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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다 Aug 15. 2022

인생의 바이블을 왜 찾으세요

찾지 말고, 의심하세요

2021년 8월, 경기 가평군 더스테이 힐링파크 내부에 세워진 기도하는 자의 방(prayer room). 사진=서리다 

수년 전 인터넷에서 ‘인생의 바이블로 삼을 만한 딱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발견했다. 왜 찾는지에 대해 언급했는지 전혀 기억나지는 않고, 어떤 답변자가 ‘그런 책은 세상에 없다’라는 취지의 답글을 게재한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와 같은 맥락의 명언 하나가 지성인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중세 이탈리아의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문장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Beware the man of a single book)’다. 특정한 가치관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가슴속에 북극성처럼 믿고 따를만한 책 한 권씩 품고 싶다. 방송인 강호동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안 읽는 사람도 아닌 한 권 읽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던 데서도 바이블에 대한 현대 사람들의 욕구를 읽을 수 있다. 강 씨의 발언은 온라인에서 밈(meme)으로 떠돌아다니며 누리꾼들의 격론을 유발했다.


인터넷 세대인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바이블이 더더욱 절실해 보인다. 똑똑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저마다 논리를 펼치며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이말 저말 다 일리가 있다. A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하면 동의할 수 있다. 이때 B가 “전기차만 100% 만들면 내연기관차 밖에 못 만드는 기업들은 굶어 죽는다”라고 하면 고뇌에 빠진다. 이어 C가 나타나 “자동차를 만드는 것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외치면 논의의 장을 벗어나고 싶어 진다.


자동차뿐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보고 듣고 만지는 모두가 논쟁의 대상이다. 머리 터지는 인생이다. 이때 단 하나의 논리를 믿고 따르면 우리 삶은 매우 편해진다. 여러 가치관이 충돌하는 동안 겪을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아리에 크루글란스키(Arie Kruglanski)는 지난 1994년 발간한 논문을 통해 인지적 종결 욕구(NfCC)라는 심리학 용어를 제안했다. 확실한 것을 추구함에 따라 미래의 일을 예측하고 삶을 통제하려는 취지로 확고 불변의 결론을 얻으려는 욕구를 의미한다. 인생의 바이블을 찾고 싶은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타인의 다양한 가치관을 접한 뒤 경험한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독일 정치재단인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학술지 페리스코프(Periscopekas)는 지난 6월 불확실성과 ‘인지적 폐쇄의 필요성(Uncertainty and the need for cognitive closure(NFCC))’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모호성으로 인한 불편함은 예측 가능성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다”며 “대유행이나 기타 사회적 격변 및 분열의 순간에 나타나는 전형적 특징인 시간 압박(time pressure)은 부분적으로 뇌가 값비싼 반성과 분석에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NfCC를 증가시킨다”라고 분석했다.


인지적 종결의 욕구는 음모론·극단주의 양산


다만 모든 가치관이 반증의 여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논리만 따르는 것은 이에 매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종교적·정치적 갈등이 발생하고 음모론과 극단주의를 양산한다.


페리스코프는 “인간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실험실 결과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필요한 인내심이 거의 없다”며 “코로나19에 대한 음모론은 확실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사는 동안 고통스럽겠지만 한 권의 바이블이나 한 명의 롤모델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인지적 종결을 이뤄야겠지만 그럴 때마다 반증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반대 이념을 지닌 정당의 득세가 아니라 멸절이다.


변증법의 합(synthese)은 정(these)과 반(antithese) 각각에 담긴 모순을 통일시켜 긍정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명제다. 합은 도출된 직후 사람들을 안심시키지만 시간 지나 새로운 모순을 품은 정으로 돌변한다. 정반합이 구조상 무한대로 생명력을 이어갈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진리다.     

확고 불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서 보이는 안정감이나 카리스마는 중독성을 지닌다. 다만 그들 중에서도 흐르는 생각의 물결에 올라타 정진하는 사람이 지자(智者)다. 고뇌하며 살자! 물론 이 같은 생각도 한 번쯤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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