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심은 모종들이 얼어 죽었다

텃밭 이야기

by 다나 김선자



한 해의 불투명한 농사를 예견하는 농부들 시름 소리가 들린다. 내 작은 텃밭에서도 이미 일어난 일인지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뷰 소리가 새삼 남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자그마한 채마밭 실정에도 쓰라린 마음 감출 수 없는데 하물며 농부의 일 년 생활 터전이자 가족들 생계가 달렸다면 어찌 울분이 터지지 않겠는가?

프랑스 북쪽 지방에서 급작스레 영하권으로 떨어진 기온 탓에 포도와 과일나무들을 비롯한 유채, 사탕무 등 농작물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주 생산 농장 포도밭에서는 얼어붙은 새순을 녹이려 화롯불을 분산시켜 피우고도 있으나 그것만으로 충분치 못하단다. 하얀 밤이 지나간 샤블리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한 것 같다.

환경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현상이고 기후변화라고 한다. 인간들이 과다하게 소비한 화학 에너지로 인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불안정하게 순환함으로써 그 결과 홍수, 폭우, 태풍, 사막화, 지진과 같은 이상 기후를 유발했다. 이로 인한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위협을 느낄 정도 큰 피해를 주고 있으며, 따라서 해가 거듭될수록 심화되는 현상을 우리 스스로도 몸소 겪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아무도 부르지 않았건만 자꾸만 뒤돌아보는 겨울.

사월 초순에 내린 우박과 한파의 날씨.

농작물이 심한 몸살을 앓는다. 내 텃밭에 심은 어린 모종들은 미처 땅 냄새를 맡기도 전에 암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주변 뜰에도 봉긋봉긋 살포시 부풀어 오른 꽃망울들이 채 하품도 하기 전에 별안간 매서운 누리를 만나 자지러지고 얼어붙었다. 개화를 못하면 열매가 맺지 못함은 당연한 이치. 올 농사가 흉년임은 불 보듯 뻔하다.


지난 삼월 말에는 오월 같은 날이 이어졌다. 화창한 햇살이 난만하여 겨울 내내 비에 젖어 질퍽하고 눅눅했던 습기를 한순간 거두니 땅을 밟아도 신발에 흙이 들어붙지 않아 좋았다. 사람들은 짧은 티셔츠 차림으로 움츠렸던 어깨를 한껏 펴고서 활기차게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완연한 봄을 느꼈다.

집집마다 테라스 물청소로 바쁘게 돌아가는 깍세르(Karcher, 물 압력 청소 기계 상품명)의 진동, 잔디 깎는 기계음 소리가 주택가의 봄을 맞는 분주한 울림으로 요란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 봄단장에 서둘렀고 더불어 텃밭 준비로 부산하게 일주일을 보냈다. 흙을 뒤집고 땅을 고르고 잡풀을 뽑아내는 일. 바싹 마른 겉과는 달리 땅속은 촉촉하여 작업하기에도 그지없이 좋았다. 괭이로 흙덩어리를 파 올리면 그 속에서 옹크려있던 지렁이들도 가는 몸을 더 길게 쭉쭉 뻗어 기지개를 캐며 기어 나왔다. 새로운 봄기운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온누리를 감쌌다. 땅에서 움튼 파릇파릇한 생기들을 마음 놓고 새싹과 잡초들이 들이마셨다. 싱그러운 날씨였다.


그래서 쏜살같이 달려가 채소 모종을 사 왔다.

해마다 늦장을 부리다 부실하게 남아있던 모종을 시원찮게 여기며 담아 왔기 때문에 올해는 예년처럼 막차를 타지 않으려고 서둘러 움직였다. 천성에 맞지도 않는 부지런함은 역시나 통하지를 않았나 보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 되었다. 너무 성급한 판단의 착오였다.

아직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월 초, 며칠 반짝한 하늘만을 쳐다본 결과가 작으나마 피해로 남아 현실로 다가왔다. 노지에다 모종을 옮겨심기에는 안타깝게도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따라서 오월 같은 날씨는 이상기후였던 것이다.

