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사냥꾼

by 다나 김선자



밤의 사냥꾼이 돌아왔다. 해마다 유월에 나섰던 사냥이 올해는 다소 일찍 시작되었다. 때아닌 장맛비가 오월 첫날부터 말경까지 아예 불청객으로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꽃향기에 뒤덮여야 하는 계절의 여왕은 빗물에 젖어 향내를 잃었다. 겨울철 우기나 유월 장마는 듣고 보았어도 오월 장마가 어인 말인가? 이 터무니없이 내리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 텃밭을 괴롭히며 심기를 어지럽힌다. 그러하여 내가 이슬도 아닌 세우 맞는 밤 사냥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랑비 속 어둠이 엷게 뒤덮여 으슥한 뜰안에서 밤마다 몇 발치 건너 들려오는 고적한 부엉이 소리를 등에 업고 심란하게 밤 활동을 시작한다. '아 아아아' 이 구슬픈 소리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아 마치 높다란 종탑에서 울리는 전설적인 종소리 같은 애잔한 반향으로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사냥꾼이라지만 거창한 사냥도 아닌, 텃밭의 불속지객 다름 아닌 민달팽이다.

오월은 민달팽이가 왕성하게 활동하기에 아직 이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달 들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리는 비가 그의 성장을 재촉하여 활발한 활동까지 부추겼다. 반면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미처 땅 냄새도 맡지 못한 채소 모종들은 쌀쌀한 날씨에 햇빛마저 부족하여 허약하기가 이를 데 없다. 따라서 모종이 자라기는커녕 민달팽이들의 괴롭힘에 심한 몸살을 앓으며 되레 그들에게 잠식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이것들은 흔하디 흔한 민들레는 입도 대지 않으면서 정성 들여 키우는 상치와 어린 배추 새순은 움트자마자 게걸스럽게도 먹어치운다.


그야말로 내 채마밭은 민달팽이들의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지난 4월에 심었던 모종은 뜻밖의 영하권 기온과 우박으로 다 얼어 죽고, 봉쇄 기간 간헐적으로 연 식물원에서 겨우 사 심은 채소를 이마저 민달팽이들의 먹이로 없애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옮겨 심은지 불과 이튿날부터 내린 장맛비가 그들에게 천국 같은 환경을 펼쳐놓았으니 이파리마다 끈적끈적 들어붙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파티를 벌인다.

사실 모종을 옮겨 심던 당시만 해도 비 소식을 듣고 굳이 물 주지 않아도 잘 크겠다는 생각에서 기분 좋게 서둘렀다. 이렇게 괴로운 장마가 될 줄은 예측조차 못했다.

그리고 우열곡절 어렵게 심은 만큼 보상 심리가 없지도 않아 정성 들여 더 빨리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가지치기하여 몇 년 동안 쌓아둔 나무가 썩어 보슬보슬 까맣게 된 좋은 거름들만 긁어 모종마다 수북이 덮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채소가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은 말할 것도 없고 잡초 방지도 될 터이니 일석이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비 소식도 예고해 뿌리까지 쑥쑥 잘 스며들 것을 상상하니 흡족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전혀 틀린 건 아니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어느 날 목격한 텃밭의 모종 이파리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숭숭 구멍이 뚫려 마치 그물망처럼 변해버렸다. 덜컥 겁이 났다. 일반적으로 벌레나 민달팽이의 공격 대상은 상치와 배추이거늘 어찌 된 영문인지 오이, 호박, 가지 이파리는 물론 양파까지 누더기 같은 모습이다. 몇몇은 이미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나는 비로소 눈에 불을 켜고 현미경으로 살피듯 유심히 보았더니 이럴 수가! 몸을 동그랗게 오그린 듯 좁쌀 크기의 민달팽이와 흰 알들이 이파리마다 양면으로 모래알같이 붙어있다. 이크! 이런 난리통이. 이렇게 모른 채 이삼일만 지냈더라면 이번 야채 모종 또한 감쪽같이 사라질 뻔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모종들의 대 수술을 시작했다.


나는 핀셋 가위로 그물처럼 변해가는 이파리 앞 뒷면을 돌려가며 꼭꼭 숨어있는 새끼 민달팽이와 그 알까지 하나하나 걷어내어 퇴치 작업을 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알을 까 놓았던지 밤낮없이 잡아도 잡아도 끊임없이 나왔다. 이들은 야행성임에도 막론하고 잿빛 하늘과 빗물을 의지하여 감히 낮에도 겁 없이 활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하여 땅에 거름을 비집어보니 글쎄 썩은 나무 조각 같은 새까만 새끼 민달팽이가 수없이 웅크려 있거나 또는 기어 나온다. 위장술이 뛰어난 건지 종류가 다양해서인지 묘하게도 카멜리온처럼 변신하여 숨어 있었다. 또한 상치나 배추 같은 겹겹이 채소는 고난도로 꼽히는 수술이라 머리가 핑 돌 정도다. 연약한 잎이 다치지 않도록 한 닢 한 닢 조심스레 들추어가며 밑동의 오목한 부분 숨어있던 것까지 끄집어내기란 절대로 수월하지 않았다.

