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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뮬란', 차별적 비난에 저항하는 연대의 방식

원작 애니메이션을 더 돋보이게 한 디즈니의 패착





개봉 전부터 논란이 컸던 실사영화 <뮬란>은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실사영화 중 원작 애니메이션을 더 돋보이게 한 디즈니의 패착처럼 다가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할리우드의 중국 문화 몰이해에서 비롯된 전쟁 액션과 판타지에 기반을 둔 서사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중국 남북조 시대 실존 인물인 화목란(花木蘭)의 실화를 바탕으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화준이란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북방 오랑캐와의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로 변모하는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동명의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강조한 충성, 용기, 진실이란 덕목 외에도 가족애를 덧붙여 서사를 완성해냅니다.

영화에서 수차례 강조하는 '두려움 없는 용기란 없다'는 주제의식 속에 텅 장군(견자단 분)이란 캐릭터를 통해 가문의 명예 즉 유교적인 사상인 충과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니키 카로 감독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현실성 있는 전쟁영화로 연출 방향을 밝힌 바 있는데, 액션 시퀀스는 실사의 장점을 살렸다고 하나 정작 결투 시퀀스와 캐릭터 설정은 원작과 달리 무협 판타지에 가까워 보입니다.

무예를 접했다고는 하나 영화 속에서는 지붕 위에 올라가 닭을 쫓던 어린 시절의 모습 만으로 수많은 남자 사병들 가운데 독보적인 무예 실력을 선보이는 화준(유역비 분)을 중국 무협영화에서 봐온 '기(氣)'를 지닌 캐릭터로 설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작에서 부단한 수련과 고난 끝에 여전사로 거듭나는 것과 대조적으로, 조상신인 불사조의 기운을 물려받아 선천적으로 내공이 강하지만, 남자로 변장한 거짓으로 인해 진기를 발휘할 수 없었다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일례로, 남장 군인 화준으로 북방 오랑캐를 돕는 마녀 시아니앙(공리 분)과 첫 결투에선 맥없이 당하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시킨 마녀로 인해 갑옷을 훌훌 털어버린 후 뮬란(유역비 분)의 본모습을 되찾아  용맹하고 강건한 전사로 변해버리는 시퀀스가 이에  해당됩니다.

또한 감독이 원작의 희극적인 뮤지컬 요소를 배제하면서 적룡 캐릭터 무슈를 제외했는데, 오히려 실사영화에서는 불사조(피닉스)라는 더 판타지스러운 설정으로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원작에서 살린 전우들의 전투력 성장 시퀀스 역시도 그러합니다. 양손에 물동이를 메고 산등성이를 오르는 것도 힘겨웠던 전우들은 뮬란처럼 어느 순간 용맹하고 날렵한 정예군으로 변신해 황제를 구하려는 뮬란을 위해 황궁 앞에 배수의 진을 치고 검은 두건을 쓴 북측 오랑캐 일당과 결투를 벌이는데, 결투는 실사 전쟁영화라기보다 오히려 무협 판타지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특히, 감독은 <뮬란>의 백인 캐스팅에 반대하는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을 의식해선지 자국 출신의 배우 요손 안을 원작의 리상 역을 멘토인 텅 장군과 나누어 전우 홍위 역으로 캐스팅했는데, 어색한 연기력과 서사에 소모적으로 활용돼 작품에 몰입감을 떨어뜨립니다.






문제는 디즈니가 왜 원작과 전혀 다른 각색으로 중국적인 색채가 다분한 무협 판타지를 선보였는가 인데, 그 키는 마녀 시아니앙이 쥐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자유자재로 변장하고 심지어 날아다니는 시아니앙은 원작과 달리 매우 강한 마법을 소유한 여자로,
오랑캐 두목 보리 칸과 나뉘었습니다. 하지만 강한 파워를 가졌음에도 너무도 어이없는 결과로 마무리돼 매우 소모적으로 활용된 것 같았습니다.

당시 중국 대륙 내에선 능력이 더 뛰어나면 오히려 여자라는 이유로, 마녀로 비난받아 시아니앙은 자신이 정복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보리 칸에 협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아니앙의 말처럼 뮬란이 처한 상황과 닮았다고 할 수 있는데, 결말에서 두 사람은 인정받을수록 공동체로부터 짓밟히는 세상에 대해 차별적 비난에 저항하는 연대감을 형성했던 것일까요?





다만, 시아니앙의 결단은 기성세대와 달리 외압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 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의지의 인물, 뮬란의 선택에 지지를 보낸 것일까요?


영화는 집단의 정복욕에 구속돼 공동체의 비난을 면치 못한 채 마녀로 남은 시아니앙의 선택과 달리 정체성을 회복하고 마녀로 불릴지언정 스스로 공동체의 비난을 극복하고 진실한 전사가 되어가는 뮬란을 가장 중국적인 가치관인 '효'에 덧붙여 인정받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공주 이야기, 여성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디즈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받던 시대에 여성 간의 연대감을 통해 영화 외적으로 연이어 터지는 논란을 잠재우려 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여성 관객들의 지지와 호평받을지도 관건입니다.

영화는 중국 영화인데 영어로 대사를 주고받고 뮤지컬 요소를 배제하고 엔딩 크레디트마저도 원작의 'Reflection' 대신에 한국판 커버를 부른 이수현의 번안곡 '숨겨진 내 모습'으로 장식합니다.

마치 아이들과 함께 보는 더빙판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온 듯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관객의 취향에만 맞춘 무국적의 작품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차별적 비난에 저항하는 연대의 방식을 그려낸 영화 <뮬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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