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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Oct 13. 2024

메스너!

혼자는 온전한 마음.

김훈의 글은 쉬었다 돌아올 때마다 매번 다른 문장에 강렬히 꽂힌다. 이 점이 참 신비롭다. 처음 읽는 나와, 그다음의 나, 또 그다음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내가 문장들 위에 가부좌를 틀거나 기대어 쉬고 있거나 온점에 밧줄을 동여매고 매달려 있다. 그의 문장은 뿌리 깊은 나무와도 같은 것. 전수안 전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인용한 메스너 이야기는 속으로 외우고 다니다가도 활자로 읽으면 그 느낌이 또 다르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몸을 갈아서 없는 길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늘 혼자서 갔다. 낭가 파르바트의 8,000미터 연봉들을 그는 대원 없이 혼자서 넘어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에 슬픔이 섞여 있는 한 그는 산속 어디에선가 죽을 것이었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히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는 구절에 오늘 새로 밑줄을 친다. 좋았겠다. 최초라든지 최고 같은 세속은 발아래에 두고, 묵묵히 수행하는 자의 고요하고 깊은 눈매가 떠오른다. 그는 응시한다. 얼어붙은 설산 꼭대기의 적막을 한 톨의 의심도 없이 바라본다. 긴 고통 끝 환희의 찰나를 홀로 지킨다. 그만의 것이다. 마침내 자유롭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나도 한번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봐 볼 수 있겠니. 나만의 산을 오른다. 어둡고 축축한 마지막 코스로 간다.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은, 귀해. 어떻게 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좀

정직할 수 없겠어? 그러니 무산소 단독행으로 간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여기서 다짐해. 깨고 또 깨고 또 깨고 계속 깨 있는다고.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겠다고. 읽는다. 쓴다. 암튼 간 나는 학자다. 웃음기 빼고. 안 웃겨 씨발… 뇌에 힘주며 심호흡!


정말이지

긴 긴 하루였어.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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