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일기 - 대륙법계와 영미법계,

엄밀성과 유연성의 사이에서

by 김새벽

막스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이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법적 조건의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중에서도 핵심 조건 중 하나로 그는 법의 '형식적 합리성'(Formale Rationalität)을 들었는데, 이는 법이 일관된 원칙에 따라 예측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관점에서, 베버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대륙법계는 고대 로마법의 법리와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주의를 계승하여, 법률을 일관된 체계 속에서 추상적인 규범으로 구성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고 특히, 독일의 '판덱텐법학(Pandektenrecht)'은 법을 과학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려는 시도로, 법을 거의 수학적 논리로 다루는 고도의 이론체계를 만들어냈는 바 이는 법적 안정성과 정합성을 보장하는 데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준 것이었으로서 이러한 법체계는 베버가 말한 "형식합리성"의 이상형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체계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논리적 일관성과 체계성 유지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어, 실무적으로는 경직되고 융통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반면, 영미법계(Common Law system)는 판례를 중심으로 법이 발전해왔다. 여기서는 법률 규범이 추상적 원칙보다 구체적인 사건의 해결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따라서 체계성보다는 실용성과 선례(판례)의 누적을 통한 실질적 일관성이 중시된다. 베버는 이러한 시스템이 형식합리성의 이상형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인 "법적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즉, 사업자가 계약을 체결하거나 투자 결정을 할 때,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제행위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효과적인 법적 환경이 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영국과 미국은 상업법과 회사법 영역에서 실용주의적인 판례와 해석 전통을 구축했으며, 법원이 신속하게 상거래 현실에 맞춰 규범을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었다. 이는 베버가 강조한 바와 같이, 형식적인 논리체계보다는 현실 경제와의 밀착도, 그리고 법이 시장행위와 적절히 호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자본주의 발전에 더 결정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베버는 또한 법조계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보았는데, 영미법에서는 법관과 변호사 집단이 국가권력이나 종교권력으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으로 기능해 왔으며, 이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법의 유기적 연계를 가능하게 했다고 보았다. 즉, 법은 자본주의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었고, 이는 법과 경제 간 상호작용의 자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기반이 되었다고본 것이다.


따라서 베버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체계적인 법"이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하다고 보지 않았고 오히려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고, 경제 주체들에게 예측 가능한 법질서를 제공할 수 있는 실용적 법체계가 더욱 결정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버는 영미법계의 경험적이고 판례 중심적인 법발전 방식이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에 효과적인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것을 조금 더 현대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1) 법의 효율성과 비용 최소화의 관점에서는 법이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줄이고, 재산권을 명확히 하며, 분쟁 해결을 예측 가능하게 할수록 시장 기능이 강화된다고 주장되는데, 영미법계의 판례 시스템은 실제 사례 기반의 조정 기능을 통해 거래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였으며, 자본주의에 적합한 제도적 조건을 자연스럽게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2) 실용주의적 적응력 vs. 제도적 경직성의 관점에서도 대륙법의 추상적 조문 중심의 체계는 이론적 일관성은 뛰어나지만, 현실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거래당사자에게는 불확실성을 안길 수 있는 반면 영미법은 사법적 유연성을 통해 새로운 거래관행이나 기술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여,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술혁신과 금융공학의 빠른 확산이 중요한 현대 자본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며 가령 영미법계 국가에서 가상자산 규제 등이 보다 유연하게 적용됨을 볼 때 확인된다. (3) 사법 시스템의 경쟁과 규범의 분산적 생성의 관점에서 Common law 시스템은 하급심 판례도 축적되면서 점진적으로 법규범을 형성하고, 상급심을 통해 그것을 정제하는 구조인데, 이는 규범 생성의 분산화로 이어져 다양한 경제 주체의 행동양식을 법이 반영할 수 있게 하므로 보다 시장 친화적 법 발전의 구조적 메커니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막스 베버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체계적인 법"이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하다고 보지 않았고 오히려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고, 경제 주체들에게 예측 가능한 법질서를 제공할 수 있는 실용적 법체계가 더욱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버는 영미법계의 경험적이고 판례 중심적인 법발전 방식이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에 효과적인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현대 법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이를 거래 비용 최소화, 제도 변화에 대한 적응력, 그리고 분산적 법 규범 생성 구조로 확장하여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거나 이후 정치 활동 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보—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법원의 정치화 시도, 법무부 등 사법기관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영미법계의 특징인 유연성과 판례 중심의 법체계가 때때로 정치권력의 압력에 취약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사례로도 볼 수 있다. 영미법의 강점으로 여겨져 온 실용주의와 분산된 해석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 법적 기준의 일관성 유지와 권력 견제에 한계를 드러낼 수 있으며, 실제로 법체계의 중립성과 안정성이 위협받는 장면들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대륙법계의 경직성—즉, 성문화된 법률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따르는 법적 운영 방식—은 단지 비효율적인 유산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방어하는 데 있어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베버가 강조한 형식합리성이 단지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제도와 권력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법 자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수호하는 기능도 한다는 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시장경제에서도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고 볼 것이다. 경제 주체들은 단기적 이익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 위에서 장기적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만약 법체계가 정치적 상황이나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자의적으로 흔들린다면, 계약의 안정성과 재산권 보호에 대한 신뢰는 근본적으로 손상된다. 결국 시장에서의 예측 가능성은 자본주의 작동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이며, 이러한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는 대륙법계의 형식성과 절차 중심주의가 오히려 중요한 우위로 작용할 수 있다.


