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하루면 충분한 것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타운의 비는 보통 짧았다.
조절된 강도, 조절된 시간.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만 내렸다가 정확한 시점에 멈추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비는 그칠 기미 없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은 종일 흐렸고, 구름은 묘하게 두꺼웠다.
밝기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빛의 질감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사람들의 말수가 줄었다.
카페 안의 소음 수치는 평소보다 낮아졌고, 걸음걸이는 느려졌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 날씨 좀 우울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원래 이런 날도 있지 뭐.”
출근길, 세이라는 인공팜 앞을 지나쳤다.
반투명한 돔 안에는 수천 개의 묘목이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돼 있었다.
어제까지, 건너편 돔 안의 그 묘목들은 세이라의 허리 정도 높이에 불과했다.
오늘은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는 굵은 줄기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줄기는 지나치게 곧았고, 잎은 너무 윤기가 났다.
빗물이 잎 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성장 주사.
세이라는 그 단어를 떠올렸다.
하루면 충분하다. 꽃도, 나무도, 이 타운에서는 하루면 됐다.
그리고 폐기도, 늘 하루면 끝났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그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바람도 없는데 잎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주입된 식물의 유전자 프로그램의 일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이라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랬으니까.
‘모닝 라운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카페 앞 보행로에 어제 없던 가로수가 서 있었다.
비어있던 그곳에 무성하고 푸르른 나무가 턱 하니 심어져 있었다. 그늘은 이상하리만큼 정확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어제 저 나무가 있었나?”
맞은편 테이블의 남자가 무심하게 말했다.
건너편 여자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있지 않았어요?”
그는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었다.
매일 보는 풍경일수록 미세한 변화가 있으면 그제야 조금 갸우뚱 한 뿐이다.
그리고 이 타운에서는, 하루 만에 생긴 것과 원래 있던 것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다.
그날 오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밝았지만 어둡게 느껴졌고, 빛은 일정했지만 무거웠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아침보다 더 느려졌다.
카페 안의 소음 수치가 다시 낮아졌다.
“정서 안정 지수 조정 중입니다.”
천장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공지가 흘러나왔다.
“시민 여러분의 심리적 균형 유지를 위해 기상 패턴이 조정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짧게 웃었다.
“오늘 비 좋다.”
아무도 그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이 비가 자연스럽게 온 게 아니라는 걸.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기상 패턴을 조정 중이라는 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었다.
- 그게 이 구역에선 곧 자연의 섭리라 할 만큼 익숙하니까.
퇴근 후, 세이라는 남동생 미르를 데리러 갔다.
실내 스포츠 센터의 천장은 오늘도 가상 하늘이었다.
인공 햇빛은 ‘이상적인 파장’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인공 잔디는 완벽하게 마른 상태였다.
비 오는 날이라는 사실이 이 건물 안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미르는 땀을 흘리며 공을 몰고 뛰어왔다.
“누나, 나 오늘 다섯 골 넣었어.”
“잘했네.”
“밖에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밖은 오늘 비잖아.”
“여긴 비 안 와.”
미르는 자신의 말에 어폐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공을 발로 굴리며 얘기를 이어갔다.
“진짜 잔디는 미끄럽대. 넘어지면 아프대.”
세이라는 웃었다.
“아픈 게 싫잖아.”
미르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넘어져도 진짜 잔디에서 마구 뛰어보고 싶어.”
세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댔다.
체제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이 식구중에 세이라 혼자면 족하다.
미르가 더 많은 진짜의 것을 열망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
미르의 운동화 밑창에는 흙이 묻지 않았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
레스토랑 ‘벨 아르망’에서 그 여자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창가에서 두 번째 테이블, 벽 쪽으로 약간 비껴 앉은자리였다. 낮 시간대에 그 자리는 햇빛이 가장 부드럽게 들어왔고, 여자는 그 빛을 등지고 앉아 식사를 했다. 그녀는 메뉴를 거의 바꾸지 않았고,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세이라는 그 여자가 단골이라는 사실보다도, 늘 혼자 온다는 점이 더 인상 깊었다.
그날도 여자는 같은 메뉴를 주문했고, 세이라는 늘 하던 대로 접시를 내려놓았다. 여자는 포크를 들고 있다가 잠시 멈추더니, 갑자기 세이라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어머니 계세요?”
그 질문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세이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네.”
“연세가 어떻게?“
세이라는 순간, 무례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부유층 손님들은 종종 이런 식의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그게 이 구역의 예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오십 대 후반이세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정보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건강은요?”
세이라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좋지 않으세요.”
여자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접시 위의 음식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병명이 뭐예요?”
그 질문에, 세이라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걸 물으세요?”
여자는 그제야 아주 얕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세요. 비슷한 연세거든요.”
