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불과 재'에 숨겨진 지브리의 DNA

자연과 인간의 공존, 애니미즘 세계관 "이구동성"

첨단 촬영 기술과 작화, 기술은 달라도 DNA는 같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불과 재>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었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공유하는 핵심 주제와 세계관에는 놀랍게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 시리즈를 만들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특히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아바타: 불과 재>를 통해 지브리의 DNA를 발견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영화 <원령공주>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불과 재>는 환경주의적 메시지와 자연 대 기술의 대립을 공통된 서사 구조로 삼고 있다.

두 감독 모두 관객을 압도하는 상상 속 세계를 구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손그림(작화)으로, 제임스 카메론은 모션캡처 등을 활용한 첨단 촬영 기술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섬세하게 연출해 냈다. 고도의 촬영 기법과 작화, 적용된 기술은 다르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심만큼은 동일하다고 할 것 같다.

'자연을 착취하는 문명 vs 자연과 공생하는 공동체'

두 감독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기술 문명의 산업화가 대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생하려는 캐릭터들과 이를 정복하려는 기술 문명 간의 갈등이 핵심 서사로 자리 잡는다.

<원령공주>의 타타라장은 철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파괴한다. <아바타: 불과 재>의 인간들은 귀중한 광물 언옵타늄을 채굴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의 자연을 파괴하고 원주민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두 작품 모두 자연을 자원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산업 문명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반면 <원령공주>의 아시타카와 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아바타: 불과 재>의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는 자연과의 공생을 선택한다.

이들은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자연의 편에 서서 그 가치를 깨닫기에 이른다.

애니미즘 세계관의 부활 - 살아 숨 쉬는 자연

영화 <아바타: 불과 재>와 지브리 작품의 가장 공통된 주제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이다. 두 감독 모두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서로 연결된 면역체계로 그려낸다.

<아바타> 시리즈의 '에이와(Eywa)'는 판도라의 모든 생명체를 연결하는 신경망이자 외부의 침입을 차단시키는 면역체계로 존재한다. 나비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머리카락 끝의 신경 다발로 동물, 식물은 물론 심지어 행성 자체와 교감한다. 에이와와 연결된 나무, 물, 생명체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이는 <원령공주>의 '사슴신(시시가미)'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오무'와 정확히 일치하는 세계관이다. 지브리 작품 속 숲은 단순한 식물의 집합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들이 서로 연결돼 어우러진 네트워크로 묘사된다. 사슴신은 생명을 주고 빼앗는 자연의 화신이며, 오무는 부해(腐海)를 지키는 수호자다.

<아바타: 불과 재>의 판도라 행성과 지브리의 숲은 모두 인간이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경외해야 할 성역이다. 두 감독은 자연이 영적인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통해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강인한 히로인이 이끄는 주체적인 서사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서사의 중심에 선다는 점도 두 감독이 공유하는 뚜렷한 DNA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원령공주>의 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처럼 주체적이고 강인한 소녀상을 작품의 중심에 세운다. 이들은 수동적인 공주가 아니라 세계를 구원하는 강인함을 지녔다.

<아바타: 불과 재>에서도 이러한 DNA가 고스란히 이어진다. 네이티리는 전사이자 어머니로서 강인한 모성으로 가족을 지켜낸다.

이번 <아바타:불과 재>에서 그의 딸 키리는 에이와와 교감 능력을 타고나 서사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키리는 위기에 처한 원주민을 구원하는 에이와와 이어진 매개체로 지브리가 창조한 여성 캐릭터들의 계보를 잇는다.

하늘을 나는 자유의 메타포

<아바타: 불과 재>에서 초반 등장하는 바람상인(Wind Traders) 씬은 스크린을 통해 막혔던 혈이 뻥 뚫리는 듯한 비행(Flight)의 카타르시스를 온전히 경험하게 했다. 해파리를 연상시키는 비행 생명체 '메두소이드(Medusoid)'에 연결된 선박을 타고 하늘을 유영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지브리 작품 속 비행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됐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 활공 장면은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메베, <천공의 성 라퓨타>의 플랩터, <마녀 배달부 키키>의 빗자루, <붉은 돼지>의 비행정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하늘을 나는 행위는 중력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아바타> 시리즈에서도 원주민들이 '이크란(Ikran)'을 타고 판도라의 하늘을 나는 비행 장면은 마치 증강현실 게임 속에 참여한 듯한 스펙터클한 장관을 선사한다.

바람상인의 메두소이드 비행 씬은 이러한 비행의 카타르시스를 한층 더 극대화시킨다.

문명을 등지고 자연을 선택한 주인공들

주인공이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 귀의하는 서사 구조도 두 감독의 공통된 DNA다.

<아바타: 불과 재>의 제이크 설리는 판도라 행성을 점령하러 온 군인으로부터 나비족의 일원으로 거듭난다. 그는 나비족에게 감화되어 자신이 속했던 문명을 등지고, 판도라를 지키는 전사가 된다.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나비족의 아바타로 영구히 전환하는 그의 선택은 문명에 대한 완전한 결별을 의미한다.

<원령공주>의 아시타카는 타타라장과 숲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선택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역시 인간 사회의 폭력성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공생을 추구한다.

문명과 대립하는 자연의 편에 서서 그 가치를 깨닫는 구조는 두 감독 모두에게 일관되게 나타나는 핵심 주제다. 이들은 기술 문명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겸손함을 배우라고 전하는 듯 보였다.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두 거장

<아바타: 불과 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는 기술과 형식은 다르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인간 문명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최첨단 촬영 기법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랜 시간 수공을 들인 작화로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듯 보였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아바타: 불과 재>에는 지브리의 DNA가 깊숙이 새겨져 있다. 두 감독은 시대와 대륙, 기술과 형식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바타: 불과 재>를 보며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 소셜큐레이터 시크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