가령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학교의 국제학생 등록 권한을 박탈하려는 시도는 영미법계의 유연성과 실용성이 때로는 정치적 압력에 취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하버드의 국제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다른 학교로 전학하거나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러한 조치는 하버드가 정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려졌으며, 하버드는 이를 "불법적이고 보복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다행히 법원의 가처분으로 우선 해당 행정조치의 효력은 정지된 상황이지만, 이는 영미법계의 판례 중심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개입에 조금 더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륙법계를 따르는 국가에서는 행정 처분이 성문법과 절차법에 근거하여 더 명확하게 정의되고, 그에 대한 불복 절차 또한 법령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즉, 외국인 유학생 등록 취소와 같은 조치가 내려질 경우, 그 정당성은 법률에 규정된 요건 충족 여부 및 행정 절차의 적법성에 따라 판가름나며,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훨씬 정제된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이 지점에서 베버가 말한 형식합리성(formale Rationalität)이 단순한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권력의 자의성을 견제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장치임을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장기적 의사결정을 위해 법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삼기 때문에, 법체계의 일관성과 절차적 안정성은 시장 신뢰의 필수 조건이 되므로 경제적 효율성과도 당연하게도 연관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영미법계에 기반하는지, 대륙법계에 기반하는지와 별개로 결국은 권력자가 얼마나 삼권분립을 존중하고,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킬 힘을 가지지 않은 사법부의 결정을 따라주느냐에 시스템의 건강함이 달려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작정하고 권력자가 시스템이 설정한 한계를 무시하고, 대중이 그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발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특성 자체는 너무 쉽게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제도와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는 피드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지만, 때로는 문화가 제도를 선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의 상황이 무서운 것은 제도와 문화의 피드백 관계에 있어서 권력자의 자제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고 이것은 대륙법계보다 형식적 유연성을 가지는 영미법계 체계의 존립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가령 하버드 대학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조치의 효력 정지 등에서 보듯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지배를 막기 위한 모든 장치들이 형해와 되었다고 볼 수는 없고 미국 대중이 트럼프의 기행들을 언제까지 수용할 것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최악의 결론을 예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실용주의적이고 유연한 시스템의 장기적 안정성이 도전을 받았을 때 어떤 회복탄력성을 가지는지는 지금부터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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