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은이와세상속으로 -스스로 학교에 가다

누워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깨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by 정선미

1. 재활의 시작과 절망

지난하고 고단한 재활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수입은 거의 모두 재활치료비로 들어갔고 시간이 나는 데로 있는 힘껏 최대한 많이,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부족했다. 마음이 조급해 발을 동동 굴렀다.

큰딸의 상태는 처음엔 너무 절망적이었다. 심장의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 상처가 뇌의 한쪽을 거의 손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뇌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기절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평생 누워있을 것 같지만, 치료를 열심히 해서 앉을 수 있거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보자.

그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채, 아니 믿지 않은 채 재활이 시작되었다.

2. 움직임으로 시작한 재활

집에 돌아와 나는 아이를 내려놓지 않고 업었다. 내가 움직이는 만큼 딸의 감각기관이 자극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집 안을 오가며 딸도 나와 함께 움직였다.

방에는 그네와 흔들이말을 설치했고, 놀이터에서는 시소도 오래 태워주었다. 그 덕분인지 아직도 딸은 그네와 시소를 가장 좋아한다.

누워 있는 시간대신 엎드려 놀게 하면서 목과 어깨 근육이 살아났고, 어느덧 혼자 일어나 앉게 되었다. 서 있는 연습과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특수 신발을 맞춰 수십 일간 셀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무한 반복 연습을 한 끝에, 평생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가 소파를 붙잡고 걷다가 한 손을 붙잡고 걷다가 혼자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이때의 감격 때문인지 나는 아장아장 걷는다'는 아기 걸음마의 표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 같다.

드디어 생후 38개월에 걷게 되었다.

나의 신혼집, 아파트 앞 골목골목에는 여기저기 한 손으로 또는 두 손으로 마주 잡고 걸음마를 연습하는 나와 세은이가 깊고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골목, 그때의 느낌과 풍경을 내가 과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 겪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묵직한 기억이다.

3. 언어의 씨앗을 심다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일어나서 스스로 가고 싶은 곳을 걷고 원하는 데로 몸을 움직여서 돌아다닐 수만 있기를 너무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싫고 좋은 표현과 까르르 웃는 웃음 만으로도 충분했다. 딸이 내 말을 계속 듣고 있을 거라 여기며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혼잣말이지만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딸이 내가 말한 단어의 음절을 따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음절이었다. 음절의 높낮이까지 흉내 내며 따라 하는 걸 발견하고선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내가 노래하며 들려주었던 동요의 율동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세은이의 작은 손이 본인의 신체를 정확히 가리켰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그때부터 언어치료에 집중했다.

내가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에서 더 나아가 읽어준 동화책 내용을 손짓으로 표현했고 계속 책을 읽어달라고 울기도 했다. 그 울음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울게 하기도 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40분씩 진행되는 언어치료는 턱없이 부족할 거라 생각해, 집에서는 쉬지 않고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반응을 하건 상관하지 않고 그날그날의 나의 이야기도 쉴 새 없이 했다. 아이가 다른 아기들을 보며 자극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문화센터 아기 프로그램도 찾아다녔다.

그 결과, 딸은 ‘춤’을 가장 잘하게 되었다. 흥이 많은 아이로 자라며, 수업을 다니는 일도 나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라 즐거운 외출이 되었다.

4. 욕심을 줄이며 얻은 깨달음

재활을 하며 깨달은 것은, 비장애 수준으로 빨리 가게 하려는 욕심은 오히려 힘만 빼고 성취의 기쁨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한글을 가르치려 욕심을 부리다가, 아이가 작은 행동에도 놀라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 학습하기 어려울 텐데, 내 딸에게는 퇴행까지 걱정되었다. 결국 모든 것을 멈추고, 놀이처럼 접근하며 기다렸다.

오히려 둘째 아이가 한글을 즐겁게 배우는 모습을 통해, 환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아이의 한글 공부는 잠시 내려놓고, 대신 책 읽기를 계속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이 사실은 나중에 세은이가 스스로 한글을 보고 따라 쓰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다. 끝없는 인풋은 배신하지 않았다.

5. 작은 성공이 만든 큰 기적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가족의 이름을 읽고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스로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평생 누워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깨고, 딸은 한 걸음씩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재활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었다. 아이와 나, 그리고 가족 모두의 인내와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작은 성공에 감사하며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배웠다. 그 사실을 체득하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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