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애도

그리고 인정

by 서온랑


여러분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그냥 제일 첫 번째로 떠오르는 기억이요. 저는요, 깜깜한 밤 속을 달리는 차 안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는 차 안에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어요. 가로등이 빛무리를 지며 빠르게 지나가고 검은 하천을 따라 도로를 달리는, 이 길은 유치원에서 돌아가는 길이었던가, 어디로? 할아버지 집? 아니면 다리 건너 있었던 우리 집? 나는 무엇을 들고 있었더라. 하얀 곰돌이 인형? 유치원 가방? 아니면 그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던가. 세세한 것은 떠오르지 않지만, 까만 밤하늘과 대비되는 가로등을 바라보던 기억은 확실합니다. 아마 기억 속의 그 길은 할아버지 집에서 돌아가던 길, 혹은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둘 중 하나겠죠.

기억이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할아버지 집에서 시작합니다. 어른들의 사정도 이해하지 못하고 분위기도 읽지 못하고 눈치가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차가운 집에서 있던 기억은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꼿꼿한 등과 단정한 백발, 딱 맞춘 듯한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집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거스르지 못하는 절대 권력자. 모든 것은 할아버지의 뜻대로. 그것에 반대 의견은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제 눈에 할아버지가 딛고 있는 땅은 단단해 보였고, 그 주변의 공기는 몹시 무거워 보였습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었습니다.

첫째지만 딸만 둘인 우리 아빠. 둘째지만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던 작은아빠. 그 집에서 있었던 어린아이들은 딸, 딸, 딸, 아들 네 명입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큰 가게에서 일하는 아빠를 기다리며, 친언니와 나는 친척 언니, 오빠와 자주 어울려 놀곤 했습니다. 같이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집 가까이 있던 학교를 탐방하거나 옆에 있는 교회 놀이터에 몰래 들어가 놀거나 그러다가 지치면 집에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보았죠. 그걸 지켜보던 할아버지, 배고플 적 밥을 챙겨주시던 어른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느끼는 것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즐겁던 그 시절.

그 집에서 지내는 동안, 권력자인 할아버지의 존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들은 모래사장 속 유리 조각 같아서. 이 기억들이 세월을 거쳐 보석이 될지, 나의 발을 찌르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언제였더라,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를 따라 낚시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엄마와 할아버지와 언니랑 나. 이렇게 네 사람이 간 낚시터에는 큰 개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목줄을 하지 않고 낚시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그 개들은 어린 언니와 나의 눈높이와 비슷한 덩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개들은 언니와 나를 보자마자 맹렬히 달려왔고 우리는 겁먹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빠르게 엄마 품에 안겼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고 한참을 달렸습니다. 그런 때에 할아버지가 저를 보시고 번쩍 안아 개에서부터 멀리 떨어트렸죠. 이 낚시터에서의 기억은 할아버지와 얼마 안 되는 추억입니다.

이 얼마 안 되는 추억이 하나 더 생각났습니다. 유치원 때 제가 언니들과 오빠와 뺑뺑이를 타다가 기구에서 떨어져서 머리에 크게 혹 두 개가 난 적이 있습니다. 같이 놀았던 언니, 오빠들보다 두세 살 어린 제가 뺑뺑이가 돌아가는 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잡고 있던 손을 놓쳐버린 것이죠.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습니다. 즐겁게 놀던 시간은 이미 제가 다치며 끝나버렸습니다. 그게 또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언니 손을 잡고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집에 와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죠. 그것을 지켜본 할아버지는 저를 꾸중하지 않으시고 안방으로 데려간 뒤 저를 눕혔습니다. 그리고 얼음을 가져와서 제 이마에 대고 잠들 때까지 옆에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때 창문에 들어오던 빛들이 기억날 정도로 가장 생생한 추억입니다.

할아버지는 미숙아로 태어난 저를 위해 매일 인큐베이터까지 엄마의 젖을 받아 날라다 주셨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 못 하는 이야기이고, 전달들은 이야기이지만요.

어릴 때는 단단하고 무거워 보이는 할아버지가 마냥 좋았습니다. 다가가기 힘들어도 말을 붙이기 어려워도 묵묵하신 모습을 보면 안정감이 들어 좋았습니다. 유년기가 끝날 무렵 아버지가 할아버지 가게에서 나와 새 직장으로 옮기며 더 이상 그 집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랐고, 어른들의 사정도 알고, 시야가 넓어지며 분위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볼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자매와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오빠만을 반기셨다는 것을, 고기반찬과 맛있는 음식은 항상 오빠 몫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요. 아들 있는 집을 편애하시니 그런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기보다 어린 동서를 미워하던 작은엄마가 몰래몰래 우리를 차별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니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짜장면이나 돈가스를 시킨 날이면 친척 오빠와 언니 앞에는 하나씩 놓여 있었지만, 우리 앞에는 둘인데도 하나만 놓여 있던 것과 그 광경을 우릴 잠깐 보러 왔던 아빠가 목격하고 가슴이 철렁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습니다. 우리 자매는 필요 없으니까 이혼하고 싶다면 꼭 데리고 나가라고 큰며느리에게 소리치던 할아버지를 몰랐고, 가게에서 일하던 아버지에게 돈과 우릴 인질 잡아 협박했다는 사실을, 그런 할아버지와 우리 가족 사이를 이간질하던 작은엄마를, 언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서야 선생님을 통해 언니의 이상을 전해 듣고 그 집에서의 일들을 눈치챈 엄마를, 그 집의 일들을 물어도 침묵하는 우리를 두고 울었던 엄마를……. 그 집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언니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아무것도 모를 수 있었습니다.

