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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Aug 18. 2023

Himno

쓰고 싶으면 쓴다. 이건 자랑거리다. 쓸 게 생기면 쓴다. 써야 돼서 쓰면 힘들어. 글이 다 돼서가 아니라, 시간이 다 돼서 놔버리면 내내 언짢다. 계속 써야 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머리를 티스푼으로 한 숟갈씩 떠 내는 기분이다. 애초에 나는 가진 게 적다. 이대로 갉아먹다간 소진되어버리고 말 거야. 얕은 수가 다 보이면 어쩌지. 쓰는 건 어려운 일인데, 같지도 않은 걸로 내세우면 별로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굳이 써야 될 일이 없고 무엇도 다그치지 않는다. 생선 뼈 바르듯 할 필요도 없다. 쓰고 싶어지면 쓴다. 쓸 말이 생기면 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시간이 아주 많다. 글이 후져도 나만 재밌으면 그만이다.


갈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야생의 제1법칙이다. 갈망은 감추어뒀을 때 무한대를 준다. 글맛이 그렇지만 쓰는 행위부터가 그렇다. 놈을 노리는 무슨 육식동물처럼, 그러나 속으로 군침만 흘려도 의미 있다. 속으로만 문장을 모은다. 이것은 취미로서의 글쓰기다. 그러니 경험주의자가 된다면 순전히 쓰기 위해서겠다. 쓰는 건 만드는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 멋있으니까.


직업이 시인이면 길 가다가도 머릿속으로 시 한 편을 짓는다고 한다. 노래 만드는 사람은 헤어진 일로 가사를 썼다. 그에 비하면 내 것은 느슨한 그물망이다.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걸려들면 쓴다. 매일 일기를 쓰고 가끔 가다 꿈을 꾼다. 나만 아는 이야기들이 있다. 원하는 것과 된다는 것 사이에서 노니는 낙빈은 되는대로 오래 누리고 싶다. 글쓰기가 그렇다. 아직 전부 다 마주할 용기는 없다.


샐린저에게 궁극의 글쓰기는 아무런 보상 없는 글쓰기였다. 종국엔 출판이 명상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파트릭 쥐스킨트는 집에 의자를 딱 한 개만 뒀다. 어쩌다 손님이 오면 벽에 달아 둔 여분을 내려다 잠깐만 썼다. 집에서 나가기 싫다고 큰 상도 마다했다. 미친 은둔자. 그래서인지 그는 꿈처럼 쓴다. 사춘기 소녀의 귓바퀴에 난 솜털이 보이고, 어스름이 깔린 숲 속의 콘트라베이스가 들린다. 위대한 작가를 만드는 데 많은 작품도 필요 없는 것 같다.


쓸 때만큼은 마음에 방이 여러 개다. 그중 다수는 고요해져야 올바로 열린다. 다 잠든 밤에만 읽히는 글이 있다. 좋아하는 건 차곡차곡 아껴두고 나만 본다. 그래서 몰래 쓰기는 취미생의 행운인 셈이다. 법 같은 건 도저히 즐겜이 안 된다. 법은 늘 궁리가 많아서 오만상을 짓고 있다. 목숨 걸고 하면은 싫어. 송무가 업이 되면 그땐 또 모르겠다. 그럼 그냥 쓰는 거다. 계속 계속 써야지. 명상이 필요해.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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