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응원하는 사회를 꿈꾸며

아이를 기르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 말해주세요

by 서박하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아무것도 하는 것 없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참 게으르다 느껴진다.


11월부터 계속된 거리두기로 아이도 나도 집에만 있은지 3달이 넘어간다. 원래도 밥에 대한 관심이 없는 데다가 집에만 있어 식욕을 잃은 아이와 식사 전쟁이 하루 3번이나 있다. 아침은 간단히 빵과 과일, 요구르트로 대신하고 점심은 파스타, 국수, 떡국 등으로 돌려막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저녁이다. 저녁을 잘 먹어야 오래도록 밤에 푹 자기 때문이다. 입이 짧은 아이 입맛대로 적게 먹이는 날이면 꼭 새벽녘에 일어나 먹을 것을 찾는다.


겨울이라 해가 짧다. 6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어둡다. 냉동생선가스를 꺼내 에어프라이어 용기에 넣는다. 오일 스프레이를 뿌리고 160도 20분을 맞춰 넣는다. 3일 전에 멥쌀과 찹쌀을 반반 넣어 지은 밥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찹쌀을 섞어야 오래도록 밥이 쫀득하고 맛있다. 아이는 밥이 맛이 없으면 밥을 더 안 먹기 때문에 그나마 신경을 쓰고 있다. 이제 마지막 밥이다. 내일 오전에는 밥을 새로 해야겠다.


전자레인지에 밥을 데우고 꺼내 조금 딱딱해진 부분은 내 밥그릇에 말랑한 부분은 아이의 식판에 덜어둔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야지라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아니다. 그저 저녁을 맛있게 잘 먹고 끊임없이 간식 찾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우울증 약을 최대로 많이 먹던 어느 날에 아이의 충치가 4개나 발견되었었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달랠 여력이 없어 단 것들로 대신한 결과라는 걸 나만 알고 있다.


역시나 밥 먹으러 식탁으로 오지 않겠다는 아이를 회유반 협박반으로 앉힌다. 오늘은 일이 많아 지치는 날이다. 이런 날은 그냥 아이패드를 아이 앞에 두고 같이 옥토넛을 보며 밥을 먹는다. 나도 어릴 때 TV 보며 먹었는걸 뭐라며 자기 합리화도 하며 이런 날도 있지 하며 나를 위로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김밥햄도 조금 구워두었다. 유기농 햄은 안 먹고 이런 햄만 좋아한다. 오후에 끓여둔 콩나물국을 뜨고 병아리콩을 삶아놓고 김치 대신 단무지를 식판에 올려주었다. 나름 영양을 고려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 푸른 채소는 먹으려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먹을까.


나는 저녁으로 로메인 상추와 토마토를 썰어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준비했다. 아이가 몇 수저 뜨는 사이 얼른 먹어치웠다. 삼시세끼 간식까지 챙겨먹어도 나는 늘 허기가 진다.


아이는 한두수저 먹고는 배가 부르다며 수저를 내려놓는다.

"엄마 배불러요"

"안돼 더 먹어"

"배 아파요"

"거짓말하면 안 돼"

"힝-"

"그러면 장난감 안 사준다"

"먹을게요!"


나는 조직행동 전공자이면서도 아이의 내적 동기보다 보다 쉬운 외적 동기를 주로 사용한다. 협박과 함께 늘 장난감이니 간식이니 하는 외적 동기가 효과적이다. 수저를 들고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가 저녁식사가 끝났다. 그래도 비워진 식판을 보면 오늘 내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아이가 식탁에서 뛰어내려 가 노는 사이에 남은 콩나물 국에서 콩나물만 건져서 밥에 올려 친정엄마가 만들어준 부추 간장을 넣어 비벼먹었다. 이제야 허기가 조금 가시는 것 같다.


그릇을 정리해 식기세척기에 넣고 음식물쓰레기도 정리했다. 아이패드로 학습을 빙자한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고 나는 탄산수를 하나 들고 앉아서 숨을 돌린다. 세끼가 끝나면 하루가 끝난 것 같다. 늘 끊어야지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SNS를 들여다 본다. "2900만 원으로 10억을 번 부자 엄마!" "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와요!" "부업으로 월급만큼 벌어요!" 온갖 광고들이 지나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참 게으르다 느껴진다. 친구들이 올린 피드를 본다. 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는 것 같다.


"아이를 기르고 있잖아. 그것 만으로도 충분해"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없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친정엄마에게 넋두리를 한다


"아이를 기르고 있잖아. 그것 만으로도 충분해"

"피- 이건 다 하는 거지 뭐"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조금 안도한다.


Photo by Brittani Burns on Unsplash


한 천사가 16개월만에 세상을 떠난 일이 마음에 남아 지난 몇주간 잠을 못 이루었다. 얼마 전에는 내 아이 또래의 아이가 내복 차림으로 배가 고파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에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제 개월 수로 헤아리기도 뭣한 50개월 된 내 아이는 엄동설한에도 덥다며 얇은 바지, 티 한 장 걸치고 앉아서 아이패드로 놀며 한 개 삼천 원짜리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침저녁으로 신나게 놀아주는 할아버지가 있고 예뻐서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할머니가 있으며 삼시세끼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는 엄마가 있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케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늘 하늘에 묻는다. 왜 그 아이들과 내 아이의 삶이 이렇게나 다른지.


물론 내 아이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정말 많다. 내가 묻는 것은 그런 차이에 대해서 묻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세상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다면 삼시세끼 맛있는 밥을 먹고 여름에는 더위에서 겨울에는 추위에서 보호받으며 자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을 보고 사랑한다고 어떻게 이렇게 예쁘냐고 이야기해 줄 단 한 사람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슬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달려가 기댈 수 있는 하나의 어깨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 찬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결정권이 없이 이 세상에 내려온다.
그 아이들은 누가 자라게 하는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을 향해 "집에서 애나 키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회, 맘충이라는 말로 아이를 키우는 존재를 벌레처럼 여기는 사회, 아이들에 대한 온갖 범죄에 너그러운 사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함께 찾아가야 하겠다. 먼저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참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엄마와 아빠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애나"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 한 마을을 이루고 큰 숲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격려하고 응원해주면 좋겠다.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또 그 일로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 만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인정해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 만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


16개월만에 하늘나라로 떠나간 아이가 남기고간 숙제를 풀기 위해 아이가 잠든 늦은밤, 노트북을 열고 이런저런 글을 쓰고 공부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답답했다.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길, 또 다른 아이가 하늘의 별이 되지 않길, 이시간 어딘가에서 아파하고 있지 않기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도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돌본 누군가가 저녁 무렵 찾아 오는 조용한 허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길, 단지 내일 아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정리하며 기쁨을 느끼길 마음을 다해 바란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또 다시 시작될 나의 하루에도 응원을 미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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