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일기 - 위법성 조각 사유 전제사실의 착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by 김새벽

미네소타 총격 사건과 위법성 조각 사유 전제사실의 착오


영상으로 보여지는 정보들을 재구성해보자. 총격이 가해지기까지 그 앞단의 맥락을 제거하고, 총격이 이루어지는 순간만을 들여다보고, 이를 한국 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살펴본다. (당연하게도 한국법이 적용될 사안이 아니나, 법적 해석의 관점에서 한번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피해자는 엎드려 웅크린 채 제압에 저항하고 있다. 다만 이는 방어적 저항이고 적극적인 공격적 저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양팔도 몸과 바닥에 붙이고 5~6인의 요원들에게 제압된 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이때 웅크린 자세에서 윗옷이 들리면서 허리 뒤편에 합법적으로 은닉 휴대하고 있던 권총이 보인다. 음성이 들리지는 않아 추론인 부분이지만, 이를 보고 CBP 요원 중 하나가 “총기gun”이라고 외치면서 허리춤에 체결되어 있던 권총(과 홀스터)를 제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격을 가한 요원을 자세히 보면, 앞의 요원이 허리춤의 권총(과 홀스터)를 제거하자마자 자신의 권총을 홀스터에서 뽑아 바로 사격을 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 있는 각도상 해당 요원은 총기가 허리 춤에서 제거되는 것을 놓쳤을 수는 없다. 그는 허리춤에서 총기가 뽑아지는 것을 보고 사격을 가한 것임은 비교적 명확하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고려해볼 것은 이런 식으로 흥분된 상황에서는 각 개인은 (훈련이 된 경우에조차) 아주 쉽게 시야가 협소해지는 이른바 터널 비전을 경험하기 쉽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는 추론인 부분이지만, 사격을 가한 요원은 “총기gun”이라는 외침을 듣고, 허리춤에 총기를 보았을 것이며, 누군가 손을 뻗쳐 그 총기를 뽑아드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해당 요원은 이를 보고 터널 비전 속에서 피해자가 직접 총기를 뽑았다고 오인하고 반사적으로 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임을 재차 강조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 추론을 전제로 살펴보자면, 이는 전형적인 “위법성 조각 사유 전제사실의 착오”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즉, 총격을 가한 요원은 자신이 사람을 쏘아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이고, (위법성의 인식은 존재), 다만, 이는 저항하는 상대방이 총을 뽑아 쏠려고 함에 따라 정당방위 차원에서 먼저 쏜 것(위법성 조각 사유)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위법성 조각 사유”,즉 정당방위 가부의 전제 사실이 된 “저항하는 상대방이 총을 뽑아 쏠려고 함”에 대한 착오(즉, 위법성 조각 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위전착)가 있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의 견해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따르자면, 만약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면 책임이 조각된다. 책임이 조각되는 경우에는 고의범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으나, 착오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과실범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다. 이 사안에서 법집행기관 소속 요원은 무기 사용에 있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의무, 필요최소한의 원칙, 생명 존중 의무 등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부담할 것인데, 이러한 주의의무를 얼마나 엄격하게 보느냐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전문성과 생명 존중의 원칙을 강조하여 엄격한 주의의무를 인정한다면 동료 요원의 행위를 확인하지 않고 사격한 것이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하여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할 수 있으나, 제압 과정의 급박성과 터널 비전 현상 등을 고려하여 완화된 주의의무를 인정한다면 주의의무 위반을 부정하여 형사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면, 당연하게도 그에 대하여는 형사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이 때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는 “ 자신의 행위가 위법할 가능성에 대하여 심사숙고하거나 조회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 자신의 지적능력을 다하여 위법성을 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아주 엄중한 결과가 발생했고, 총격에 이르기까지의 정황을 보면 국가 공권력으로서 de-escalation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다하지 않았고, 우발적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는 (혹은 심지어 유도하는) 방식으로 법집행을 하였으므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으나, 그 순간만을 놓고 본다면 해당 요원은 착오에 있어서 정당성을 인정 받을 가능성이 크고, 이때 그렇다면 과실이 인정되어 업무상 과실치사의 죄책이 논해질 수 있을지가 문제된다고 보인다. 해당 요원에게는 사격을 가하기에 앞서 모든 정황을 충분히 살필 의무가 있다는 것은 과실 인정에 대한 근거가 될 것이고, 자신 혹은 동료에게 총격이 가해질수 있다고 오인한 긴박한 상황에서 충분한 검토를 할 것은 기대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은 쉽게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위의 검토와 별개로, ICE와 CBP의 과도하고 무모한 법집행 행위는 그 자체로 기본권 침해와 사법절차의 형해화 가능성을 내포함은 따로 논의될 필요가 없이 자명하다. 다만, 개별적인 요원 수준에서, 낮은 훈련 수준과 왜곡된 직업윤리로 인해서, 수틀리면 저항하는 시민을 향해서 내가 먼저 사격을 가할수도 있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과 별개로, 눈을 떠서 출근할 때, 오늘 꼭 한 놈 쏴야지, 신난다, 이런 마인드로 출근한 놈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민과 공권력 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고, 서로 몸과 몸이 부딪히는 충돌이 늘어나고 있는데, 달리 급박한 법집행의 필요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강화된 법집행력을 유지하면서 충돌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높여가는 식의 정책을 펼친 것은 결국 이런 사태가 발생하기를 바란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된다. 너무 쉽게 시민을 적대시하고 그래서 더 쉽게 총격을 가한 개별 요원은, 그 형사 처벌의 가능성을 떠나, 지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온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마이너리티 인종이 경찰에 대해서 느끼던 두려움의 간접 체험


공권력이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위협적 존재로 일반화할 때 얼마나 쉽게 개별적인 시민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단체로 지켜볼 수 있었다. 흑인 남성들에 대한 일반화된 두려움에 근거한 경찰력의 행사가 어떤 공포를 심어주는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 것이다. 통계적으로 그것이 유의미한 상관성을 설혹 가진다고 하더라도,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도중에 공권력과 약간의 마찰만이 일어나도 그것이 생명과 직결된 사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통상 법집행 과정에서 공권력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시에 응하고 차후에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 이의제기를 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언론에 알리는 것이 더 안전하고 더 현명한 대응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지금도 그것이 우선은 더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공권력의 오남용 사례에서 매번 고개를 숙이고 살게 되면 그것은 집단으로서 공권력의 차별적 대우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는 점, 그리고 시민들에게 무기력을 학습시키고, 공권력에게 자기 마음대로 행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줄까 두렵다는 점에서 왜 개별적 사례에서 까지 개인들이 민감하게 대응하고 저항을 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

모든 사회는 각자에게 고유한,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산다. 이 문제들을 비교적 잘 해결해 나가는 국가들이 이른바 선진국일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빛나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 건국시부터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 상징성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미국의 패권이 끝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껍데기일 뿐이더라도, 미국이 항상 지니고 있던 그 상징성이 사라지지 않기를, 시민들이 좌우를 떠나 그 가치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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