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으로는 그들이 가진 그 탐욕적일 정도의 꿈과 그 배고픔이 혹시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꿈의 배고픔, 혹은 배고픔의 꿈같은 것을 느꼈다. 진정으로 훌륭한 예술이란 어쩌면 어떤 배고픔, 아니면 그것의 다른 얼굴인 어떤 꿈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해 놓은 것이 아닐까. (1980)
-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시인의 배고픈 예술가 친구 둘은 남의 작업실 셋방 살이를 하던 어느 날 밤, 배가 고파 쥐를 잡아다 먹었다. 시장가 골목에서 쥐를 발견하고는 냅다 발로 밟아 터트려 죽인 다음 그것을 구워 먹었다. 깡 생수로 허기를 달래다 잠을 자볼 요량이었으나 너무 허기져 그조차도 할 수 없던 밤이었다. 한 친구는 조각을 하는, 별명이 노당(로댕)이라는 자였고 다른 한 친구는 그림 그리는 정낙구(브라크)였다. 예술에의 갈망과 더러운 것을 지어다 먹은 소화불량 같은 현실 사이에서 배를 곯았다던, 노당과 정낙구. 그런데
그날 그, 쥐…
쥐, 맛있었을까. 80년대 서울 한복판에서 쥐를 잡아먹다니.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허기가 반찬이라고, 쫄쫄 굶다 먹을라치면, 뭐든간 반가웠을까. 텁텁하고 바싹한 입 안에 물기가 고이고 얼마간의 온기가 머물렀을까. 조금은 배가 찼을까. 조금이라도,
뜯어먹을 건 있었을까?
물로만 해결되는 갈증이 있듯 어떤 배고픔은 나를 허기지게 한 그것을 먹어야만 비로소 충족된다.
주말엔 오랜만에 오페라를 봤다.
전당 가는 날은 매번 비가 온다.
극이 시작되는 어느 날 파울은 아내가 살아 돌아오는 꿈을 꾼다. 마리와 똑 닮은 여인을 봤다네. 아니, 그건 분명 마리였어…! 도시 어귀에서 문득 마주친 그녀, 무용수 마리에타는 미치도록 그리운 아내의 잔상을 띄우며 유혹하여 이내 쥐고 흔든다. 굳게 잠겼던 과거의 성전(Kirsch des Gewesenen)을 열고 들어와 다시금 행복했던 과거의 환상에 젖게 한다. 마리가 환생한 듯, 파울의 곁에서 흐드러지게 춤추는 마리에타의 촉촉하고 윤기 나는 금빛 머리카락.
하나, 상실의 고통이 찰나에 잊힌 들….
삶과 죽음이 대비되듯, 성녀처럼 무결했던 마리와는 딴판으로 세속적으로 분방한 마리에타는 꿈과 현실의 괴리를 더할 뿐이고. 못다 이룬 사랑이 지어낸 환상은 결코 배부를 수 없는 꿈이 되어 죽은 자를 소환하였으며 지나간 시간마저 순순히 잠재우지 않았다. 꿈의 그녀를 찾아 헤맬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육욕에 굴복한 수치감을 마리에타에게 덮어씌운 파울은 끝내 죽은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마리에타를 목 졸라 죽여버린다.
Rein war sie, rein, Vergleich dich nicht mit ihr!
그녀는 순수했어. 당신과 그녀를 비교하지 마!
Mein Heiligtum, entweih es nicht!
성스러운 장소를 모독하지 마!
그토록 그리던 마리는 생전의 마리와 꼭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원래 성녀는 한번 죽어야지(殉敎) 되는 거니까. 성녀의 유품을 박제한 과거의 성전 한가운데 유리로 된 방은 영원히 산화가 일어나지 않을 진공관 같아 보인다. 그 대신 미화를 거쳐 가장 이상화된, 그리하여 결코 닿을 수 없는 상으로,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순애의 전시물. 영원한 사랑과 이상을 꿈꾸던 남자는 그러나 스스로 위선에 치를 떨며 몸부림치는 한낱 육신에 불과했다.
초라했다. 믿고 싶었으니까… 눈앞의 욕망에 초라해질수록 환상 속 마리는 더 순결해야만 하고, 또… 자책하며 괴롭던 밤이면, 망상에서 부활하여 원망하고 꾸짖더니 이내 현실로 돌아가라며 재촉하던 마리의 현신은, 파울의 분열된 자아였을지 몰라. 그는 자기 자신이 만든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배고파서 꿈을 꾸고 꿈을 꿔서 배고픈 영원한 굴레. 원하니까, 괴로운 거야. 원하는데 갖지 못하는, 그리하여 그것만을 좇게 하는, 사는 동안에 해결 못할
상실감,
결핍!
이토록 불완전한 존재를 마침내 완성시킬 무언가, 그것이 여기 아닌 어디에 꼭 있으리라는 절박한 믿음, 종교에 가까운 그 믿음, 세속의 어떠한 흠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고결한, 나를 숨 쉬게 하는, 이내 보잘것없게 한, 더한 고통도 견디라는, 꿈…. 꿈같은 환상이 나를 구원할 듯이 여겼으나 모든 것이 훑고 지나간 다음 남겨진 것은 언제나 혹은 역시나, 채워지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모퉁이는 닳아 없어져 아귀가 안 맞고, 있었는데 없어졌거나 원래부터 없었던 그 빈 구석들이 잃어버린 조각을 그리워하는….
Ein Traum hat mir den Traum Zerstört,
어떤 꿈이 내 꿈을 깨트렸어,
Ein Traum der bittren Wirklichkeit Den Traum der Phantasie.
쓰디쓴 진실의 꿈이 상상의 꿈을 파괴한 거야.
Wie weit soll unsre Trauer gehen,
우리는 얼마나 오래 애도해야 할까,
Wie weit darf sie es,
삶이 송두리째 뽑히지 않고
Ohn' uns zu entwurzeln?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꿈을 깨고 마침내 짐을 챙겨 죽음의 도시를 떠난 파울은, 다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핍은 조금씩 차오르는 과정에서 한번 더 창조해 내며 그것이 치유가 갖는 의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