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 다시 꺼내 본 기억
세은이의 재활치료 과정을 써 내려가다, 불현듯 손이 멈췄다.
글로 적어내려가면 담담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힘겹다.
장애를 알게 된 순간부터 나의 사고와 생활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할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경험은 살아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라,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목소리를 내어도 온전히 공감받기는 어렵다. 작은 일상마다 스며든 보이지 않는 좌절과 슬픔, 수많은 불편과 번거로움,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부담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마치 다른 나라, 다른 공간의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만약 둘째 아이를 키우는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다른 세상에서 온 완벽한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두 세계를 오가며 두 딸을 키우면서 나는 작은 딸의 세상에 더 오래 머물렀다. 그곳은 상처받지 않고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두 세계를 오가며 방황하게 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품고 산다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은이를 처음 안고 재활치료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같은 길을 걷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간절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힘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5년 전에는 그런 길을 쉽게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입시 준비보다 몇십 배는 더 절박하게 관련 서적을 찾아 헤맸다. 그 속에서 긍정과 희망의 조각을 붙잡으려 했다.
지금 그 시절의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지만 “살아가면, 살아내면, 결국 살아진다”는 이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싶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글로 꺼내려니,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 쉽지가 않다. 덤덤하게 적어 내려가려 했으나 여전히 그때의 기억은 아프다.
재활의학과 복도에 당시의 담당의사가 세은이와 나란히 앉아 있는 내게 지나가다 돌아와 “곧 아장아장 걸을 테니 염려 말라”는 형식적인 위로를 건넸을 때,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아기를 업어야 해서 최신형 아기띠를 사 들고 좋아라 자랑했을 때, 내 뒷모습을 보던 엄마가 몰래 울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런 사소한 기억들조차 아직도 아프다. 그래서 때때로 스스로 묻는다. 굳이 그 기억을 꺼내 다시 아파해야 할까?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꺼내어 다듬고 어루만지다 보면, 그 기억이 언젠가는 나를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 한 줄의 위로와 격려가 절실한 누군가에게 닿아가 작은 위로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기에 계속 쓰기로 했다.
여전히 아프지만, 나는 천천히 그 고단했던 육아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려 한다.그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아서 힘을 내며 계속 살아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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