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스셰어, 삶의 불공정성에 대한 물음

[영화리뷰]상위 1%에 대한 99%의 유쾌한 반란..영국 켄 로치 감독

영화를 통해 부조리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던지며 영화란 매체가 사회, 정치적 담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철학을 지닌 켄 로치 감독은 마가렛 대처 수상의 장례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특히 자본가 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나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등을 따스한 시선으로 성찰해 온 영국의 사회파 거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에 억압과 차별을 당하는 노동자나 서민들을 단골로 등장시키고, 부조리한 시스템을 쫓아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의해 흔들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자유와 인권을 잃어버린 현실 세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삶의 불공정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감독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현재의 시스템이 무엇이 잘못되었고 왜 그들에게 고통과 고난이 계속 이어지고 불공정성이 계속되는지 질문하면서 칸이나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에 단골로 초청되는 거장 중의 한 명이다.


2012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에는 그 동안 영화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범죄자나 백수, 부랑자 등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을 등장시키면서 삶의 불공정성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면서 왜 이들에게 불공정한 삶이 지속되는지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상위 1%에 대한 99%의 유쾌한 반란’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른바 '블루 칼라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영국의 사회파 거장, 켄 로치 감독은 전작과 달리 온화한 톤으로 사회적 약자 편들기에 나서고, 극중 네 얼간이들이 빨아올린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속도의 피로감에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작은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왜 위스키를 훔쳐내려 하는가

영화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드라마 <투윅스>의 뒷골목 건달 태산(이준기 분)처럼 구제불능의 사고뭉치 청년 로비(폴 브래니건 분)가 여자 친구를 임신시키고 나서 갓 태어날 아기를 위해 개과천선하기 위해 고가의 위스키를 시스템에서 내몰린 이른바 잉여들과 함께 소량 빼내어 훔쳐내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희소성 있는 고가의 위스키 경매 전에 위스키 창고에 잠입해 오크통에서 훔쳐내는 것이다.


주의력이 산만한 친구 알버트(게리 메이틀랜드 분)가 사고치는 바람에 두 병밖에 못 건졌지만 로비는 남은 두병 중 한 병은 위스키 콜렉터에게 비싼 값에 팔아 마련한 돈을 친구들과 동등하게 나눠 갖고, 그에게서 후각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위스키와 인연을 맺게 해준 멘토이자 갱생의지를 심어준 사회교육관 해리(존 헨쇼 분)에게 한 병을 선물하면서 은혜에 보답하는 기특함까지 발휘한다.


그들은 왜 위스키를 훔쳐내려 하는 걸까. 켄 로치 감독은 한심해 보이는 로비와 그들을 쓰레기처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뒤로 하고 일당들의 위스키 사기극 소동을 통하여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하여 갱생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야, 시작부터 잘못된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폭행 전과에 쓰레기같은 삶을 살아온 로비가 주변에 그를 바라보는 편견에 찬 시선으로 인하여 어두웠던 과거를 지우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처녀에게 아이까지 임신시켜 죽일 놈으로 낙인찍히며 여자 친구의 오빠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그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앤젤스 셰어(Angels` share) 즉, ‘천사의 몫’이라는 영화제목처럼 저장고에서 오크통에 넣은 위스키를 보관해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해마다 2~3%씩 줄어드는데 천사가 그 만큼을 마신다고 여긴다는 양조업계의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영화를 만든 켄 로치 감독은 이들을 잉여가 아닌 천사로 대체한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나 <자유로운 세계> 등 비판적인 시선으로 노동자들과 핍박받는 민초들을 조명해왔던 켄 로치 감독은 위트 있는 풍자와 해학이 담긴 따스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마약이나 술에 찌들어 공공기물 파손, 폭행 시비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들에게 갱생을 위해 한 번의 기회는 줘야 하지 않느냐고 대변하고 있는 듯 보였다.






2. 왜 몰트밀 위스키인가


사회적 편견으로 낙인 찍힌 이들은 현재의 거주지에서 살 수 없다. 복권이 당첨되어 졸부가 되더라도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속죄되고 용서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청년 실업자를 상징하는 이들이 갱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터전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시드머니가 필요하게 된다.


위스키란 술은 본래 계급이나 차별성을 갖는 술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스카치위스키는 18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의 토속주였지만, 잉글랜드에 합병된 후 식민지 국가에 부과하던 주세를 피하기 위해 양조업자들이 산 속에서 밀주를 만들었고 이를 오크통에 담아 숨겨둔 것이 시간이 흐른 후 연갈색의 진한 향기를 자아내게 된 것이 그 유래이다.


