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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느 Sep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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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하나. 손을 움직여 사유를 따라간다. 사유하나 나는. 사유라는 말은 어렵다. 나는 딱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 지금은 준비운동 같다. 어쩌면 계속 준비운동만 하다가 끝이 날지도 모른다. 끝없는 준비운동. 끝없는 준비운동을 이어갈 때, 그것은 준비운동일까. 그렇게 말하긴 조금 어려울 것 같다. 그 정도의 운동을 하는 셈이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에 가만히 마음이 멈추는 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런 걸까요.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아무 것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자꾸만 그런 기분이 든다.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라니까. 두 마음이 싸움 비슷한 것을 하는 것도 같다.

  삼다 문집에 실을 원고를 수정해야 하는데, 아침부터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었는데, 도저히 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겨우 한 편 켜놓고 조금 다듬어 봤다. 지난주보다는 조금 마음에 든다. 그래서 더 건드리지 않았다. 한 번 마음에 들었던 원고는 건드리고, 수정하고 싶지 않다. 그때 그것으로 충분해. 그만큼으로 충분해. 부족한 게 보여도, 손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작은 부분은 당연히 고치겠지만. 큰 건 그대로 두고 싶어. 헤집는 기분이 든다.

  줄간격을 늘렸더니 훨씬 좋다. 180퍼센트. 180이란 숫자가 매력적이다.

  창을 열어두고 타이핑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도움이 되었던 음악이 슬슬 방해로 다가온다. 머리가 빙빙 돈다. 멈추지 않고 쓰며, 내가 쓰는 문장을 좇기. 쓰고 있는 문장을 따라가라. 지금 쓰는 문장에 집중해라.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다.

  아직 박솔뫼를 읽고 있다. 백 행을 쓰고 싶다. 아키 아키라를 검색해봐야 한다. 무엇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 하고 싶다의 강한 표현이다.

  오늘은 화요일. 한 시간 후 쯤엔 요가원에 갈 것이고, 그 전에 ATM기에 들러 송금할 일이 있다. 내일은 사당에서 점심 약속이 있고, 저녁에는 뚝섬에 간다. 뚝섬의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이것 봐. 무엇 해야지는 무엇 하고 싶다의 강한 표현이라니까.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글쓰기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자. 아니, 방금 문장을 쓰면서는 너무 많이 멈췄다. 문장에 틈이 너무 많았다. 거침없이 가야 한다.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일까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내 문장에 애착을 갖는다. 그것이 중요하다. 내 문장에 대한 애착. 내가 쓰는 글에 대한 애착. 그걸로 됐다면, 나는 사실 된 거나 다름없다. 나는 이미 됐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쓰고, 내가 다시 읽을 무언가를 쓴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을 내가 쓴다. 무엇을 쓰냐고 묻는다면,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쓴다고. 답할 말이 있는 것이 중요할까 싶지만. 자꾸만 문장이 끊기는 것에 더 신경쓰고 집중해야 하지만. 이미 마음이 괜찮다. 여전히 간절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괜찮다. 괜찮음에 안주해서는 안 되지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계속 갈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 내면이 알고 있다. 형태로 내밀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즐거운걸. 뭘 하는지 몰라도, 뭘 하는지도 모르겠는 이 시간이 좋은걸. 오늘 뭐했어? 물을 때 뭐 그냥, 얼버무리며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를 때도 이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뭔가 했으니까. 나에게 중요한 무엇을 했으니까. 나에게 중요한 무엇. 나에게 중요한 무엇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가 닿는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도, 적어도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계속 가도 괜찮아. 열심히, 해 봐. 어차피 해야 하는 걸 거야. 어차피 돌고 돌아 네가 하겠다고 하고 있는 일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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