텃밭 농사 10년에 새로운 경험이었고, 여전히 초보 수준으로 배울 것이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모종을 사러 식물원에 갔을 때 의심쩍은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팔팔한 온갖 종류의 모종이 푸지게 나와 있는데도, 모종을 사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손님은 적지 않았으나, 다들 꽃나무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얼핏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은근히 내 부지런함에 더 크게 만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장막을 내린 채 오만한 턱을 곧추세워 기분 좋게 가득 싣고 왔다.

매년 모종을 뒤늦게 옮겨 심은 터라 올해는 일찍 감치 서두려고 싶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 그만 앞서 나갔다. 그렇게 며칠간 틈을 두고 모종을 심었다.

심사 숙려가 부족하고 섣부른 결론이었으나 이 기회에 약간의 변명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여러 날 이어지던 가운데 지천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어떻게 모종을 안 심을 수가 있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심어서 충만한 대기의 기운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게 해 주고도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 그 모습을 보면서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얼른 수확해서 우리의 식탁 위에 건강한 식단으로 올리고도 싶었다.

상치, 호박, 오이, 고추, 피망, 가지, 토마토와 허브 종류에 백리향, 로즈메리, 파슬리 그리고 카네이션 꽃까지.

이렇게 심은지 삼일 후 밤 기온이 급속히 떨어졌던 것이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텃밭에 나가본 순간 나는 마치 허깨비를 본 듯 어안이 벙벙했다. 허브 종류와 상치를 제외한 모든 야채 모종이 짙고 어두운 빛깔을 띄며 마치 소금물에 절은 듯 녹아내렸다. 내 노고는 둘째 치고라도 축 늘어진 모종들의 참담한 모습 앞에서 나는 실망과 더불어 비로소 어리석었다는 한탄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제까지 파릇파릇 곧게 서있던 식물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줏대만 무심히 서 있다. 그렇게 비참한 모습 또한 처음이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속임수 같았다.

다행히도 그러나 신기하게도 상추만은 파릇이 살아있다. 허브 종류는 모종이라기보다 단단한 가지의 식물이라 살아있는 것이 당연하게도 생각되지만, 연약한 잎 상치가 추위에 견뎌냈다는 것은 가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대견하다.


물론 텃밭 모종 옮겨심기를 하기 전에 일주일간 일기예보를 알뜰히 챙겨도 보았다. 하루 이틀간은 한밤중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다고는 하였으나 따뜻한 땅기운을 믿고 그 힘에 약간 의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초보 가짜 텃밭지기에 불과한 내 짤막한 지식으로 지나치게 설마 하는 낙천적이고 무식한 처사였다. 그 탓으로 어린 모종들을 단명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야 농사법 지식정보를 찾아본 바로는 0도의 기온에서 채소 모종들은 얼어 죽는다고 한다. 항상 뒷북치며 뒤늦게 알아가는 철부지 텃밭농사 10년 차. 그래서 죽는 날까지 배우는 게 또 인생인가 보다.

내 어리석음도 잠깐뿐,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쌀쌀한 날씨는 나를 비웃듯이 지속되고 옷장에 넣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잘 정리된 조그만 채마밭은 더욱 휑뎅그렁 황막하고, 생뚱맞게 삐죽삐죽 서 있는 대나무 지주대만이 지난 사연을 대신하듯 무안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한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의 한마디를 내뱉는다. 아직 새로운 동반자를 맞을 때가 아니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라고.


목련화도 개나리 꽃도 사라진 정원에는 북쪽 추운 나라 튤립이 울긋불긋 피었다. 추위에도 근실함을 뽐내며 흐드러진 새하얀 체리나무에서 꽃비가 내리고, 우리 집 느림보 동백은 빨갛게 웃는다. 다시 찾아온 햇살 아래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차갑구나. 윗옷을 겹쳐 입고 햇살을 맞으러 밖으로 나간다. 햇살만큼은 그래도 봄빛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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