것이다. 아무래도 실내외의 심한 온도차가 그 결정타가 되었다.


드디어 후블리 역이다.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통로를 따라 출구로 나왔다. 그런데 역 출구 앞에서 기다려야 할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손님이 모두 빠져나간 역광장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그때까지도 예약된 택시는 오지 않는다. 덩그런 광장으로 하염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이 우리의 마음까지 쪼그라들게 한다. 텅 빈 광장에서 우왕좌왕 두리번거리는 동안에 하나 둘 우리 곁으로 모여드는 택시와 릭샤 운전사들. 우리가 기다리던 택시기사는 아니다. 이어서 껌처럼 달라붙는 그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려움이 앞선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우리 속을 긁으며 극도로 신경을 자극한다. 아주 귀찮을 정도로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동분서주 여러 방법을 찾아 예약한 택시 기사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런데 역내 와이파이가 영 불통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곁에 있던 택시 기사의 휴대폰을 빌렸고, 우리가 묵었던 콜라비치 방갈로에 전화를 걸어 택시기사에게 우리의 행적과 위치를 알리게 했다. 그나마 방갈로 주인장과의 원활한 소통은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침내 택시기사를 만났다. 역에는 두 군데의 출구가 있었고, 서로 다른 출구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출구가 있다는 걸 예상치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것을 택시기사도 몰랐는지 그 의문은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너무 지치고 경황이 없어 미처 물어보지 못했었다. 

만약 우리에게 휴대폰이 있었다면 아주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인걸 휴대폰이 없었고, 따라서 그 순간 모질게 진땀을 뺐었야 했다.

휴대폰은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되새긴다. 여행 중에도 그 나라의 통신망은 필수가 되었다. 오늘날 모든 게 예약제로 되다 보니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곧바로 이루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경험해 왔던 여행방식이 특히 인도에서마저 완전히 사라졌음에 대한 아쉬움을 못내 감출 수가 없나 보다. 그 여운은 다시금 그의 80년 90년대 인도여행 경험을 들러 준다. 취침시간이 되면 아무 데서나 근처에 있는 호텔문을 두드렸고, 다른 곳을 떠나고 싶을 때는 무작정 역으로 내닫았으며,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언제 까지나 머물 수 있었던, 무작정이 통하던 그 시절.

그는 아직도 스마트 폰이 없다. 내가 가진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는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심을 교체한다는 게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다. 교체하는 곳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애써 찾지도 않았었다. 그리고는 여행의 절반 단계에 이를 때까지 큰 불편함 없이 노트북만으로 잘 해결되었다. 단지 이 역내처럼 공용 와이파이가 먹통일 줄 예상을 못했던 것일 뿐. 우수한 IT 국가라는 정보를 너무 믿었던 탓일까? 

참으로 무덥고 짜증 난, 냉탕과 온탕을 넘나던 긴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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