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934년생 나는 1975년생
"엄마가 늙어서 미안해."
엄마는 1934년생, 나는 1975년생이다.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는 42년. 엄마는 늘 다른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미안해했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많은 게 미안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낳아준 나이를 넘어서고 보니 나이 많은 엄마라서 더 고맙다.
지금 시대는 워낙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도 늦게 낳는 편이라 마흔두 살에 아이를 낳는 일이 조금은 흔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므로 엄마와 다른 친구들 엄마 하고는 20년이 넘게 차이가 지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할머니 나이가 엄마와 같았다.
"누나, 살구나무 아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밥 먹는 것 봤어."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날 후배가 지나가며 무심코 툭 던진 말인데 그제야 나는 엄마와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인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 당시 엄마가 55세. 아빠가 52세였다. 지금 50대와는 많이 다르기에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엄마 아빠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부터는 언제든 내 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고, 제발 엄마 아빠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도 많이 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준 덕분인지 엄마는 92세가 된 2025년까지도 부지런히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어릴 때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여느 엄마들과는 달랐다집에서 살림을 하고 남편과 자식들 챙기면서 살아가는 전업 주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반장, 통장, 부녀회장을 맡아했고, 일도 쉬지 않고 했으며 관광 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기회만 있으면 여기저기 따라다녔다.게다가 철 따라 뜨개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주고, 언니들 옷을 수선해서 내 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어릴 때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기도했다. 늘 엄마의 부재가 느껴졌고, 양반집 유교 사상으로 가득한 아버지와 집에서 같이 있는 게 불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직은 엄마의 온기가 필요한 나이였는데 엄마는 늘 만져지지 않는 그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는 분주하고 바쁜 날들을 보냈다.80이 넘는 나이까지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도 하고 복지센터에 가서 영어 교실, 컴퓨터 교실, 서예 교실다니며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재작년 겨울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되자 활동이 많이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간보호센터에 나가 무언가를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즐기는 92세 할머니...
"엄마, 오늘은 뭐 하셨어요?"
"책도 읽고, 티브이도 보고, 색칠도 하고 그랬지."
"엄마, 눈 안 아파요? 어떻게 매일 그렇게 책을 읽어요?"
"괜찮아. 책이라도 읽어야 살지."
"요즘은 읽어도 기억도 못하잖아."
"하하하~~ 그건 맞다.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올해 50이 되니 책 읽기도 너무 불편하고 몸이 힘들게 느껴지니 늦은 나이에 나를 길렀을 엄마의 모습을 자꾸생각하게 된다. 엄마 나이 50이면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즈음이다. 나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린아이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늦은 나이에 나 낳아서 기르느라 힘들었지?"
"힘들기는... 나는 너 낳아서 젊은 엄마들 하고 친구도 하고, 우리 막내 통해서 변해가는 세상도 배우고 좋았는데, 우리 막둥이가 늙은 엄마가 변변하게 잘해 주지도 못해서 힘들었지?'
"아무렴. 힘들었지? 엄마 가르치고 사느라."
"힘들었지. 도시락 반찬 뭐 싸달라고 알려 줘야지. 다른 애들은 이런 학원 다녀요. 하며 알려 줘야지."
"맞아. 너는 참 해달라라는 것도 많았다. 위에 애들은 그런 소리 하나도 안 들어 봤는데..."
나는 욕심 많은 아이라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았고말하는 것도 좋아해서 학교에 다녀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며 열을 냈기에 늙은 엄마가 받아들이기에는 힘겹기도 했을 테다. 엄마도 지금은 안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너무 늦은 나이까지 육아하느라 자신의 삶이 없다고 느껴졌는지 내가 잠든 줄 알고 혼자 푸념하는 소리를 하곤 했다.
'아이고, 언제 크냐 언제 커.'
그렇게 빨리 크기를 바라더니 그 막둥이가 이제 지천명이 되었다. 엄마가 나를 한창 길렀을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물론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모두 다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의 남은 반평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엄마의 삶을 통해 정비해 보고 있다.
"우리 막내, 건강하고 행복해. 사랑해."
전화를 끊을 때마다 늘 하는 우리 엄마의 기도 같은 말이다.
"엄마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알라뷰 뿅 뽕"
"나도 알라뷰 뿅뿅"
나의 92세 할머니 엄마는 오늘도 눈을 떴고 2025년 8월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