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는 엄마입니다

나는 잘 노는 발달장애 엄마입니다

by 정선미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 잘 노는 엄마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학창 시절까지, 나는 늘 에너지 넘치고 수다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은 기꺼이 나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는 매일 이야기꽃을 피우며 살았죠.

합창대회, 과대표, 각종 행사와 이벤트.

그 시절 나는, 누가 뭐래도 가장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나에게 결혼과 육아는 내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낯설고 고된 독박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며느리의 역할과 위치는 나를 지치게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지칠 때면

불꽃같았던 나의 열정 가득한 젊은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음을 기억하곤 하며 그리운 회상을 하며 추억을 꺼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큰일이 생겼습니다. 첫째 딸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스물일곱.
낙천적이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일주일 넘게 잠들지 못한 밤들을 보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던 나는 여기저기 마음의 동굴을 파고 그 안에 꼭꼭 숨기 시작했습니다.
연락도, 만남도 모두 두렵고 버거웠습니다
특별한 삶의 형태로 살아가며 나는 평범한 삶이 아닌 '너무나 다른 길만 걸어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지레 겁을 먹고 몸과 마음을 웅크렸습니다.
내 예상대로 평범하지 않은 아이의 재활치료를 위한 새로운 삶이 열렸습니다. 열심히 재활을 이어갔고 그러면서 큰딸은 다행히도
아장아장 걷고 책을 읽어주거나 노래나 율동을 가르쳐주면 방긋방긋 웃으며 따라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면서 지친 나의 육아를 견디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
그 아이의 맑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아기를 내 슬픔의 동굴 속에서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밝고 환한 곳에서, 행복하고 당당한 엄마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난 열심히 노는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식지 않는 열정을 간직하고 사는 그런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고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 아이를 키웠습니다

장애, 비장애의 자녀를 학교를 따로 보내면서 형제의 장애를 숨기기도 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물론 지나친 편견에 지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난 상처받을 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큰아이와 작은 아이를 같은 학교로 보냈습니다
자연스럽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고 싶었고 내가 스스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가서 어울리는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장애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슬픔과 한숨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부모 대표를 맡아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꽁 꽁 숨기고 드러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구석에서 조용히 학교를 드나들 거란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맨 앞에서 ,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학부모들 사이에 섰습니다
그리고 내가 계획하고 주도한 수많은 이벤트를 주변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열심히 놀기도 하며 함께 추억을 쌓으면서 신나게 살았습니다
작은딸도 그런 나를 보며 자랐습니다.

그 아이도 분명
말 못 할 슬픔과 분노가 있었겠죠.
하지만 나는 믿었습니다.
엄마가 먼저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야
아이도 그렇게 자란다는 것을.

열심히 행복하게 삶의 주도권을 쥐고 사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부모교육이라는 신념을 믿으면서.
고맙게도 작은딸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인정받고 사랑받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리더십도, 자존감도 스스로 꽃 피우며 멋지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10년째 장애통합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부모들을 매일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 눈물, 상처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나는 말해주고 싶습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놀고, 행복해야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얼마 전 tv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탤런트 오윤아의 인터뷰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하루 온종일 아들을 돌봐야 했다면 지금까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족, 지인, 돌봄 서비스 등을 이용하며 혼자 키우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오롯이 부모가 모든 걸 다 감당하고 키우는 데는 에너지의 한계가 있었을 것이며 그 한계에 지쳐서 사랑을 줄 수 없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보았습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마을전체가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물며 장애를 가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전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같이 키워간다면 자식이 홀로 남겨질 두려움에 잠 못 드는 부모가 조금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엄마라 할지라도 육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한다면 끝까지 제대로 아이를 지킬 수 있더라도 온전히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혼자서 감당하며 키운다는 것은 건강한 육아가 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돌봄과 보살핌을 쉬지 않아야 하는 아이의 경우라면 더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잘 노는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 서비스의 시간과 서비스의 질이 점점 더 많이 나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혹시라도 타인에게 이기적이거나 얄밉게 보인다면 할 말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 삶을 살아주지 않는 한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기도 어렵거니와 굳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벌써 지칩니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뿐입니다

물러나거나 주저앉았다 주춤거리다 보면 단 한 번뿐인 생이 쉬지 않고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중년을 다시 힘차게 살면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활기차게 살아내겠다고 매일 다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로 위로받고 싶은 모든 분들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나의 모순 가득하기도 하며 보잘것없는 이 삶이,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장애아의 부모는 늘 슬프고 무기력할 거라는 편견에 작은 균열이 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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