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부드러운 균열
세이라는 퇴근길 트램 안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따뜻함이 남은 커피잔이 들려 있었고, 귀에는 아무 음악도 흐르지 않았다.
트램은 조용히,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이 구역의 모든 소음은 조정되어 있었고, 흔들림조차 고요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좌석에 몸을 맡긴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도 없었고, 웃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필요 없는 감정이 제거된 상태에 가까웠다.
검문소를 지난 지는 오래였지만, 세이라는 무의식적으로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실제로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의 금지 품목도, 신고 대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방을 열었을 때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주의: 고급 식재료의 노동구역 반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보안 로봇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문장이었고,
누구도 그 문장에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문장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았다.
왜 금지되어 있을까.
왜 굳이 ‘식재료’가.
트램의 창밖으로 고급 운반 로봇이 천천히 지나갔다.
유선형의 매끄러운 외관, 먼지 하나 없는 바퀴.
그 로봇이 실은 박스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지만,
세이라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진짜 달걀.
진짜 우유.
진짜 고기.
아무 표시도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그들만의 구역으로 향하는 것들.
여긴 값싼, 하지만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대체 식품들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편리하고 합리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세이라는 다시 눈을 감았다.
트램은 여전히 부드럽게 흔들렸고,
아무도 그 질문을 듣지 못했다.
레스토랑은 부유층 구역의 초입에 붙어 있었다.
매니저가 세이라를 불렀다.
“세이라. 오늘 VIP 예약 있어. 실수하면 안 돼.”
VIP라는 말에는 늘 같은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돈이 많고, 불편함을 싫어하고, ‘사람의 손’을 원하지만 ‘사람의 사정’은 원치 않는 사람들.
세이라는 유니폼의 앞단추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네.”
주방 쪽에서 접시가 나왔다.
아주 조용히, 아주 따뜻한 접시 하나.
반달 모양의 오믈렛.
어제 그녀가 본 것과 같은 구성이었다.
세이라는 접시를 들고 VIP 룸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조명이 부드럽고, 공기가 부드러웠다. 부드럽다는 표현이 공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여기에서 배웠다.
테이블에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직 젊었지만, 젊음을 관리하는 데 돈을 쓴 사람의 얼굴이었다.
피부에는 결점이 없었다. 결점이 없다는 게 오히려 결점처럼 보일 정도로.
남자가 포크로 오믈렛을 가르자, 안에서 노란색이 드러났다.
그 순간, 세이라의 목 뒤가 서늘해졌다.
그 노란색은, 어제 본 노른자와는 달랐다.
연했다.
정상 범위의 노란색.
안전한 색.
사람을 흔들지 않는 색.
그래, 자연의 달걀은 개체마다 그 색과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뉴트리에그였다면 반품처리가 가능한 사유였을텐데.
남자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무 진하면 불쾌하거든. 과잉이야. 과잉은 언제나 위험하지.”
세이라는 순간, 숨을 삼켰다.
진하면 위험하다. 생생하면 위험하다. 지겹도록 들었다.
이 남자가 잠시 후 먹을 메인요리가 오리 요리와 새끼 돼지 요리인 것은 과잉이라 할 수 없는걸까.
남자는 음식을 베어 물며 무심히 말했다.
“요즘 타운 쪽은 건강관리 시스템이 더 강화됐다던데. 좋아졌겠어.”
세이라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좋아졌다’는 말을 그녀는 너무 많이 들었다.
좋아졌다는 말은 대개, 감시가 촘촘해졌다는 뜻이었다.
“네… 편해졌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웃었다.
그 웃음은 로봇의 웃음과 달랐다. 더 따뜻하고 더 날카로웠다.
“편한 게 최고지. 불편함은 낭비야.”
낭비.
세이라는 그 단어가 가슴을 누르는 걸 느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매니저가 세이라를 불러 밖으로 내보냈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한 톤 더 엄격했다.
“세이라. 네 가족 정보 업데이트 됐더라.”
세이라는 몸이 굳었다.
“가족… 정보요?”
“너희 어머니. 의료 등급이 조정됐어.”
그 말은, 딱 한 가지를 의미했다.
치료 우선순위가 내려갔다.
혹은—그보다 더 나쁜 것.
대체 가능 목록에 가까워졌다.
세이라는 입술을 떼지 못했다.
매니저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네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네가… 선택만 하면.”
선택.
