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 증오와 슬픔을 승화한 가족이란 요새

상실 이후 가족이 감당해야 할 후폭풍 <아바타:불과 재>를 보고

고난 속에서 증오와 슬픔을 모두 깨끗이 제거한 채 우리를 완벽하게 지켜주는 가족은 영화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SF 영화 <아바타: 불과 재>가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것은 고난 속에도 반목과 갈등을 반복하지만 결국엔 증오와 슬픔을 승화하는 가족이란 요새에 관한 질문 같았다.

이번 작품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전통적인 히어로 서사와 선을 긋는 듯 보였다. 전쟁의 한복판에 선 주인공 설리와 네이티리 부부가 구심점이 된 가족 공동체는 상상 속의 유니버스인 판도라를 구하는 영웅에 그치지 않는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그 사이에 놓인 가족의 선택을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제시한다.

이들은 전편 <아바타: 물의 길>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 서로의 상처를 발견한다. 영화는 보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버텨내는 가족의 균열부터 시작된다.

네테이암의 죽음 이후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서로를 향해 분노와 슬픔을 쏟아내고, 이 불편한 감정의 층위를 지우지 않은 채, 서로의 증오와 슬픔이 가장 먼저 충돌하는 가족 공동체를 조명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부정하거나 과장하며 일상을 버틴다.

감독은 이들의 비극을 거대한 서사로 미화하는 대신, 상실 이후에 마음속에 자리 잡은 죄책감과 분노, 자책의 방향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한 인터뷰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3편에 대해 “한 아버지의 시선으로 본 가족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내러티브는 전쟁의 스펙터클보다 상실 이후 가족이 감당해야 할 감정의 후폭풍에 초점을 맞췄다. 불과 재는 단순한 부제나 이미지가 아니다. 불은 인간의 맹목적인 개발로 폐허가 된 식민지와 여기에 가하는 폭력 이에 대한 증오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재는 그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파괴된 잔해로 공허와 슬픔을 의미하는 듯하다. 극 중 재의 부족은 고향이 불타서 사라진 뒤 상실을 증오로 치환해 살아남은 이들을 상징하는 게 아니었을까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재의 황량한 풍경은 한때 공동체적인 삶과 기억이 존재했던 자리였음을 암시하며, 전쟁과 폭력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변종들로 피해자가 새로운 가해자로 전환되는 위험한 고리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이러한 감정의 밀도를 떠받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빛난다. 네이티리를 연기한 조 샐다나는 이전 작품들에서 쌓아 올린 분노, 모성, 상실의 감정을 이번 편에서 정점까지 끌어올리며, 비로소 시리즈의 정서적 중심으로 우뚝 선다.

스파이더 역의 잭 챔피언은 이 세계관의 가장 애매한 지점을 설득력 있게 메운다. 인간과 나비족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설정은 가족공동체의 확장이란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한 신의 한 수가 됐다.

재의 부족 두목 바랑 역을 맡은 우나 채플린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선으로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트라우마를 증오로 전가해 버틴 리더를 상징하는 듯했다. 터전을 잃은 부족을 거느려야 하는 냉혹함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이 담긴 표정은 상실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아바타:불과 재>는 여전히 판도라의 신화를 소재로 배우들이 실제 세트에서 연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감정의 디테일을 끌어내는 데 천착한다. ‘불과 재’의 스펙터클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감정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 영화에서 가족은 완벽한 방어막이 아니라, 전쟁과 증오가 가장 먼저 스며드는 틈이자 끝까지 지키려 애쓰는 마지막 경계로 남는다.

설리 가족이 반복되는 인간의 침략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않고, 스파이더라는 균열을 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로 '다시 한번' 결정하는 순간, 관객은 불과 재 위에서 간신히 버티는 하나의 공동체를 목도할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위태로운 현실을 조명하며 이 또한 우리가 다시 정의해야 할 가족 공동체라고 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소셜큐레이터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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