그 말은 설명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녀의 말투에는 동정도, 연민도 없었다. 그저 정보 교환 같은 톤이었다.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라 계세요.”
여자는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세이라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말, 식사 중에 꺼내서 미안해요.” 여자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세이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레스토랑 홀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졌다.
“당신 어머니 이름이 로자 씨 맞죠?”
그 순간, 세이라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잊었다.
“어떻게—”
“정통 식문화 클러스터 쪽에서, 직원 보호자 데이터베이스를 조금 열람할 수 있어요.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요.” 여자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저희 쪽에 필요한 정보였거든요.”
필요한 정보.
그 말이 이상하게 무겁게 떨어졌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여자는 말을 이었다. “적합도 검사 결과가 아주 좋긴 한데, 순번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래도… 미리 인사를 해두고 싶었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세이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직접 보고 싶었어요. 우리 어머니한테 장기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의 딸을.”
그 말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고, 감정도 없었다. 그게 더 섬뜩했다.
“내일 우리 집에 와볼래요?”
그 말은 초대처럼 들리지 않았다.
통보에 가까웠다.
“부유층 구역 출입 허가는 이미 발급해 뒀어요. 의료 상담이라는 명목으로요. 정통 식문화 클러스터 연계 일정으로 처리돼 있을 거예요.”
여자는 작은 카드 하나를 꺼냈다. 투명한 재질 위에 QR 코드와 함께 짧은 문구가 떠 있었다.
[의료·정서 안정 목적 임시 출입 허가]
세이라는 그 카드를 받아 들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이건 호의가 아니에요.” 여자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현실적인 선택이에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 어머니도, 거절하진 못할 거예요.”
⸻
세이라는 그날 퇴근길 내내, 그 카드만 생각했다. 트램 안에서 가방을 열어 몇 번이나 QR 코드를 확인했고, 화면을 끄고 나서도 손끝에 남은 차가운 감촉이 사라지지 않았다. 의료 상담, 정서 안정 목적 임시 출입 허가라는 문구는 너무 공식적이어서, 오히려 개인적인 호의라는 말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건 누군가의 변덕이나 친절이 아니라, 이미 절차 속에 들어가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때, 얼마 전 퇴원한 세이라의 어머니 로자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자동 의료 패치가 복부 쪽에 붙어 있었고, 호흡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세이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엌에서 물을 받아 왔다.
“늦었네.” 로자가 말했다.
“응. 손님이 좀 있었어.”
세이라는 그 카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로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여자의 말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신 어머니도, 거절하진 못할 거예요. 그 말이 마치 이미 이루어진 사실처럼 들렸다.
로자는 물을 마시다 말고 세이라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거짓말.”
세이라는 잠시 말문을 열었다 닫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피곤해.”
로자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밤, 세이라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레스토랑에서 여자가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적합도 검사 결과가 아주 좋긴 한데, 순번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 문장은 위로 같으면서도 동시에 위협처럼 들렸다. 순번이라는 단어 하나로, 누군가의 생명이 질서 정연하게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
다음 날 아침,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세이라는 출근길에 늘 보던 인공팜 앞을 지나치며, 어제와 오늘의 나무 높이를 비교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하루 차이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안 검문소 앞에서, 그녀는 잠시 멈췄다. 늘 노동자 구역에서 부유층 구역을 가르는 경계였다. 평소에는 절대 넘지 않는 선. 그 선을 넘는 이유가 ‘의료 상담’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세이라는 QR 코드를 스캔 패널에 갖다 댔다.
“임시 출입 허가 확인. 코드 S-1029.”
기계음이 말했다.
“의료·정서 안정 목적 방문입니다.”
게이트가 조용히 열렸다.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고, 아무도 특별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 모든 절차가 이미 시스템 안에서 승인된 일이기 때문이다. 세이라는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그녀를 그 방향으로 밀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트램에 올라타자, 창밖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무가 더 자연스럽게 휘어 있었고, 잎의 색이 균일하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설계된 세계보다 오히려 더 ‘조잡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세이라는 문득, 이 방문이 단순한 견학이나 인사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이건 이미 시작된 거래의 일부였다.
⸻
여자의 집은 작은 농장이 딸린 단독 주택이었다.
울타리 안에는 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진짜 닭이 모래를 쪼고, 깃털을 털었다.
세이라는 발걸음을 멈췄다.
“들어와요.”
여자의 남편은 수영장 옆 베드에 누워 태닝을 하고 있었다. 태블릿에는 광물 거래소 배당금 그래프가 떠 있었다.
아이들은 잔디 위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넘어져도, 아무도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일어나 계속 뛰었다.
땀이 흘렀고, 옷은 더러워졌다. 무릎에선 얇게 피가 났다.
