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이유는 최근 폐막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부상 투혼의 금메달을 거머쥔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21, 삼생생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안세영은 대회 폐막 하루 전 개최된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선수와 맞붙어 1세트에서 압도적인 기량 우위로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 도중 다리 부상을 입으며 기권하라고 애원한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세트를 중국 선수에 내주고도 개최국 국민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진행된 3세트에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각본 없는 드라마를 선사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 사진=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비슷한 시각에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역시 숙명의 한일전으로 결승전을 치르고 있었다. 전반에 먼저 선제골을 내줬지만 선수들은 열정과 투혼을 발판으로 명승부를 펼치며 극적인 2대 1 역전승을 거두며 또 하나의 각본 없는 드라마를 썼다.
이렇듯 향후 일어날 미래의 결과를 미처 예측하지 못할 때 드라마나 스포츠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세계 최고의 빅리그인 프리미어리그는 코리안리거 손흥민, 황희찬 등이 뛰고 있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수도 없이 만들어내면서 '각본 없는 드라마'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런 스포츠 경기에 몰입하는 축구덕후, 이른바 축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은 만남과 갈등, 재회를 반복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캐릭터들이 동일한 취미를 가지면서 아이스브레이킹은 물론 관계의 발전을 이뤄내기도 한다. 스포츠의 승부가 워낙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에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팬이자 라이어 헌터 목솔희(김소현 분)와 리버풀 팬으로 옆집에 이사를 온 작곡가 김도하(황민현 분)의 첫 만남도 축구 관람 에피소드에서 비롯됐다. 배달 주문한 치킨이 뒤바뀌어 치킨을 교환하기 위해 마주하게 된 두 남녀는 벽을 사이에 두고 축구 보면서 늦은 밤 치킨 먹방 배틀을 펼친다.
주요 OTT에서 인기리에 소개되는 jtbc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역시 두 사람의 관심사는 축구였다. 이 작품은 고학력의 홈리스 드라마작가 세입자 윤지호(정소민 분)와 다포 세대의 하우스푸어 집주인 남세희(이민기 분)의 계약 동거를 소재로 그려냈다.
극 중 세희는 회식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 프리미어리그 인기구단인 아스널 경기를 보던 중 옆에서 고개를 들이밀며 함께 환호하는 지호와 처음으로 마주친다. 두 사람은 밤과 낮이 서로 달라 공간만 공유할 뿐 사석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벽 사이에서 환호와 야유를 계속하던 <소용없어 거짓말>의 두 주인공은 연인으로 발전해 남자 친구의 무릎에 기대어 함께 축구를 관람하고, 소모적인 감정을 피하려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두 주인공도 계약 결혼에 의한 동거를 하면서 시원한 캔 맥주를 맞부딛히며 아스널 경기를 함께 관람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숱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축구 경기 소재가 많이 등장했음에도 이 두 편의 드라마 속의 축구 경기가 뇌리에 박히는 까닭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같은 취미와 일상을 공유하는 두 남녀가 '덕질에 진심'인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스포츠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를 통해 감동과 진한 여운을 선사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