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굽 속의 브린디시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 연안 도시

by 다나 김선자



숙소는 위치도 건물도 딱히 비판할 거리가 없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다. 멋지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멋스럽지 않은 건물을 찾기가 오히려 더 힘들 것이다. 그만큼 도시마다 나름의 긴 역사와 개성을 가진 건물들이 많아 참으로 문화적이며 인간적이다. 마치 영혼의 산물처럼. 처음으로 발길이 닿는데도 고향처럼 푸근하여 안도감이 절로 든다. 특히 이탈리아의 옛 건물들은 그 짜임새가 어느 나라 건축물보다 웅장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구도를 지녔으므로 세련되고 우아하여 한마디로 귀족적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층고에 볼륨감 있는 천장과 아치형의 곡선들, 개방감을 주는 큰 창문, 섬세한 조각장식, 파스텔톤의 은은하면서도 밝고 생기 찬 색상, 그리고 대리석과 원석의 천연재료 등이 그 대표적인 멋스러움이다.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이유고, 그가 사랑받는 까닭이다.

이탈리아는 대리석의 나라다. 지질상 그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대리석 지층이 형성되어 생산량도 많다. 따라서 건물을 비롯해 보도블록까지 대리석으로 깔려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물론 날씨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바닥이 얼거나 눈이 내려 미끄러질 염려가 거의 없을뿐더러, 차라리 고온 건조한 여름철 시원함을 제공한다.

옛날에는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 건물을 지을 때 오늘날과 달리 건축자재를 대부분 주변의 자연에서 공급받았다. 그러니까 당연히 환경과 친화적이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사람에게 거슬린다거나 어색함 없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때마침 입구 문을 열고 나온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열쇠가 놓인 곳을 알려준다. 아주 익숙된 일인 듯싶다. 그리고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열린 문을 그대로 둔 채, 이웃이라는 말과 함께 저녁인사를 불어로 한다. 친근함의 표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랑스를 좋아한다. 물론 프랑스인들도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상류, 문화, 지식층이라 일컫는 이들이 프랑스어로 말하는 경우를 본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두 언어 사이에 유사성 또한 매우 깊어 배우기가 싶다지만,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이 이탈리아어를 쓰는 경우보다 불어로 말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훨씬 많다. 독일인이나 스페인 사람들보다도.


돔 형식 천정에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아파트 현관문이 있다. 계단 벽에 걸어둔 장식품이 고양이인지 올빼미인지 아무튼 앙증맞고도 멋스럽다. 환영과 접견을 도맡은 수호신처럼.

아파트 내부는 복층구조로 아주 넓지도 않지만 결코 좁지도 않아 두 사람이 지내기에 그지없이 적당하다. 위층에는 당시 그대로의 원석 돔 천장에 널따란 침실과 욕실, 아래층에는 응접실 겸 부엌, 또 다른 욕실이 있으므로 아주 편리한 구조다. 빨간 계단의 난간이 나를 매료시킨다. 창문과 덧창문 너머에 공터가 있어 막힘도 없다.

건물의 뼈대는 그대로 살려두고 층고가 높은 내부를 현대식으로 완전히 개조한 건축가의 집이다. 한 공간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안락한 소파, 식탁, 의자, 그릇, 찻잔, 그리고 낭만적인 수집품들까지 그 어느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다. 소소하지만 갤러리처럼 실내건축가다운 주인의 취향이 물씬 풍겨난다. 그의 미적인 기호가 정겹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나하나가 고심해서 선택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틀만 머물기에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탈리아에서는(프랑스도 마찬가지) 이렇게 실내만 개조한 건물들이 흔하다 할 수 있다. 지은 지가 대체로 백 년, 또는 몇백 년씩 된 건물들이 많다 보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건물도 생물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낡은 내부를 개조하여 사는 것이야 당연하다. 더구나 이탈리아의 옛 건물들은 매우 층고가 높아 이와 같이 쉽게 복층을 만들어 공간 활용에 효율성을 주는 모습 역시 더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고풍스러운 건물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면 파리에 있는 아파트의 경우 오래된 아파트가 현대식 아파트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그만큼 찾는 이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왜냐하면 옛 건물에서 풍기는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월을 품은 역사적인 온기와 더불어 돌, 나무 등의 천연 재료가 주는 따뜻함, 부드러운 곡선과 동선이 만든 조화로움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판에 박은 듯 규칙적인, 기계화된, 차갑고 미미건조한 건축방식이 아닌...


