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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느 Jun 22. 2015

[책] 『자기 앞의 生』 에밀 아자르

결국, 사랑

1.

에밀 아자르, 를 검색하는데 로맹 가리, 가 뜨고. 로맹 가리, 를 검색해 보면 에밀 아자르, 가 뜨고.

이들은 뭐 서로 영향을 많이 주었나 보다, 하고 넘어가기엔 흥미가 더해져 가만 살펴보니 동일 인물이라고?, 했던 것.

북카페 같은 곳을 염탐하다 좋(아보이는)은 책을 발견하고는 읽어봐야지, 기록하고 기억해 두었던 것.

그때 읽어보고 싶다 여겼던 책인데 (신뢰하는) 문학동네에서 새로 낸다니, 이건 사야 해, 했던 것.

아껴 읽겠다는 연유로 책꽂이에서 한 자리하며 지낸 세월이 어언...

그런 것.



2.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급작스레 등 떠밀려 어른이 되는 것 같았던,

네 모든 말과 행동에 따르는 책임은 네가, 가 수반되는 환경에서, 때로는 아니라고 생각되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때.

책 한 권 읽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침대에 몸을 뉘어야 했던 때.

잠깐의 틈을 비집고 찾아드는 삶의 방식이랄 것에 대한 고민이 참으로, 진지하고 결연했던 때.



3.

열네 살이라곤 믿기지 않는, 세상 혹은 삶을 향한 태도.

어쩌면 열네 살이라곤 믿기지  않는,이라는 수식마저 열네 살은 삶에 대한 회의 같은 것 어울리지 않아, 해버리는 것이 아닌지.

누구나 제 삶이 아닌 것에 대해 말하기는 쉬운 것이다.

제가 지나온 나이의 삶이라면, 더더욱.

그 나이 때는 그런 법이지, 하고. 단정짓고 마는 것.



4.

어쩌면 그래서, 모모의 서늘한 냉소와 비관이, 당혹스러웠는 지도.

그러다 툭 비치는 아이다운 상상력에, 픽 웃음이 났는 지도.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69쪽)  

'낫지는 않아, 낫지는 않는단다'를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 내게는 몹시 우스웠다. 마치 낫는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146쪽)


5.

하지만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지난 내 삶에 필요했던 본질은,

결국, 사랑.

곁에 있는 이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

삶의 격정을 함께 나누고 싶어, 말하며 나를 모두 내어 사랑할 이를 그리던  지난날.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쯤 서로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로자 아줌마의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151쪽)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이미 당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가게 문을 닫을 때가 되면 건너편 건물에 살고 있는 할라우이 부인이 와서 할아버지를 데려다가 잠자리에 누이곤 했다. (…)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3-174쪽)


6.

손가락으로 한없이 쓸게 되던 마지막 장, 마지막 단락. 느려지는 다독임의 손길.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307쪽)

조경란 소설가의 문장처럼, 그토록 그려오던 당신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곁에 있는 당신. 나와 있어줘서,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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