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이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결국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사랑으로 대하지만, 그 사랑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교실을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뛰면 위험해.”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웃으며 다시 달려간다.
놀잇감이 날아오르는 일도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된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사실 그 일들은 나를 크게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정말 어려운 건 어른과의 관계다.
물론 모든 학부모님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감사 인사를 아끼지 않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몇몇의 관계가, 이 일을 10년째 하고 있는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낮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가 있다.
옆에서 토닥이면 웃다가도, 어느 순간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안아도, 달래도 쉽지 않다. 결국 낮잠을 포기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면 더 크게 울며 바닥에 눕는다.
그 울음에 다른 아이들이 깨고, 교실은 순식간에 흔들린다.
조용해야 할 시간이 파도처럼 무너진다.
그날의 상황을 수첩에 적어 전달하면 돌아오는 말은 “집에서는 잘 자요.”
집에서 12시간을 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깊이 잘 수 없기에..
몇 주째 아이도, 교사도, 친구들도 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수면 시간을 조절해 주면 모두가 편해질 텐데, 변화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내 욕심일까, 스스로 묻게 된다.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헤매는 부모님도 있다.
병원에서 받아온 빈 약병의 사용법을 몰라 그대로 보내거나,
본인이 춥지 않다는 이유로 보일러를 켜지 않아 아이가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
왜 용량을 지켜야 하는지, 왜 실내 온도가 중요한지 몇 번이고 설명한다.
그 순간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보이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 나는 결국 말 앞에서 멈춘다.
어떻게 말해야 좋은 교사일까.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 할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 전해야 할까.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솔직함이 때로는 상처가 되고,
조심스레 돌려 말하면 전달되지 않는 순간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겪었다.
게다가 요즘은 어린이집을 옮기는 일이 어렵지 않다 보니,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그 점이 가장 힘들다.
몇몇의 경험 때문에, 나를 믿어주고 좋아해 주는 부모님의 마음까지 의심하게 되는 내가 싫어진다.
10년이면 단단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이 고민은 결국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도, 부모도, 그리고 나 자신도 모두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더 나은 말을 찾기 위해서.
아이와 부모, 그리고 나를 모두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아마 내일도 또 망설이겠지만,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