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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농쌤 Aug 24. 2024

딩크족이었습니다만.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 사전에서 ‘딩크족’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말이다. 나는 딩크족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유모차를 탄 아이를 만나면 모든 친구는 그 아이가 예뻐죽겠다는 듯 “아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을 공감할 수 없던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식당에서 가족 외식을 할 때 옆 테이블에 아이가 있으면 남동생은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하트 눈빛을 쏘는 동생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결혼 전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한순간도 없다. 나에게 아이란 우는 존재, 귀찮게 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은 일찍 하고 싶었다. 원가정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인지,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인지, 공존하는 두 마음으로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성질이 불같던 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주는 세상에 없을 부처 같은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와 결혼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삼 형제 중 장남인 그에게 딩크족임을 말하기 어려웠다. 과거보다 나아졌다 해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는 아기는 안 낳고 살고 싶어.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즐기면서 사는 게 좋은데 자기는 어때?” 어떤 말이 나올까?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입을 주목했다. “나도 아기 없이 둘이 사는 것이 좋아. 나는 원래 결혼 생각도 없었잖아.” 이렇게까지 천생연분일 수 있나 싶었다. 기쁨도 잠시 이내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우리의 의견이 같더라도 시부모님 입장은 다를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양가 어른들께 딩크족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이 딩크족이라는 같은 뜻을 가진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당돌하게 시아버지께 웃으며 말씀드렸다. “저희는 아기 안 가지거나 늦게 낳으려고요~” 그 순간 얼음장 같은 정적이 잠시 흘렀지만 “이제 결혼했는데 아기는 천천히 가져도 되지”라는 시어머니 말씀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수학 학원 강사였던 나는 결혼 후 내가 운영하는 공부방을 차렸다. 과외하던 학생들이 있었기에 오픈하자마자 일이 바빴다. 하루는 배가 사르르 아팠다. ‘체했나?’ 다음날은 배가 쿡쿡 찌르며 아팠다. ‘무리해서 장이 꼬였나?’ 며칠간 경험해 본 적 없는 지속적인 복통으로 인해 남편과 함께 내과를 찾았다. 이것저것 질문하던 의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임신 가능성은요?” 속으로 ‘이 양반이 뭘 모르시네~’ 비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휴 절대! 절대 그럴 일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얼 믿고 그렇게까지 절대를 외쳤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적어도 내가 배운 상식으로는 아이가 생길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절대를 외쳤다. 복통이 계속 지속되면 정밀검사를 해보자 하셨고 약 처방을 해주셨다. 약국에 들어서자 느낌이 싸하며 의사의 말이 맴돌았다. 계산하는 남편 옆에서 “임신테스트기도 하나 주세요” 하며 숨길 일도 아닌데 숨겨야 하는 마냥 조용히 말했다.


선명한 두 줄. 아기 낳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기를 낳는다면? 하고 상상해 본 적은 있다. 상상 속에선 내가 리본 묶은 임신테스트기를 수줍게 내밀면 남편이 나를 번쩍 안고 뱅뱅 돌리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현실에선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는 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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