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멈추지 않는 밤들

강박증에 대하여

by 서온랑

주의: 이 글에는 자해, 사고 강박증, 자기혐오, 우울감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언급되므로,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분이라면 주의를 기울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끊이질 않는 나날을 보내던 나는 2024년 3월 26일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사실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눈물로 밤을 새웠던 기억과 거울을 봤을 때 타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득 책을 읽다가 그때의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완벽하려고 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옳고 완벽하게 있으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 나는 늘 자책과 후회 속에서 살았고 고치지 못하는 과거를 계속 되새기며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며 채찍질했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 내가 염라가 되어 나 자신을 심판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자기혐오는 깊어져 갔다.


나의 완벽은 병적이었다. 성격은 '착해야만' 했고 나쁘게 보이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누군가를 험담하는 것 같은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쓰레기가 된 거 같은 기분에 주일을 자책했다. 남이 저지른 실수를 내가 수습하지 않고 지나치면 내가 선하지 않은 사람이 된 거 같았다. 말실수를 하면 생각 없이 말한 나 자신이 싫어졌다. 나는 옳음과 착함, 더 나아가 '내면의 청결함'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배려도 못하는 사람이고 착하지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나 부족한 사람이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나한테 무슨 가치가 있지? 내가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가 나를 심판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24시간 나는 나를 평가했다. 생각을 멈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웹소설에 집착했고 활자 중독자가 되었다. 글이 안된다면 노래를 듣고 노래가 안 된다면 글을 읽었다. 생각을 생각으로 막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았다. 이래도 안된다면 게임을 했고 게임 중독자가 되었다.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끌어다가 생각을 막았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미칠 거 같아서…


그러면서 나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했다. 그걸 밖으로 드러내는 꼴사납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타인에게 쉽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마치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손부터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 것도, 내가 나약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 선에서 정리하려고 애썼다. 근데 그게 안 됐다. 결국에는 울면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청하는 게 무서웠다.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떨렸다.


그런 주변에게 나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픔을 견디지 못한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 싫었던 나약한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때의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중심이 잡혀있지 않아서 그걸 그대로 내면화시켰다. 아, 나는 나약한 사람이구나.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청결함에 집착했던 나는 내가 더 싫어졌다. 정말 죽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이런 내가 나인 게 너무 괴로워서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칼로 자해를 하는 건 하지 못했다. 겁이 많아서 손도 대지 못했다. 웃기게도, 그렇게 죽고 싶으면서도 칼은 무서웠다. 나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벌줬다.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때로는 숨이 막힐 만큼 목을 조이기도 했다. 그게 내가 나 자신을 심판하던 방식이었다. 그런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몰랐다. 내가 나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래도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었다. 그래서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2024년 3월 26일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나는 내가 괜찮은데 아픈 척을 하는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 최대한 괜찮게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을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울면서 왜 왔는지 이야기를 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내 이야기는 매우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지라 꾀병 판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병명은 사고 강박증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는데 초반에는 계속 울었던 거 같다. 뭐가 그렇게 울 게 많았는지… 억눌렀던 감정들이 참 많았나 보다.


약을 처방받고, 미술치료도 함께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많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울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는지를. 그동안 나는 언제나 나를 심판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연습하고 있다. 나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나를 지켜줄 수 있도록 말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얽힌 감정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감정들을 발견했다. 죄책감과 수치심, 억울함, 분노, 자기혐오… 많은 감정들이 꼬여있었다. 제일 많이 보였던 감정은 '죄책감'이다. 마음 깊은 곳에 죄책감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죄책감은 나를 너무 몰아붙이며 생긴 것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했다. 사소한 거 하나에도 내 잘못처럼 여겼다. 그걸 미술치료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된 거 하나가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사고 강박증 약을 먹고 있다. 약이 없으면 생각이 멈추지 않아 힘들다. 약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내게 변화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옳음'과 '청결함'을 내려놓았다는 것일까? 아직 '완벽'은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그런 자신에게 고통받는 중이다. 그래도 초반에 내가 어땠는지 잊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의사 선생님은 잊지 말라고 하심). 지금은 꿈을 좇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너무 좋다. 가끔 완벽을 놓지 못해 자책하지만 곧 완벽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거 같다. 부디 포기하지 말기를 언젠가는 꼭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니까. 광활한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먼지보다도 못하다지만, 그런 나는 살아간다.




안녕하세요. 서온랑입니다. 강박증에 대해서 한 번쯤 다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중에는 더 잘 정리해서 들고 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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