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자연의 생명력과 기다림의 미학

by 다나 김선자


매일 아침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에 나가는 게 내 적요한 삶의 일과 중 빠질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헛된 꿈인 줄 알면서도 이슬 먹고 밤사이 열매라도 맺었을까, 한낮에 고은 햇살 받아 꽃이라도 피었는지 부푼 마음으로 포기마다 유심히 들어다 본다. 어쩌다 한 두 자락 누런 잎을 띄거나 비실거리는 모습 본다면, 금방 사그랑 이 보듯 애잔하고, 괜스레 울적한 마음에 근심마저 든다. 반면 짙은 잎파랑이 활기차고 팔팔한 모습 보거나 밤사이 쑥 자란 키에 꽃봉오리라도 발견할 때는 가득 찬 기쁨으로 넘쳐난다. 가끔은 무심히 나갔다가 갈 때와 달리 환희와 새로운 희망을 품고 오기도 한다. 구체적 생각 없이 습관적인 무감각 행동은, 집중을 요하는 글 쓰기나 그림 작업으로 치쳐 막막할 때, 잠시 잠깐 멈추어 관심사를 바꾸는데 좋다. 아니면 적적한 일상에서 분위기 전환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크지도 않은 텃밭을 몇 걸음으로 그만이지만, 그 옛적 내 아버지께서 뒷짐 지고 휭 하니 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시듯이.


KakaoTalk_Photo_2020-05-11-15-32-27.jpeg 푸른 콩

씨앗을 심고 뿌린 지 이주가 넘었을 무렵 푸른 콩이 먼저 싹을 틔운다. 가녀린 몸으로 두툼한 흙을 끌어올려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 강인한 힘, 내 진즉 알았지만 몇 년째 묵은 콩이라 이번만큼 크고 작은 기대 따윈 갖지도 않았다.

코비 19로 인하여 모종도 쉽게 살 수 없으니 어차피 뒤집어 놓은 땅 자리라도 메꿀 심상으로, 작년 심고 남긴 씨앗을 모조리 땅에 박아 두었을 뿐. 그런데 거름도 안 준 땅에서 씨를 심고 뿌린 지 3주가 되어가자 쑥갓이 비쭉배쭉 싹을 틔우더니, 더 놀라운 건, 단호박 새싹이 어영차 힘차게도 불쑥 넙적한 얼굴을 세상 밖으로 말갛게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기적 같다.

푸른 콩은 길쭉하고 몸이 가늘어 밖으로 나오기 그다지 힘겨워 보이지는 않지만, 이 넙적 단호박 싹은 좁고 단단한 틈으로 고개 내밀기가 어지간히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알고 보니 자신의 모래집 물 호박씨 껍질 통째로 이고서 잔뜩 오므린 상태로 세상 밖, 여린 몸을 보호하며 나왔다. 이 지혜롭고 현명함! 이토록 어둠을 박차 나와서야 두 팔 활짝 벌려 파란 하늘처럼 태연히 웃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한 덩어리 묵직한 흙을 짊어지고서도 투정 없이, 파릇파릇 생기 찬 강인한 생명력은 참으로 아름답다.

내가 텃밭 농사를 시작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년 전, 딱 한번 사 심은 단호박 모종에서, 작은 유일한 주황색 호박을 수확했었다. 그 귀하게 얻은 호박에 절반이 총총 박힌 씨인지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호박 대신 호박씨라도'라는 마음과 어릴 적 말린 호박씨 까먹던 생각까지 나서 내 세심하고도 면밀한 성격을 발휘하여, 잘 마른 호박씨를 통에 담아 두고서는 까마득 그동안 잊고 었었다. 몇 해 동안 보관한 해묵은 씨앗을 이제 와서 버리기는 지나간 시간만큼 애달픈 아쉬움과 미련조차 남으니 크게 바라거나 기다림 따윈 씨앗 통으로 되레 집어넣고, 오직 내 실험적인 심상으로 빈 땅에 박아 두었을 뿐이다. 거기서 바야흐로 새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KakaoTalk_Photo_2020-05-11-15-32-07.jpeg 단호박
KakaoTalk_Photo_2020-05-11-15-33-20.jpeg 쑥갓

이 놀라운 생명의 힘 앞에서 예전에 읽었던 '시베리아 해빙으로 삼만 년이 지나 싹 틔워 꽃까지 피웠다'는 글을 떠올리며 새삼 대단한 자연의 생명력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낸다. 가히 신묘 불 측이다.

설령 선사시대는 아닐지언정, 우리 음식물과 잡풀로 만든 두엄 속에서 작년 버린 토마토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있지 않은가. 온갖 썩은 음식물 퇴비에서도 굳건히 제 생명을 지켜 싹 틔우기까지 이 기다림의 힘과 의지에 또 한 번 감동한다.


