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이 나를 삼키려고 할 때

이것은 성장통인가?

by 서온랑

여러분은 수치심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언제인가요? 저는 요즘 수치심에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이 감정은 저를 꽉 움켜쥔 채 좀처럼 잘 놓아주지 않아요. 밤에는 자다 말고 눈을 뜨게 만들며, 아무 일도 없던 하루에도 그림자처럼 저를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저는 요즘 가만히 있기보다 꾸준히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거든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더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꿈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과 수치심인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치심이라는 말을 찾아봅시다.

수치-심(羞恥心) 「명사」 수치심을 느끼는 마음

수치는 뜻이 뭘까요?

수치(羞恥) 「명사」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이걸 종합해서 봤을 때 수치심이란 다른 사람을 볼 낯이 없는 마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저는 나아가고 있었고 더 나아지고 있었는데 왜 떳떳하지 못한 마음― 수치심이 들었을까요.


이 수치심에 대해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왜 자꾸 수치심이 들까?" 언니는 간단하게 대답했죠. "너 그거 경험통이야." 경험통… 경험을 하면, 그 과정에서 올라오는 고통이란 뜻일까요? 저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 수치심은 부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무언가가 내 안에서 부딪히고, 흔들리고,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예전에 나로는 살 수 없게 된 순간. 그 전환의 문턱에서 수치심은 어쩌면 '경험통'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새로운 나로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 낡은 저는 제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넌 할 수 없어.", "이번에도 잘 안될 거야.", "포기하면 편해.", "나대지 마. 가만히 있어." 그 목소리는 저를 망설이게 만듭니다. 또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저는 사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이렇게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매번 꿈을 그릴 때마다 어딘가에 부딪혔고, 좌절했고, 포기했죠. 이유는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까지 참 다양합니다. 이제야 다시 꿈을 그리게 됐는데…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경험을 할 때마다 수치심을 느끼면 나는 이걸 버틸 수 있을련지… 아직 가만히 있던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거 같습니다. "너무 나서지 마." 그다음에 올 말은 무엇일까요. "그러다 다시 상처 입으면 어떡해." 혹은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낡은 제가,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저항을 하는 거 같습니다. 저를 지켜주려고 하는 걸까요. 제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걸까요. 아직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나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불편한 신호 그렇지만 부정적이지는 않은 그런 신호이지 않을까요.


언니가 말했던 '경험통'이라는 말이 자꾸 입안에서 맴돕니다. 저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아직 확실한 거는 없지만 한 가지는 알 거 같습니다. 이 수치심은 나를 주저앉히려고 한 것이 아닌 낡은 나와 새로운 나 사이에서 일어난 일종의 충돌이라는 것을요.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경험통― 즉 성장통이었던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온랑입니다. 오늘도 제 글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종류의 수치심이 처음이었고, 처음에는 이 감정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수치심에 휩싸여 몇 시간을 자책하며 앓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게 정말 수치심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감정일까요?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제 안을 더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요즘 수치심을 겪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은 평소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신지도 궁금해집니다. 이상 다시 한번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뒤늦은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