브린디시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동남쪽 아드리아해에 접하는 장화 굽 중간쯤에서 바깥쪽 돌출부에 있다. 예부터 자연 항구가 있어 동쪽으로 가는 문으로 로마의 주요한 도시가 되었다. 현재도 마찬가지 이탈리아 풀리아 주의 브린디시 현에서 중요한 도시다.

원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서 기원전 3세기경 로마가 남부 이탈리아 정복을 완료하면서 빠르게 로마와 연결되었다. '아피아를 통해 로마의 끝으로'라는 뜻을 가진 <비아 아피아, Via Appia> 기념비가 구도시의 바닷가 광장에 세워져 있다.

브린디시는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니다. 그럼에도 활기차다. 그래서인지 더 쾌적하고 깨끗하다.

바다를 끼고 있어 상쾌함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시대에 따라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이 조화롭게 뒤섞여 아늑하다. 구도심과 바다를 두고 건너편 나지막한 현대식 빌라도 평화롭다. 도심 군데군데 광장과 더불어 녹색의 쉼터가 잘 조성되어 더운 지방이지만 전혀 불쾌하거나 삭막하지 않다. 골목골목, 곳곳에서, 역사 깊은 교회가 도시의 촛불이 되어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밝히어 주고, 오래된 건물들은 도시의 아름다운 꽃으로 운치를 더하여 향기로움을 내뿜는다. 건물들은 깔끔하게 유지가 잘 된 것으로 보아 결코 가난한 도시로 여겨지지 않는다. 도시의 형색도, 풍성한 자연도, 삶의 모양새도, 밝고 맑은 시민들의 표정도 모두가 생기 차다. 쾌적하다. 참 살기 좋은 평온한 도시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각별히 더 머물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 목적지는 레체였고, 이곳은 길목인 셈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가끔 장화 굽 속이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그 속의, 브린디시를 알게 되어 큰 만족감을 얻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새로움의 발견!

그리고 이, 삼일 머물다 가기에 싫지 않은 도시다.

도시에서는 한창 지역축제가 있는지 시장통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역시나 외지인보다 현지인들로 보인다.


레체행 열차를 타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역 앞 작은 식당의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주문한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열차시간이 임박해 조마조마한 가운데 두 번째 독촉을 하고서야 나왔다. 먹는 둥 마는 둥 역 플랫폼으로 달렸다. 그런데 열차가 연착되었음을 알린다. 오전부터 꼬이는 날이다. 10여분 기다린 끝에 도착한 레체행 열차를 탔다.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올리브 농장들이 펼쳐진다. 시골건물들조차도 멋스럽다. 이것이 지중해 풍, 이탈리아의 양식이다.

시커먼 올리브밭이 펼쳐진다. 지중해연안 남유럽에서 여름철마다 산불소식이 들리는데 이곳 역시 그 화난을 비껴 나지 못했나 보다. 처참한 잔해다. 때때로 까맣게 타버린 올리브나무 둥치 곁자리에서 막 새순이 돋아난다. 이 강한 생명력! 처음 보는 건 아니다. 늙어서 속이 텅 빈 둥치에 껍질만 남아 있는 그 끝에서 잔가지를 뻗어 주렁주렁 열매를 매단 늙은 올리브나무들을 많이 보았다. 생명의 신비로움이다.


나는 문득 어제 다시 마주친 이웃집 남성이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난 레체보다 브린디시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레체가 우리의 목적지라고 했을 때 돌아온 말이었다. 그의 편견적인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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