가장 쉬운 사냥은 몸을 쭉 빼고 기어 나올 때다. 그리고 하얀 점액을 분비하므로 진득한 액체가 있는 부근은 어김없이 민달팽이가 있다. 또한 비늘처럼 반들거리는 피부가 밤에 불빛에서 반짝이므로 구별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된다. 하지만 위험을 느낀 몸을 동그랗게 만들거나 심지어 어린것들은 미끄러운 몸으로 빠져나기가 일수다.

이렇게 내가 아는 민달팽이의 종류만 해도 크게 세 분류로써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토색과 흰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나뉜다. 나는 이토록 은밀하게 지내는 그들이 괘씸하여 과감히 보이는 족족 죽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워 '내 죄를 묻지 마소서'라고 중얼거린다.


그제사 나는 거름더미가 그들의 온전한 분만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며칠간은 밤낮으로 샅샅이 거름 속을 파헤치며 대대적인 색출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밤낮으로 대수술과 사냥에 힘쓴 결과 한 달여만에 드디어 위험한 단계는 지난듯하다. 이제 나는 한 바퀴 어슬렁 돌다가 뒤늦게 자라서 기어 나오거나 내가 미처 놓친 것들만 잡아도 될 정도가 되었는가 했다. 그런데 결단코 아니었다.

이런 내 야간 활동을 보다 못한 남편이 하루 저녁에는 자신의 비옷을 들고 나와 내 등에 덮어주면서 "띠띠뜨, 밤기온이 떨어져 추운데 비까지 맞으면 건강에 해로워. 감기몸살 들겠다. 그만 들어가자" 말한다.

오락가락하던 가랑비에 비옷도 걸치지 않고 나왔었다. 이렇게 한 겹 더 걸치니까 따뜻한걸 추위에 오싹하게 몸을 움츠려가며 민달팽이 퇴치에 몰두하는 내 집요함과 발길을 뗄 수 없는 어리석음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내 집념이 조만간 몸살을 부를 것도 알면서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 또한 아이러니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열정이 아니던가? 아니면 소유욕? 책임감? 유기농을 먹으려는 열망? 아니라면...?

남편은 "내가 도와줄까?" 했지만, 이 섬세한 일은 나 아닌 누구도 해낼 수 없다는 걸 강조하면서 번번이 그를 돌려보내고 나는 내 성질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들을 적출하는데 애썼다.

그러던 한 날은 남편이 재료점에 갔다가 민달팽이 제거제를 사들고 왔다.

"밤마다 힘드니까 그냥 이걸로 뿌리자. 이거 바이오 제품이야" 라며 내민다.

솔직히 말해서 작은 텃밭이란 유기농법 재배가 매력인데 아무리 바이오 제품이라지만 약품을 쓴다는 건 왠지 썩 기분 내키는 일은 아니다. 또한 비 오는 날 제거제를 뿌려보았자 씻겨 내릴게 뻔한데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내 밤마다의 노고를 안쓰럽게 여긴 남편이 보다 못해 찾아온 처방책을 거절하기도 야박해서 고맙게 받아놓고 보고만 있다. 장마가 그치면 사용하겠다는 말과 함께. 작년에는 맥주를 페트병에 부어 놓고 유인도 해 보았지만 한 마리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물며 비 내리는 날은 언감생심이다. 그렇게 시도한 여러 가지 퇴치법 가운데 내가 직접 사냥에 나선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밤사냥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시댁 정원에 심은 두 그루의 호박 모종은 벌써 온데간데없고, 옆집 마담 미슈 댁 상치들도 모조리 사라졌단다. 분명 이 또한 민달팽이의 소행이 틀림없다.

곧 날씨가 개여 기온도 올라가 맑고 화창한 날이 계속될 것이라는 일기예보다.

남새밭은 내 노력의 대가로 파릇한 새 잎이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비록 영우가 내리는 유유한 밤이지만 신비로운 올빼미 소리 또한 경이롭다. '쿡쿡'거리며 뒤뚱 걸음으로 찾아오는 밤손님 고슴도치 역시 낯설지 않다. 물론 지렁이들의 정열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

그러므로 밤의 사냥꾼은 비록 힘들어도 외롭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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