즉, 켄 로치 감독은 제국주의 영국의 주세 부과로 인해 1%의 자본가들만이 항유하는 부의 상징으로서 싱글몰트 위스키를 소재로 끌어다 놓은 것 같다. 오직 맥아의 과정을 거친 보리 한 가지 재료로 만들어져 생산량이 적어 고가에 거래되면서 정작 위스키를 만든 스코틀랜드인들은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였던 아이러니를 네 얼간이의 '천사의 몫'을 통하여 통쾌하게 비웃는 것 같았다.



특히, 저장소에 몰래 들어가 오크통에서 빨아올린 고가의 위스키를 마음껏 들이키는 얼간이들의 모습에서 경쟁과 속도감에서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되며, 한심하고 대책 없는 이들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아일랜드인이나 <빵과 장미>의 이주노동자 등 가난과 폭력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연장선에 가져다 놓는 듯하다.


아마도, 켄 로치 감독에게 대중적인 위스키가 비정상적으로 특권층의 향유하는 술이 되어 고가에 거래되는 기현상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거짓된 신화처럼 비춰졌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거짓된 신화를 깨는 것이 권력이나 자본가들이 아닌 동네 경찰에게도 치마 형식의 스코틀랜드 전통의상 킬트를 들추라는 불심 검문을 받으며 모욕을 당하는 잉여 청년들이라니..


감독의 분신과 같은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지 않아 실망감이 다가오려 할 때쯤 이들 네 얼간이에게 관용의 태도를 취하면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이토록 유쾌하며 통쾌한 풍자가 어디 또 있을까. 위스키라는 술을 통하여 주류 사회가 구획 지어놓은 편견과 불평등 그리고 불공정한 삶에 대한 켄 로치 식의 반격이 아닐 수 없다.





3. 또 다른 잉여를 위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얼간이 로비, 알버트, 라이노, 모 등 네 명은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센터에서 만나게 된다.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이 오락가락 하는 로비를 비롯하여 위스키 도둑들은 사회적 편견의 굴레에서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실업자들이다.


전작 <자유로운 세계>에서 이주노동자의 직업소개소를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착취 논리가 불공정한 삶을 양산하고 사회적 약자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으며 탈출구 없이 악순환을 지속시킨다고 성찰한 켄 로치 감독은 현실의 시스템에서 이들의 갱생이 불가능하다는 처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감독은 이들의 갱생을 위한 사기극에 대하여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 라는 도덕적 잣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이는 그들을 하찮은 잉여로 보고 거리에서 알몸 수색으로 모욕을 주는 경찰관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가의 위스키 사기극으로 졸부가 되었더라도 이들을 향한 불공정한 시선이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잉여 취급이 그들의 숨통을 오히려 트여주는 것만 같았다.



특히, 켄 로치 감독은 영화 <클래스><폭스 파이어>를 연출한 프랑스의 사회파 거장 로랑 캉테나 <캡틴 필립스>를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처럼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유명한데 극중 주인공으로 캐스팅 돼 스코틀랜드 아카데미 시상식서 남우주연상을 주상한 폴 브래니건이나 청소부에서 일약 배우로 떠오른 알버트 역의 게리 메이틀랜드의 성공담은 스크린을 넘어 현실 세계까지 켄 로치 감독이 '천사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리고 극중 위스키 감별 재능을 발견하여 감쪽같은 사기극을 벌이는 로비의 이야기는 시스템이 가로막는 삶의 불공정성에 대하여 한 개인의 삶에 대한 변화가 공동체를 따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켄 로치 감독이 제기한 담론처럼 생각되었다.


사고뭉치 로비에게 끝까지 신뢰를 보였던 여자 친구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기와 함께 새 출발을 떠나는 해피엔딩 역시 내겐 인간이 아닌 천사(신)의 몫으로 여겨졌다.

또한, 극중 로비가 해리에게 가져다 준 위스키 한 병은 그들에 이어 또 다시 시스템 바깥으로 내몰리는 이들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켄 로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삶의 불공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이러한 문제아들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해리에게 전달된 2%의 희망을 통하여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 삶의 좌절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이들에게 시간이 지난 후 숙성되어 향기를 내뿜는 몰트밀 위스키 같은 희망을 전하려는 것 같았다.


/Chicpucci


p.s. 4/30에 EBS에서 근로자의 날 특집으로 해준 영화 '앤젤스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를 다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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