식물의 종류도 많고 품질이 좋아 멀지만 내가 잘 이용하는 트뤼포(Truffaut) 식물원은 여전히 문을 닫고 있는데 가깝지만 여러모로 협소하여 비 선호 자르딜란드(Jardiland) 식물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트뤼포가 문 열기를 좀 더 기다려 볼까 하는 마음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심상치 않는 내부 상황과 코로나 바이러스도 쉽게 진정세로 돌아설 낌새가 없다. 이 포근한 햇살 좋은 날씨를 두고, 뒤엎은 땅에 속절없이 잡초만 키우기는 더없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더 이상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모종을 사러 갔다.

그런데 마땅히 식물원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할 모종들은 대형 슈퍼마켓 식물 자판보다 초라한 형상으로 텅 빈 듯 허전하다. 널찍한 판매대 한쪽 귀퉁이로 밀쳐 놓은 포기 대부분이 인기와는 먼 품종들로 내가 찾는 토마토 모종은 당연지사 없다. 애호박은 동 났는지 아예 보이지도 않고 가지 오이 고추 피망은 있지만, 그 값이 작년 비해 적게는 3배 최대 5배까지 어처구니없게 비쌌다.


내가 원하는 품종도 아닌데 비싸기까지 하여 손이 마구 오그려 들면서 모종만 들었다 놓았다를 되풀이하다 선뜻 바구니에 담지도 못한다. 차라리 올 텃밭을 포기하고 사 먹을까? 아니면 5월 11일 자가격리 이동 금지령 해제까지 기다려 볼까? 내 머릿속은 얄찍한 생각들로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망설이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 A 역시 잠시 주저하던 기색은 없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다는 능숙한 현실 파악과 곧바른 체념 하에 차선책으로 고른 토마토 모종을 내게 보여주며 권한다. 그렇게 머뭇머뭇하면서도 하나 둘 주워 담은 토마토, 가지, 피망, 오이를 아주 무거운 값에 힘겹게 들고 왔다.

우여곡절 끝에 심은 포기들로 빈약하나마 나름 텃밭의 모양새는 갖추었다.


드디어 기다림의 미학은 텃밭 여기서도 나타났다.

식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싹을 트고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라나는 아이들처럼 비록 올되거나 늦됨은 있어도.

성질이 급하거나 신속하고 날렵한 동작을 가진 것들은 세상 밖 구경도 빠르겠지만, 그렇다고 풍성한 열매까지 잘 맺는 건 아니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수확까지는 세상에 나온 순서와 상관관계가 없다. 오직 자라는데 필수적인 환경 요소와 충분한 영양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적응력과 내구력에 의한 개별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다소나마 미치는 내 손길이 차이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날한시 뿌리고 심은 씨앗이라도 각각 그 결과는 달랐다. 수확도 유별나다.

흙더미 속 긴 잠으로 망각했는지, 충분한 에너지 충전 중인지는 몰라도 늦게 깨어나 천천히 그 모습 드러내는 씨앗도 있었고 모종 또한 멈춘 양태를 시시 때때 유지하며 자란다.

어두운 땅 밑 일을 내가 다 알 수야 없지만 단념하여 흙을 뒤엎지만 않는다면 조금 뒤늦게라도 서둘러 비죽 고개 내밀기도 한다.

초보 농사꾼 나는 시행착오는 물론, 싹이 트지 않는다고 허둥지둥 조급한 마음에 인내심을 잃은 적 한 두 번이 아니다. 솔직이 신속히 자라는 잡풀보다 지지부진한 싹을 이해 못했거니와, 기다림을 쉽사리 자포하여, 종종 후다닥 뒤집은 땅에 다른 것들로 잽싸게 갈아 심었다. 그렇게 씨앗을 원망하며 경멸, 오인하였지만 그 속에서 먼저 뿌린 씨앗이 뒤늦게 싹을 틔우기도 했다. 물론 씨앗은 거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거듭된 실패에는 미처 모른 내 실수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도무지 오리무중 한 시금치 싹 틔우기처럼.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다면 지금처럼 내 태만이 효과를 볼 때도 있다는 걸 알았다.

가끔은 애간장 태우는 집착보다 무관심한 듯 내버려 두어도 때 되면 제 알아서 바깥세상 찾는다는 것도 알았다. 일주, 이주가 늦은 금일에도 이렇게 싹을 틔우지 않은가.

오래 묵어 단단한 씨앗일수록 조금 더 시간을 필요로 할 뿐.

종류에 따라 포기마다 소용되는 시각과 시간도 다르다는 걸. 무려 나처럼.


이처럼 내 텃밭의 채소들도 하루 이틀이 다르도록 쑥쑥 신명지게 푸르르지고 있다.

잠자면서 크는 아이들처럼 꿈꾸며 자라는 나처럼 그들도 이슬 먹고 밤사이 부쩍 더 자라났다.



KakaoTalk_Photo_2020-05-11-15-32-16.jp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