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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Oct 02. 2023

하하하

머릿속이 복잡할 때 머리를 감으면 싹 낫는다는 게 나만의 미신인데, 정말로 매번 그렇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타이레놀 약발도 이제 잘 모르겠고, 또 제정신이 반쯤 출타한 요즘이지만,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랄지! 이리저리 산발을 해서는 가망 없는 인간처럼 느끼다가도, 머리를 감고 헤어팩을 하고(유자향) 오일을 바르고(바닐라향) 드라이어 찬바람으로 속부터 찬찬히 말린 다음 잘 빗어주고 나면 거짓말처럼 정신이 맑아지면서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단, 머릿결 유지를 위해 하루 최대 두 번만 할 수 있으므로 아침샤워 후 두 번째까지는 최대한 기를 모을 것. “지금이 머리를 감아도 되는 때인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지고 미어터진 짐보따리들을, 단지 가로줄과 세로줄에 맞춰 예쁘게 정돈하여 둘 때의 무쓸모한 가지런함 같은. 무쓸모라는 것이 이토록 마음을 다독인다. 머리를 감기 전과 마찬가지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태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이것이 샤워의 힘? 혹은 일시적 각성? 모종의 삼투 현상에 의한 영혼의 정화? 웨딩피치나 세일러문을 보면 주인공들이 지구를 구하러 나가기 전에 한 번씩 별빛으로 샤워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거랑 같은 <파이팅>의 이치인 듯 하다. 라고 얼빠진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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