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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Aug 04. 2023

케이팝을 좋아하세요…

취향 얘기 하게 될 줄은 몰랐다. 5년 전 여름이다. 하루는 놀다가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애프터클럽 가는 길이었다. 차 주인이 테크노를 틀었는데 취한 사람들이 별안간 자기들 음악 얘기랑 최신 유행 그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할 말은 딱히 없고 듣기에 유익해서 그냥 혼자 묵념을 했다. 대화가 무르익던 중에 나를 신경 써준 한 명이 서로는 음악 뭐 듣느냐고 물었다. 아 저요. 저는 샤이니 좋아하는데..? 샤이니 아세요? 옆자리 앉은 애가 어이없게 터지면서 재밌어했다. 아무도 더 물어봐주지 않았다.


그런 질문에는 장단 맞출 말이 안 생긴다. 취향으로 댈 만한 건 못 찾겠어. 아무래도 좀 케이콘텐츠 쪽이 나랑 맞는데. 취향 삼을 거리는 아닌가. 좀 유치한가. 케이팝 같은 거. 요즘은 너드 컬처라고 쳐주나 보다. 케이팝을 장르로 이해할 식견이 없다. 보기에 예뻐서 예쁜 걸 보고 듣는다. 현란하게도 눈뽕 맞히는 뮤직비디오랑 음방 무대는 이렇게 아무렇게나 돈 안 내고 봐도 되나 싶다. 이제 완전히 중독이 되어서 아이돌 없이 운동도 못 하고 하루를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아이돌을 치어리더 보듯이 본다. 매번 그렇게 칼각으로 열심히 춤을 추는 것이 너무 멋있고 대단하다. 세상 환하게 웃는 연기가, 그 웃음을 진실로 지켜주고 싶게 한다. 이 애들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뉴진스 새 앨범이 나오면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하루 한 곡씩만 순서대로 듣는다. 여기저기서 선전 때릴 때 진입하면 그것마저 왠지 쫓기는 기분이다. 남들 다 듣고 한번 지나간 다음에 듣는 게 좋다. 만듦새나 트렌드나 계보나 산업이나 그런 얘기는 할 줄을 모르고 들어도 잘 까먹는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자신이 없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다 본 건 멜로가체질이랑 커피프린스1호점 밖에 안 된다. 귀엽고 말랑한 것들을 본다. 그저 넋 놓고 보는 게 좋다. 그럴 땐 감상한다기보다도 쳐다본다는 게 맞을지 모른다. 시대극은 보다가 세트가 너무 가짜 티 나면 짜증이 나서 꺼버린다. 부자나 전문직 나오는 드라마는 좀 별로다. 취재가 게을러도 보기가 싫다. 웃자고 하는건데 죽자고 해도 싫다. 드라마 볼 때 굳이 어려운 걸 추구하지 않는다. 쉬운 게 좋다. 자기가 잘 알면 얘기가 쉽게 나온다. 작가가 작가 얘기 하고 감독이 감독 얘기 하는 드라마들은 보통 재밌다. 재밌게 보다가도 뒷내용은 좀 더 상상하고 싶어서 또 보다가 만다. 나는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봐도 너무 마음에 들면 도중에 꺼버린다. 그리고 며칠 있다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음미하다가 저번에 마친 장면에서 한 20분 더 보고 또 끈다. 이따위로 보니까 제대로 끝까지 본 영화도 별로 없고 기억하는 디테일도 약간씩 틀린 것이다. 아껴둔 명작들이 산더미다.


국내힙합은 안 듣는다. 뭐가 어째서가 아니라 그냥 안 듣게 된다. 저는 잘 몰라요. 나중에 돈이 많아져서 교외에 창고 같은 아주 큰 건물을 짓는다면, 1층에는 삐까번쩍한 그린라이트 주점을 내서 남녀 성비 1:1로 손님을 받고 2층에는 사이비 종교 집회를, 3층은 대낮부터 영업하는 룸살롱을, 4층에는 쇼미더머니 시즌40 오디션을 한번 열어보려고 한다. 나는 돈욕심 없다. 입장료도 공짜고 술값도 공짜여서 그런 거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나 오고 싶어 한다. 아무튼 그래서 층마다 사람이 붐비고 모두가 각자의 일에 분주한 어느 날, 아무도 예기치 못한 현주건조물방화 사건으로 건물이 통째 흔적도 없이 잿더미로 사라지는 거다. 그러면 너무 비극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아주 조금은 더 건전하고 보기에 나은 세상이 열릴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이 헛소리를 좋아한다. 술자리에서 그거 말해줘 봐 하면 똑같은 말을 몇 번씩 해주고 웃겨주었다. 어쩌면 우리가 산다는 게 매트릭스 아닐까요. 다 죽으면 돼요. 싫은 걸 빼다 보면 그나마 좋아하는 것들이 남는다. 요즘엔 어떤 국내 감독 영화에 입문했는데 또 보다가 말다가 한다.



ig: @lookatthisrus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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