세이라는 그 단어가 가장 잔인하다는 걸 알았다.
선택은 자유처럼 말해지지만, 실제로는—이미 정해진 길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방식이었다.
“네가 등록하면, 교류권이 생겨. 1:1. 부유층과 직접 연결되는 혜택. 의료 등급도 조정될 수 있고.”
세이라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등록… 이요?”
매니저는 그녀에게 아주 작은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간단한 문구가 떠 있었다.
장기기증 희망자 사전 등록 안내.
간 기증 우선 연계 프로그램.
교류권 제공. 생활 수준 향상 가능.
세이라는 화면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간.
그 단어는 그녀에게 너무 현실적이었다.
너무 몸 안쪽의 단어였다.
그녀는 태블릿을 밀어내지 못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선택이 시작될 것 같았다.
선택이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VIP 룸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통화하는 목소리도.
“응, 이번 달 배당 들어왔어. 가이아 쪽 광물. 꽤 괜찮네. 배당금이 올랐더라고. 다음엔 자연 출산 패키지도 알아봐야지. 그래, 가격이 좀 세긴 한데… 의미가 있잖아.”
자연 출산.
패키지.
의미.
세이라는 문득, 어제 낮에 본 ‘그 달걀’이 떠올랐다.
진짜 노른자처럼 진한 색.
그리고 그 진함이 불안함이 된 이유.
진짜는, 이 세계에서 너무 많은 걸 드러낸다.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위험한 건 통제한다.
통제되지 않으면—없애버린다.
그녀는 천천히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화면을 껐다 켜지 않았다.
문구를 읽지도 않았다.
•
집에 도착한 뒤, 세이라는 신발을 벗고 자동 정화 패드를 밟았다.
미세한 진동과 함께 먼지 제거 알림이 떴고,
벽면에는 오늘의 신체 상태가 조용히 표시됐다.
피로도: 64%.
특별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치.
‘정상 범위’.
주방에 들어서자 조명이 천천히 밝아졌다.
자동 냉장고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고,
뉴트리-에그3 한 팩이 준비대 위에 놓였다.
기계는 그녀가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온도를 맞추고 있었고,
요리 시간은 정확히 2분 20초.
오차는 허용되지 않았다.
세이라는 작은 팬에 오일을 몇 방울 두르고,
인공 달걀을 붓고, 조용히 젓기 시작했다.
질감은 언제나 같았다.
너무 묽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상태.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고,
인공 버터는 냄새를 남기지 않았다.
기름이 튀지 않는다는 건,
이 세계에서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완성된 오믈렛을 접시에 옮기고,
세이라는 식탁에 앉았다.
창밖은 어둡지 않았다.
해는 없었지만, 밝기는 항상 유지되었다.
밤은 존재하지만, 밤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구역.
그녀는 오믈렛을 한입 먹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부드럽다.
그 표현은 맛에 대한 평가이기도 했지만,
이 생활 전체에 대한 설명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
열 살 즈음의 기억.
학교에서의 ‘자유 그리기’ 시간이었다.
교실에는 같은 모델의 로봇 도안이 배포돼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색을 집어 들고 있었다.
AI는 교실 한가운데서 부드럽게 말했다.
“감정은 조절될 수 있어요.
밝은 색은 긍정적인 감정을 유도하죠.”
세이라는 파란색 크레파스를 들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날은, 그냥 파란색이 손에 잡혔다.
그녀는 로봇의 얼굴을 파랗게 칠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아주 조금, 아래로 내려 그렸다.
AI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슬퍼 보이네요.”
세이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수도 있죠.
오늘은 그냥 그런 기분이에요.”
AI는 잠시 멈칫했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럼,”
AI가 말했다.
“이 로봇에 색을 하나 더 칠해볼까요?
노란색으로요.”
세이라는 노란색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로봇의 눈 위를 덧칠했다.
파란색 위에 노란색이 얹혔다.
완전히 덮이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해졌다.
그 순간,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게 진정이었는지,
아니면—
포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
세이라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오믈렛을 한입 베어물었다.
질감은 여전히 일정했고,
맛은 언제나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왜 그때의 파란색이
이렇게 자주 떠오르는 걸까.
노란색 위에 덧입혀진,
그 작은 파란 조각이—
지금,
이 부드러운 세계 어딘가에
아주 조용한 균열을 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도 없이,
눈에 띄지도 않게.
하지만 분명히,
이미 금은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