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 인간에 대하여.
직장인 9년 차
나는 MBTI가 한 번 바뀌었다.
귀엽고 똥꼬발랄하던 20대 시절엔 ESFJ 가 나오더니
사회생활 하며 인간에 질릴때쯤 ISTJ 가 나왔다.
MBTI 검사 때 같이 있었던 친한 동생들은 말이 안된다며, 나의 경우 회사 자아와 회사밖 자아의 갭이 크니 집가서 다시 검사해보랬다. 나는 됐다며 손사레를 치고는퇴근하고 집가서 다시 검사를 했다. 결과는 또 ISTJ.
나의 1년 맞후임은 내가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 1) 사람 싫어짐 (E > I) 2) 감정 없어짐 (F > T)으로 바뀐 것 같다 했다. 오..내가 생각해도 맞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회사에 감정이입해서 혼자 마상받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모든 것에 ‘또 저 ㅈㄹ이네’ 하며 의연히 넘길 줄 아는 타격감 제로 인간이 되었다. 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일테지.
일 잘하는 MBTI
고향 친구 하나가 소개팅을 해주겠다며 내 프로필을 받아가더니 오 일 잘하는 MBTI네? 라고 했다. 아 그렇니? 라며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훗 역시..하며 혼자 뿌듯해했다. 병신미 대폭발. 현실적인데다 꼼꼼하고 계획적이니 회사에서 나쁘지 않은 MBTI 라 생각했다.
2026 신년을 맞아 옆팀 차장님과 점심 식사를 하는데 어라 잠깐..이 분 MBTI 도 ISTJ 란다. 처음으로 충격을받았다. 작년에 같이 일하며 뭐 저런 사람도 회사에서안 잘리고 잘만 다니나 그렇게 내가 씹고 다닌 사람이었는데...나랑 같은 MBTI 였다고??! 소름끼친다.
이쯤되니 릴스에 도는 극혐 MBTI 1, 2위가 왜 ISTP, ISTJ 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이 보는 나는대체 어떤 사람일까. 감정은 쏙 빼고 자기 할 일 똑부러지게 잘하는 커리어우먼의 느낌을 상상해왔지만 문뜩불안하다.
감정 디톡스, 그것만이 내가 살 길.
직장을 다니며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 있어 직장은 열정을 쏟거나 감정을 엮는 공간이아니었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나를 내려놓고 회사밖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이를 테면 퇴근 후에 볼 재밌는 영화를 찾는다거나 맛있는 메뉴를 생각한다던가. 자격증 취득이나 취미 생활에 도전한다던가.
회사사람들과도 확실하게 벽을 두었다.
나도 선을 넘지 않되, 그들도 절대 내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확고히 하듯 나는 늘 무표정에 말 수가 없었다. 나중에 오래다닌 직장을 퇴사하며 후배들과 술 한 잔 기울일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사무실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너무 무서웠다는 것. 늘 후배들에겐 상냥하다 생각했건만 내 인상이 진짜 드릅긴 드러운가보다.
이제 직장 8년을 그리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직장의 모습이 내 일상의 모습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 모임을 나가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늘 구석에 혼자 대기했다 운동만 하고 일찍 나갔고. 다른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모여 인증샷을 찍고 친목모임 단톡방을 파고 하는 것에 어울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완벽한 ISTJ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근데 그런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언제고 감정운운하며 징징거릴 수는 없으니. 이렇게 내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연인을 찾는 노력을 하기 전까지는.
시집은 가고 싶은데, 감정은 쓰기 싫고.
이제 제 짝을 찾으려 소개팅을 하다 보니 나의 변해버린 모습이 발목을 잡는다. 이모티콘 하나 없는 딱딱한 카톡. 장소 시간 약속 잡는 목적이 아니면 절대 울리지 않는 카톡알림. 낯가리는 거라고 하기엔 늘상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시험하듯 앉아 있었을 내 모습. 이성을 만나기엔 너무 정없다.
그래서 나는 늘 이자카야를 찾았다.
조금 더 릴렉스 되고. 어둡고. 한잔 하다보면 나도 자연스레 웃게 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분들과 애프터 삼프터도 가곤 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전까지는 루틴이 생활화된 정적이고 담백한 나의 MBTI 가 너무 좋았다면, 지금은 누가 내 MBTI를 물으면 눈치보인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이성이 아니라 누굴 만나더라도
살갑고 다정한 말투와 인상은 매력 포인트가 된다. 어릴 때는 그게 호구잡힌다 생각했다. 실제로 착하고 물러터진 성격때매 맞선임에게 조리돌림을 많이 당한 탓일까.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며 나 자신을 보호하다보니감정없는 세상 시니컬한 사람이 되었다.
고집불통에 꼰대력 만렙.
현실적이지 않은 건 거들떠도 안봐 창의력이라곤 1도 없으며. 남의 말은 일단 틀렸다 생각하고 듣는. 표정도 말투도 세상 딱딱해 카리나에 장원영이라 해도 정털릴 리액션. 사회생활은 이게 맞다 생각했는데 요즘은 또 잘 모르겠다. 그냥 호구가 되더라도 모두에게 상냥하고저자세로 임해야 되는 것일까?
사실 상냥해질 에너지도 열정도 의욕도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조금 더 마음을 줄 줄 아는 여유를. 한살 한 살 먹을수록 가져야겠다 생각해본다. 무뚝뚝하지만 내 사람만 신경쓰고 내 사람 한정 따수운 사람이긴 한데. 이젠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따수움이 남이 생각하는 그것과 동일한 마음인지.
차가움과 따뜻함 그 중간의 적정선을 천천히 찾아가봐야 겠다. 좀 더 미소짓고 따뜻함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