세이라는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가상 증강현실 팩에서만 봤던 배경이다. 실제로 눈앞에서 본건 처음이었다.
닭이 낳은 달걀.
뉴트리 에그 3도 아니고, 식당에서의 식재료도 아니었다.
살아 있는 동물이 낳는 무언가였다.
닭이 울었다.
부엌에서 여자가 바구니를 열었다.
흰 껍질의 달걀들이 담겨 있었다.
“아침에 낳은 거예요.”
세이라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렇게 아무 보호막도 없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놓인 달걀은 처음이었다.
여자는 작은 프라이팬에 달걀을 깨 넣었다.
껍질이 쪼개지는 소리는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노른자는 생생하고 탄력 있었다. 알끈이도 그대로 붙어있었다.
팬 위에서 그 달걀은 천천히 익어갔다.
식탁에 접시가 놓였다.
부유층 가정의 식탁은 너무 포근했다.
클린하고 정갈한 무채색으로 된 타운의 식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세이라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포크를 든 두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집의 아들들이 그걸 보고 놀렸다.
“엄마, 봐. 저 누나 울어. 손도 떨어. 이렇게 이렇게. 달달달.. 히히”
넘어졌던 그 집 아들 무릎의 피는 이미 멈췄고, 딱쟁이가 앉으려 하고 있었다.
세이라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눈물을 훔치고, 웃었다.
그녀는 포크로 흰자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혀에 닿는 순간, 촉감이 전혀 달랐다.
마냥 미끈하지 않았다. 탄력이 있었다.
씹는 동안 맛이 변했다.
단맛, 고소함,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그녀는 숨을 멈춘 채 천천히 씹었다.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가슴이 묘하게 뜨거워졌다.
눈이 약간 따가워졌고, 손끝이 저렸다.
집을 나서기 전 닭이 울었다.
그 소리에 손이 멈칫했다.
그러다 어디에 홀린듯 가방을 열었다.
바구니 가장자리에 있던 달걀 하나를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넣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트램 안에서, 세이라는 이상함을 느꼈다.
처음엔 피부가 조금 가려운 것 같았다.
목덜미가 따끔거렸고,
손목 안쪽이 서서히 붉어졌다.
숨이 조금 가빠졌다.
트램의 공기는 늘 정화돼 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먼지가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가방을 꼭 쥐었다.
달걀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세이라는 알았다.
자기 몸이 이 세계의 자연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인공 달걀은 티끌 하나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식품이었다.
균도 없고,
먼지도 없고,
변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달걀은—
닭의 깃털,
공기의 먼지,
토양의 미세한 입자,
보이지 않는 균들까지
모두 안고 태어난 물건이었다.
그건
건강한 음식이었지만,
이 세계에서 자란 인간에게는
위험한 음식이기도 했다.
보안 검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가려움이 심해졌다.
목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세이라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숨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이 더욱 답답하게 눌렸다.
“저기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피부가 눈에 띄게 붉어졌다.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누군가 물었다.
세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보안 요원이 다가왔다.
“의료 스캔 필요합니다.”
그는 보안 로봇에게 손짓했다.
로봇은 세이라를 향해 센서를 들이댔다.
“중증 알레르기 반응 감지. 즉시 통과 조치합니다.”
그 말과 함께 보안 게이트가 열렸다.
가방 스캔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세이라는 비틀거리며 게이트를 통과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녀의 가방 안에서 달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게이트를 통과한 뒤에도 세이라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이 조금씩 돌아왔고, 가슴의 조임은 느슨해졌지만 피부의 가려움은 아직 남아 있었다.
보안 요원이 다시 그녀를 힐끗 보았다.
“이상 반응 로그 남깁니다. 의료센터 방문 권장해요.”
세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플랫폼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보안 게이트 옆의 작은 패널에
짧은 문구 하나가 떴다.
[이상 반응 감지 – 외부 유기물 반응성 증가]
[개체 코드: S-1029]
[환경 노출 요인: 비정형 생물성 물질]
패널은 3초 뒤 자동으로 꺼졌다.
아무도 그 화면을 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
플랫폼 CCTV 화면 안에서,
세이라는 아직도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평소보다 느렸고,
어깨는 조금 굳어 있었다.
가방 안에서,
달걀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
보안실 내부.
무인 모니터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깜빡였다.
[비정상 노출 패턴 기록됨]
[재발 가능성: 12.7%]
[관찰 대상 자동 등록]
그 로그는 즉시 일반 데이터 더미 속으로 분류됐다.
우선순위는 낮았다.
이 타운에서는 알레르기 반응 따위는 매일 수십 건씩 발생했기 때문이다.
*
세이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무사히' 트램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뒤에도 가방은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