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는 소개팅. 수없이 스쳐간 남자들.
그중에 내 남편은 없었다. 신기할 노릇이다.
늘씬하고 옷을 좋아해 스타일링이 나름 괜찮은 나에게 주위 사람들은 늘 물었다. 남자 친구 없어? 왜? 숨겨놓고 있는 거 아니야 껄껄. 하나도 안 웃긴다. 리얼로 없다. 남자 친구가 있을 것 같은데 없다고 놀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해야 될까. 제가 뭐가 문제인 걸까요라고 해야 될까. 그런 그들도 나에게 주위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주겠다 하면서도 막상 찾아보면 없단다. 이미 괜찮은 애들은 짝이 다 있다고. 그럼 짝이 없는 나는 안 괜찮은 애 인걸까. 주룩.
처음으로 결혼 생각이 들었던 남자친구와 28살에 헤어지고, 기본 10명은 줄 세워놓고 하루 두 탕씩 뛰던 소개팅, 영어 스터디, 러닝크루, 독서모임, 미팅 안 해본 게 없다. 그중 영어 스터디에서 스터디장을 만났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데이트만 하고 오면 섭섭한 포인트들을 늘어놓는 '섭섭충'이었다. 처음엔 나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섭섭하다면 내가 잘못한 거겠지 하며 정성스레 사과문을 썼다. 그것도 하루이틀. 매일 진화하는 섭섭 스토리와 나중에는 본인이 업소를 간다면 어떡할 거냐는 둥, 느닷없이 내 카톡을 보여달라는 둥 어이없는 그의 대화흐름에 없던 정도 다 털렸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싸울 때마다 꽃다발에 정성스러운 손 편지를 가져다주던 스위트함. 그 모든 게 다 싫어졌다.
그러고 다시 미친 듯이 소개팅을 했다.
평생 자만추로만 연애한 나에게 소개팅으로는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았고 점점 더 외로워졌다. 운동에 미치기로 하고 바프를 찍다 식이장애가 생겨 몸이 점점 불어가던 중 소개팅에서 내 남자를 찾았다. 한남동 카페에서 보기로 했는데 이태원 참사로 버스운행 길이 막혀 무려 30분이나 늦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괜찮다며 이해해 주었다. 커피 한잔에 대화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동향 사람이었다. 이런 우연이. 늘 무표정에 한결같은 톤으로 약간 심심한 듯이 얘기하길래 이 사람이랑은 잘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이제 집에 가야지 하는데 그가 괜찮으시면 같이 저녁 드실래요?라고 했다. 포커페이스 훈남이 커피면접 합격통보를 내려주니 기분이 배로 좋았다. 지각한 게 미안해 저녁은 내가 사고 2차로 분위기 좋은 LP 바를 갔다. 신청곡을 받아주는데 그 당시 꽂혀있던 90년대 발라드만 연달아 신청했다. 우린 음악 코드까지 맞았다. 3차 코인노래방 까지 야무지게 달리고 우린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남을 약속하고 연락을 지속하던 어느 날.
만취해서 보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땐 호르몬이 어떻게 된 거였을까. 강남에서 여의도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그렇게 같이 한잔 기울이며 공식 연인이 되었다. 9개월 만의 연애에 잔뜩 신이 났다. 우린 동갑이었고, 같은 고향이었고, 대기업에 다녔고, 여행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사귀고 첫 데이트가 청계산 등산, 그가 미리 예약해 둔 마룬파이브 공연을 같이 봤고, 크리스마스 때는 싸이의 올나잇 스탠드와 성시경 콘서트를 연달아 봤다. 그의 차를 타고 근교 드라이브도 자주 갔고, 경주 경리단길 구석의 아늑한 숙소에서 새해를 같이 맞았다. 같이 서른이 되었다. 근데 이제 그가 싫어졌다. 그전부터 데이트 때 돈을 아끼던 그의 모습이 종종 불편했었는데 여행을 가니 그게 배로 불편했다.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지 않고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그래도 그는 키, 외모, 직업, 가족 분위기, 여행을 좋아하는 성향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게 없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해서 잘 맞춰나가고 싶었다. 근데 그게 안 됐다. 그는 심지어 '인스타충'이라 최소 매일 두 개 이상의 스토리를 올렸고, 데이트 가서 내가 찍어준 사진들을 꼭 여자 친구 없는 척 올리며 여사친들과 DM 나누기를 좋아했다. 그게 점점 꼴 보기 싫었다. 그가 인스타에서 봐둔 맛집이 있다며 금요일 퇴근하고 같이 가자 했다. 감사하게도 재택이었던 그가 먼저 도착해서 웨이팅을 해주었다. 근데 그 감사도 잠시. 고기가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댔고, 식사 중 그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인스타를 확인해 보니 이미 우리가 먹는 고기와 술 사진이 편집되어 스토리에 올라와 있었다. 진정 정 털렸다. 나는 바로 헤어지자 할 용기는 없었고, 우리 오늘은 좀 일찍 귀가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직감했다. 그가 곧 차일 것이라는 걸. 그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이 채 안돼 우린 헤어졌다.
서른쯤 되면 시집가서 애 낳을 준비나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또 이별.
2개월을 채 못 넘기는 나도 신기하지만, 만나는 놈들마다 이상한 포인트가 있는데 뭐 어쩌겠는가. 서른 살이 되니 조급했다. 이제 소개팅 시장에서도 메리트가 없을 것 같았다. 근데 웬걸 내가 선호하는 직군의 키 큰 남성 두 명이 연달아 소개팅 매물로 들어왔다. 나는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상황이었고, 처음에 호감 갔던 분은 애프터를 가보니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섭섭충이었다. 결국 다른 한 분과의 애프터에서 너무 잘 통했고, 우린 그날 바로 사귀었다. 오프터씩 소개팅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나는 뿅 가면 바로 고다. 재고 따지고 밀당할 틈이 없다. 그는 학벌/ 직장/ 집안 뭐 하나 빠지지 않아 보였다. 그 사실을 그도 너무 잘 알았다. 분명 사귀기 전엔 내가 우위에 있는 것 같았는데, 관계를 시작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대화 할 때 나를 '심판' 했다. 둘 다 술을 좋아해 우리는 늘 술 데이트를 했고, 난 늘 필름이 끊겼다. 뭔가 찜찜하던 와중에 같이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예민충'이었다. 잠이 안 온다며 나에게 짜증을 냈고, 그런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거실에서 폰을 보고 있었다. 근데 그가 터졌다. "너 여기서 뭐 해? 지금 서울 갈래 어떡할래?"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운전을 네가 해야 되니 너가 결정하라 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우린 헤어졌다.
그렇게 단타 연애만 계속되며 점차 결정사 가입에 가까워지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