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은이와 세상 속으로 -첫 시작의 단어'뇌손상'

그냥 정면으로 살아냈습니다-걸음마를 위한 하루하루들.

by 정선미

딸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땐, 그냥 감사했다.

눈도, 코도, 손도 너무 예뻤고,

태어나 줘서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조금 느리긴 했지만, 처음엔 그냥 아이마다 속도가 다르겠거니 했다.

다른 아이들은 뒤집고 기어 다니고 손을 뻗는데,

우리 딸은 항상 조용히 누워 있었다.

처음엔 "얌전하네", "순하네"라며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의심이 피어났다.


돌이 되기 전, 결국 병원을 찾았다.

담담한 얼굴로 의사는 말했다.

“한 번 뇌 MRI를 찍어보죠.”

그때의 서늘함과 고요함과 어지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아이를 안고

하얀 복도 끝, 조용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기계 소리만 들리는 공간에서

딸의 숨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숨을 죽였고, 시간도 멈춘 듯했다.


검사 결과를 들은 순간,

몸이 먼저 무너졌다.


“뇌 손상이 있습니다.”

의사의 말이 천천히 내게 가라앉을 때,

눈앞이 흐려졌다.

‘뇌 손상’이라는 단어는 내 아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고, 뭔가 잘못된 거라고,

머릿속으로만 계속 부정했다.

예민함과 거리가 멀던 스물여덟의 나는 어느새 잘 먹지도 못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낯선 나로 변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날은 딸의 인생이 바뀐 날이기도 했지만,

엄마인 나의 인생이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든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각하게 단순한 나의 성격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시간이 주는 치유의 힘에 도움을 받아서 쓰린 가슴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한 걸 직감했다.

괜찮다고 믿기 시작한 것 같다.

어디선가 막연하게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자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후로 나는 다른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적극적인 치료가 효과가 있었다는 내용은 밑줄을 그어가며 나를 살리는, 세은이를 살리는 문장이 되어 내가 붙잡고 매달렸다.

닥치는 대로 재활치료 책과 육아서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특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설명; 또래들이 걷고 뛰던 시기-우리 세은이는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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