그 집에서 차별은 물먹듯이 일어났고 도중에 눈치챈 엄마가 그 집에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언니와 저를 일찍이 학원에 보냈다는 사실도 나중에 서야 알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놀고 싶다고 떼를 쓰던 난 지켜지는지도 몰랐죠.

아빠가 직장을 옮기고 난 후에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매일 만나던 얼굴들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나는 자라며 알게 된 사실들에 혼란스러웠고, 가끔 만나는 할아버지와 그 일가를 보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정하기가 어려워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죠. 차별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했고, 혹여나 우리 자매가 할아버지의 눈길을 끌어 관심이라도 받을까 걱정하는 작은엄마, 작은아빠를 위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눈길이라도 받은 날에는 그들이 우리 부모님을 괴롭힐 테니까요.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에는 권력이 있었고 그들은 그 권력을 잃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한 집안에 누군가가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 권력자의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 예측 불가능한 위협이 되기도 하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살가움을 잊은 듯이 더 어색해지기만 했습니다. 그게 더 마음이 편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추억 그때의 감정 그대로 회상할 수 없는 것은 괴로웠습니다. 나에게 잘해줬던 사람이 내 소중한 사람들한테 폭력을 일삼아 왔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사람은 하얗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빛을 띠고 있다고 해도, 그 까만 부분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론은 알고 있어도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이때까지도, 당신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지금까지도 나의 행동 방향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이동 수업을 준비하던 도중에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선생님께 다가가며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할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입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전 계단을 내려갈 때 빠르게 내려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집도 우리 집도 계단이 좀 있는 집이었기 때문이죠. 계단은 익숙하고 이 습관은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계단을 빨리 내려가는 저를 보시고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놀랐다’라고 생각하신 거는 착각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 사실을 눈치채고 ‘저 안 놀랐어요.’라고 정정을 시도했습니다. 선생님께선 그런 저를 보시고는 ‘아니, 너 놀랐어. 급하게 가지 말고 조심히 가. 다음에 보자.’라고 말하셨습니다.

정말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예정되었던 시간이 온 듯 그저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 어두운색을 띠는 옷으로 갈아입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들을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가 엉엉 울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언니가 옷을 갈아입고 부모님을 기다리는 중에도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제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울고 있는데, 언니도 엄마도 할머니도 고모도 작은엄마도 모두 다 우는데 나만 울지 않으니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린 친척들이 제게 왜 안 우냐고 물었습니다. 매정하다고. 말했습니다. 눈물을 보여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언니와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억지로 슬픈 마음이 들게 했습니다.

뇌가 붕 뜬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머리가 진공 상태가 된 느낌으로 눈을 뜨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고 싶어서 장례식장 한쪽에 마련된 방에 들어가 누우니 할머니가 슬그머니 들어오셨습니다. 제 머리맡에 앉아 당신이 먹여 키운 아이가 그 작은 아이가 이렇게나 컸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실 안 자고 있었는데 눈을 뜰 타이밍을 놓쳐버렸습니다. 눈을 꾹 감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애정으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는 자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뭔가, 뭔가 무서웠거든요.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을 느끼고 움츠렸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맑은 날 하늘길을 가시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서도 권력의 정점에 계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는 물음은 마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물밑에서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시는지 안 나오시는지, 생전에 사랑을 누가 더 많이 받았는지 그런 이야기가 오갔으니까요. 그게 진절머리가 나서 가끔씩 할아버지가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정하려고 합니다. 제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요. 사랑했기 때문에 더 미워졌다는 것을요. 이제야 이렇게 글을 써내려 감정을 풀려고 하는 것이 울지 못했던 그날의 애도를 마치려고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말로 꺼내지 못한 말을 글로 써보며 이 감정이 언젠가는 잔잔히 흘러가기를 바라며,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시간은 차갑게 식혀주고,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제야 제 감정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을 힘들게 한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게 죄인 거 같아서, 제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인정해야겠죠, 저는 할아버지를 사랑했던 거 같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게 첫 출발인 거 같습니다. 이 모든 기억이 나를 덜 아프게 하길 원하면서 마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리게 된 서온랑이라고 합니다. 저는 제 감정을 마주 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애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글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죠? 이 글은 미완성의 글입니다. 이제서야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며 실마리를 풀기는 했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 감정이 어떻게 풀려가는지 같이 걸어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되돌아보고 풀어가려고 합니다. 이상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